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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우리 소생이도 춤을 출줄 아네

  • 할머니는 소시를 그리 좋아하시는 것 같지 않았다. 너무 솔직해서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을 때는 전혀 웃지 않으신다. 소시는 할머니가 좋아하는 과자들을 사가지고 왔지만 할머니는 거들떠보지도 않으시고 그저 내 손을 잡고 나에게 말했다.
  • “소생아, 여기 너무 답답해.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 나는 겸연쩍게 소시를 보고 웃고 할머니의 휠체어를 밀고 병실을 나갔다.
  • 사실 할머니는 걸을 수 있지만 금방 퇴원하여 아직도 기력이 약한 상태이기 때문에 휠체어에 앉아 드나드는 게 안전했다.
  • 나는 할머니를 끌고 앞에서 걸었고 뒤에는 많은 사람들이 따라왔다.
  • 서경천의 어머니가 옆에서 걸어가며 소시와 저녁에 있을 자선 만찬에 대한 얘기를 했다. 보아하니 둘 다 참석하려는 것 같았다. 할머니가 느닷없이 끼어들었다.
  • "오늘 저녁 그 만찬에 경천이도 가니?"
  • 서경천의 어머니가 말했다.
  • "물론 가죠."
  • "그럼 소생의 드레스는 보내왔니?"
  • “무슨 드레스요?”
  • 그녀는 멍해졌다.
  • 나는 서둘러 할머니에게 속삭였다.
  • "할머니, 저는 안 가요."
  • "그럼, 경천이의 파트너는 누구니?"
  • "오늘 저녁 만찬에서 첫 번째로 경천이가 춤을 춰요. 소시도 춤을 잘 추고 또 두 사람 호흡이 잘 맞아 조금만 맞춰보면 될 거예요."
  • "우리 소생이도 춤을 출 줄 알지?"
  • 할머니께서 내 허리를 손가락으로 한번 찌르시더니 줄곧 나에게 눈짓을 보냈다.
  • 사실 나는 춤을 출 줄 알 뿐만 아니라 상당히 잘 춘다. 하지만 나는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 나는 입술을 오므리고 말했다.
  • "춤을 잘 못 춰요."
  • "연습 좀 하면 될 거야. 저녁에 내가 경천이 보고 일찍 들어 오라고 할게. 아내가 있는 사람이 다른 여자를 파트너로 하는 거 너무 이상하지 않아?"
  • 할머니는 말투에 힘을 주었다.
  • "빨리 소생의 드레스를 준비해. 경천이 옷이랑 맞춰서 준비해야 된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걸로 하자."
  • 서경천의 어머니는 애써 웃음을 지었고 소시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 “사실 오늘 저녁에 저도 파트너가 있어요. 제 남자친구예요."
  • 소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자기 자신과 서경천의 어머니에게 물러날 길을 만들어준 셈이다.
  • 할머니가 이 정도로 말을 했으니 나도 방법이 없었다.
  • 서경천이 오늘 밤 만찬에서 나를 보면 또 화가 날 것이다.
  • 그는 아마 오늘 만찬에서 소시와 함께 춤을 출 줄 알았겠지만 나로 바뀔 줄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 경호원이 할머니를 안고 차에 올라탔고 나도 뒤따라 올라탔다. 소시와 서경천 어머니는 뒤차에 탔다.
  • 나는 수심에 찬 얼굴로 할머니의 손바닥에 초코볼 한 알을 놓았다.
  • "한 알만 드셔야 돼요."
  • 할머니는 금방 입에 넣으셨고 달콤함에 취하셨다.
  • "초콜릿을 먹을 때만 사람이 살아있는 느낌이 들어."
  • "약 잘 챙겨드시면 다음 주에는 두 알로 업그레이드해 드릴게요."
  • 할머니는 활짝 웃으셧다.
  • "그래, 그래."
  • 할머니가 초콜릿을 드시고 기분이 좋아져서 나는 할머니에게 말했다.
  • "할머니, 저녁 만찬에 안 가면 안 돼요?"
  • "안돼."
  • 할머니는 딱 잘라 거절했다.
  • "안돼."
  • "춤도 잘 못 추는 데다 또 그런 곳에 가는 걸 싫어해요."
  • "소생아, 그곳은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가고 싶어도 못 들어 가는 곳이야. 이 바보야."
  • 할머니는 거친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 "게다가 오늘 저녁에 소시도 가는데 너는 그들 두 사람이 붙어 다니는 걸 보고만 있을 거니?"
  • "할머니, 소시에게도 남자친구가 있어요."
  • "그건 다 핑계야."
  • 할머니는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찔렀다.
  • "이 안의 의도가 너무 깊어. 너는 너무 바보야. 할머니가 천천히 가르쳐 주지. 아무튼 너는 저녁에 꼭 가야 돼. 춤을 잘 추든 못 추든 첫 번째로 너와 경천이가 춰야 돼. 모든 사람들에게 네가 바로 서경천의 아내이고 서씨 집안의 미래의 여주인이라는 것을 보여 줘야 돼.”
  • 나는 정말 이런 야심이 없었다. 정말 가고 싶지 않았지만 할머니가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이제 안 가겠다고 하면 할머니가 화를 내실 것 같았다.
  • 이 집에서 내가 이렇게 오래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다 할머니 덕분이었다. 내가 왜 할머니와는 잘 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서 씨 집안에 들어선 순간부터 할머니는 나를 좋아하셨고 나도 할머니가 좋았다.
  • 집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나의 드레스가 도착했다.
  • 저녁에 서경천은 검은색 정장을 입는다. 나의 드레스는 짙은 보라색에 연보라색 테두리가 달려 있고 사선 깃의 디자인으로 되어 있다. 내가 입으니 몸에 맞고 아주 예뻤다.
  • 할머니는 동네가 떠들썩하게 큰 소리로 말했다.
  • “우리 소생이 정말 예쁘구나. 이 몸매, 이 얼굴 정말 예쁘네. 쯧 쯧 쯧...”
  • 스타일리스트가 옆에 서 있었고 나는 할머니의 칭찬에 얼굴이 빨개졌다.
  • 혼자서 칭찬하면 됐지 스타일리스트까지 끌어당기며 물었다.
  • “우리 손자며느리 예쁘지?”
  • “소생 아가씨가 이 드레스를 입으니 정말 이쁘네요.”
  • “소생 아가씨가 뭐냐? 작은 사모님이라고 불러야지.”
  • 할머니는 얼굴을 붉히며 스타일리스트를 꾸짖었고 스타일리스트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급히 말을 바꾸었다.
  • 아마도 여기에서 할머니를 제외하고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나를 서경천의 부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 나는 메이크업을 하고 장신구를 걸쳤다. 할머니는 굳이 자기가 소중히 간직하고 계시던 진주 목걸이를 나의 드레스에 잘 어울릴 것 같다며 나에게 걸어 주셨다. 너무 예쁘긴 한데 너무 소중한 것이었다.
  • 할머니는 고집을 쓰며 나에게 걸어 주셨다. 내가 계단을 내려갈 때 서경천의 어머니와 두 형님이 모두 계셨다. 나를 돌아보는 그녀들의 눈빛에서 경의로움과 질투심을 엿볼 수 있었다.
  • 그녀들이 나에 대한 할머니의 각별한 사랑을 질투하면서 나는 더욱 그녀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 나는 서경천의 어머니 앞에 다가갔다. 그녀는 차를 마시다가 갑자기 손에 든 찻잔을 내려놓고 눈살을 찌푸리며 큰 형님에게 물었다.
  • "차가 도착했니?"
  • "문 앞에 도착했어요, 어머니."
  • "그럼 가자!"
  • 서경천의 어머니는 나를 전혀 쳐다보지도 않았고 큰 형님과 작은 형님이 부축하여 거실을 나갔다.
  • 그녀가 나를 싫어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내가 비록 소씨 집안사람이지만 출신이 그리 좋지 않다. 우리 엄마는 명분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 엄마가 내연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서경천 어머니가 소시를 좋아하고 나를 싫어하는 것이다.
  • 나는 다른 차를 탔고 가는 길에 교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 “이따 저녁에 나랑 꼬치 먹으러 가자.”
  • “뭐?”
  • "일단은 아빠랑 무슨 자선 만찬에 가는데 심심해 죽겠어.”
  • 그녀는 길게 소리를 끌며 말했다.
  • “드레스 입기도 싫고 어디에 가든 내가 제일 키가 크니 닭 무리 속에 끼여 있는 학 같아서 재미가 없어.”
  • 나는 웃었다.
  • “또 자화자찬이 시작됐네. 저녁에 같이 꼬치 먹을 가능성보다 칵테일을 마실 가능성이 더 클 것 같은데.”
  • “무슨 소리야?”
  • “저녁 만찬에 나도 참가해.”
  • “정말?”
  • 교의는 즐겁게 소리를 질렀다.
  • 나는 그녀만큼 즐겁지 않았다. 서경천이 저녁에 나를 보고 어떤 표정일지 모르겠다.
  • 나는 만찬 장소에서 교이가 오기를 눈빠지게 기다렸다. 내가 여기서 다른 사람들은 하나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 이렇게 말하면 웃기겠지만 내가 비록 16살에 소씨 집에 왔지만 이런 장소에는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었다.
  • 나는 사람들 속에서 소시를 보았다. 그녀는 파란색 칵테일 한 잔을 들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흰색드레스를 입었는데 활짝 핀 백합처럼 예뻤다.
  • 나는 한번 보고 시선을 돌렸다. 곁에서 여자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 "서경천이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