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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이혼할래

  • 그날 저녁 서경천은 정말로 나를 괴롭히지 않았지만 나는 밤새 잠을 설쳤다.
  • 나는 일주가 어디로 갔는지, 혹시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닌지 온통 이 생각뿐이었다. 왜 몇 년 동안이나 나와 연락하지 않았을까?
  • 사실 그는 아무 일도 없이 단지 새로운 여자친구를 만나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을 수도 있다.
  • 만일 정말 그렇다면 더 이상 따질 필요는 없었다. 나도 이미 서경천과 결혼했는 걸.
  • 비록 형식상의 혼인이라고는 하지만 어제 분명 발생한 것도 사실이 아닌가?
  • 띄엄띄엄 꾸던 꿈은 교이의 전화로 인해 완전히 깨졌다. 난 비몽사몽인 채로 상대를 받자 전화기 너머로 그의 눈물 섞인 목소리가 전해졌다.
  • “소생아, 다 가짜였어. 그 사람이 날 감쪽같이 속였어. 다 가짜였다고. 게이들에게 진심이 없어, 진심 따윈 없다고.”
  • “무슨 일이야? 왜 아침부터 울고 난리야?” 
  • 소생의 울음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벌렁거렸다. 침대에서 일어나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이제야 7시가 조금 넘었다.
  • “무슨 일인데?”
  • “그 심 말이야…”
  • 울음소리 때문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야만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 “그 사람 말이야, 처음부터 내가 여자인 걸 알고 있었어. 지금까지 나를 속였던 거야.”
  • “그 사람이 뭘 속였어? 어제 너한테 프러포즈 한 거 아니었어?”
  • “응, 맞아. 프러포즈 했지. 근데 그건 날 게이 아내로 만들기 위해서였어.”
  • “무슨 뜻이야? 넌 어떻게 알았는데?”
  • “어젯밤 그 사람이 화장실 간 사이 테이블 위에 두고 간 핸드폰이 켜져서 우연히 그 사람 친구와 나눈 대화를 봤거든,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사람 부모님이 손주 보고 싶어서 빨리 결혼하라고 재촉하나 봐. 그래서 나한테 눈독 들인 거였어. 내가 대화 내용을 봤으니 다행이지, 아무것도 모르고 바보같이 결혼했더라면 게이한테 사기결혼 당한 거잖아. 넌 게이의 아내로 사는 게 얼마나 비참한 지 알아? 그런 사람들은 여자를 좋아하지도 않을 뿐더러  심지어는 엄청 싫어한다고, 단지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대를 이어 나가기 위해 여자를 아내로 맞이한대. 그러면 여자는 완전히 속아서 청춘을 모두 바치고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거야.”
  • 모든 걸 듣고 나서 가슴이 갑갑해 나서 물었다. 
  • “너 혹시 그 사람과 잤어?”
  • “아니, 아직.”
  • “그러면 뭐 하러 가슴이 찢어지도록 우는 건데? 그 사람하고 만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잖아. 그 정도로 정든 사이도 아니잖아?”
  • “아니… 정들었다기보다는, 누군가에게 속았다는 게 엄청 기분 나쁘단 말이야. 소생, 이번 생에 진짜 개돼지한테 시집가더라도 절대 게이한테 시집가지 마. 정말 비참 해질 거야. 내가 왜 너한테 이런 소리를 하지? 서경천이 게이도 아니고.”
  • 이 말을 들은 나는 갑자기 우울해졌다. 서경천이 게이가 아니라고 누가 그래?
  • 네가 말했던 현실 게이 아내가 바로 나야.
  • 나는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말을 꺼냈다.
  • “그만 울어. 뚝 그쳐.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가슴 미어지도록 울 것까지야 있어? 다음부터는 조심하고, 그런 곳에 이젠 얼씬도 하지 마.”
  • “응, 그래. 다음부터는 때려죽여도 안 갈게. 아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놈.”
  • 온갖 욕설을 퍼붓고 나서야 교이는 울음을 그쳤다.
  • “됐어. 나 지금까지 한숨도 못 자서 좀 쉬어야겠어. 그 쓰레기 같은 놈 깨끗이 잊을 거야. 만난 지 이틀밖에 안 돼서 다행이지, 오래 만나서 감정이라도 생겼으면 죽을 만큼 힘들었을 거야. 그래서 충고하는 건데 주위에 이런 놈 만나는 사람 있으면 하루빨리 손절하라고 해. 될수록 빨리. 게이가 너를 좋아할 거라는 헛된 기대는 접어두는 게 좋을 거야. 그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 교이는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고는 자러 갔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그녀 때문에 뒤숭숭했다.
  • 나는 서경천이 나를 사랑해 주기를 바라 본적은 없었지만 그와 오랫동안 함께 한다면 해서는 안 될 기대나 의지를 하게 될지도 모르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장담할 수 없는 부분이다.
  • 세상 일은 단정 짓기 어렵기 때문이다.
  • 나는 잠이 확 깨서 침대에 앉아 휴대폰을 보았다.
  • 동영상 사이트를 열자 갑자기 스팸이 튀어나와서 나도 모르게 터치했는데 하필이면 동성애자의 부인에 관한 동영상이었다.
  • 소개를 간단히 훑어보니 한 여인이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에야 남편이 동성애자였음을 알게 된 내용이었다.
  • 남편은 자신의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그 남자와 함께 보냈고 마지막에 전 재산까지 남자에게 물려주었지만 이 여인은 벌써 청춘기를 겪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이 남자를 위해 자신의 모든 청춘을 바쳤지만 남편의 한 치의 사랑도 얻지 못했다.
  • 영화 중에서 그 부인은 늘 불안함 속에서 걷고 또 울었다. 그녀를 보고 있자 하니 마치 나의 미래라도 본 듯 괜스레 마음이 불안했다.
  • 갑자기 앞서 며칠 동안 관계를 가지고는 아무런 보호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 난 절대 영화 속 여인처럼 되고 싶지 않아.
  • 나는 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손에 잡히는 대로 옷을 걸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약방에 가서 사후 피임약을 사야 해. 제발 효과가 있어야 될 텐데.
  • 복도에서 서경천과 마주쳤다, 출근하는 길인지 그는 마침 문을 나서고 있었다.
  • 그와 부딪쳤지만 사과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내 팔을 확 낚아채서는 무서운 표정으로 얘기했다. “뭐가 그리 급해?”
  • 교이의 말들 때문에 답답하고 불안한 터라 그를 응대하기도 귀찮아서 그의 손에서 손을 빼고 뒤도 안 돌아보고 뛰었다.
  • 시간을 계산해 보니 아직 48시간이 지나진 않았다, 약방에 48시간 후에도 복용할 수 있는 약이 있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 다행히 구입하고 바로 약방에서 포장을 뜯고 생으로 먹었다. 목이 메어 눈이 돌아갈 뻔했다.
  • 알약이 내 목구멍으로 넘어가고서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 때려죽여도 절대 동성애자의 부인은 되기 싫어. 서경천의 아이 역시 낳지 않을 거야.
  •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와 서경천의 결혼은 위험적이었다. 그가 소시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든 그는 절대 날 사랑하지 않을 것이고 나 역시 그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 나는 약방의 카운터에서 문 앞까지 몇 미터 안되는 거리를 걸으면서 서경천과 이혼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래, 지금 바로.
  • 나는 손을 들어 택시를 잡아 서경천의 회사로 향했다. 스토리는 이틀 전과 똑같았다. 이쁘장한 여비서가 다급히 내 앞을 가로막고 못 들어가게 했다. 오늘 또 무슨 19금 스토리길래?
  • 오늘은 서경천에게 더 중요한 얘기를 해야 하므로 있는 힘껏 여비서를 밀쳐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 “서경천씨 할 얘기가…”
  • 말을 절반밖에 안 했는데 바로 목구멍에 걸렸다. 또 뭘 본 거지?
  • 저번과 똑같은 상황, 서경천은 엉덩이가 거의 다 들어낸 채로 바지를 내리고 소파에 엎드려 있었고 백우는 그의 곁에 앉아 그의 엉덩이를 애무하고 있었다.
  • 엄마야, 꼭 사무실에서 이런 일을 해야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