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주가 어디로 갔는지, 혹시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닌지 온통 이 생각뿐이었다. 왜 몇 년 동안이나 나와 연락하지 않았을까?
사실 그는 아무 일도 없이 단지 새로운 여자친구를 만나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을 수도 있다.
만일 정말 그렇다면 더 이상 따질 필요는 없었다. 나도 이미 서경천과 결혼했는 걸.
비록 형식상의 혼인이라고는 하지만 어제 분명 발생한 것도 사실이 아닌가?
띄엄띄엄 꾸던 꿈은 교이의 전화로 인해 완전히 깨졌다. 난 비몽사몽인 채로 상대를 받자 전화기 너머로 그의 눈물 섞인 목소리가 전해졌다.
“소생아, 다 가짜였어. 그 사람이 날 감쪽같이 속였어. 다 가짜였다고. 게이들에게 진심이 없어, 진심 따윈 없다고.”
“무슨 일이야? 왜 아침부터 울고 난리야?”
소생의 울음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벌렁거렸다. 침대에서 일어나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이제야 7시가 조금 넘었다.
“무슨 일인데?”
“그 심 말이야…”
울음소리 때문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야만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 사람 말이야, 처음부터 내가 여자인 걸 알고 있었어. 지금까지 나를 속였던 거야.”
“그 사람이 뭘 속였어? 어제 너한테 프러포즈 한 거 아니었어?”
“응, 맞아. 프러포즈 했지. 근데 그건 날 게이 아내로 만들기 위해서였어.”
“무슨 뜻이야? 넌 어떻게 알았는데?”
“어젯밤 그 사람이 화장실 간 사이 테이블 위에 두고 간 핸드폰이 켜져서 우연히 그 사람 친구와 나눈 대화를 봤거든,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사람 부모님이 손주 보고 싶어서 빨리 결혼하라고 재촉하나 봐. 그래서 나한테 눈독 들인 거였어. 내가 대화 내용을 봤으니 다행이지, 아무것도 모르고 바보같이 결혼했더라면 게이한테 사기결혼 당한 거잖아. 넌 게이의 아내로 사는 게 얼마나 비참한 지 알아? 그런 사람들은 여자를 좋아하지도 않을 뿐더러 심지어는 엄청 싫어한다고, 단지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대를 이어 나가기 위해 여자를 아내로 맞이한대. 그러면 여자는 완전히 속아서 청춘을 모두 바치고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거야.”
모든 걸 듣고 나서 가슴이 갑갑해 나서 물었다.
“너 혹시 그 사람과 잤어?”
“아니, 아직.”
“그러면 뭐 하러 가슴이 찢어지도록 우는 건데? 그 사람하고 만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잖아. 그 정도로 정든 사이도 아니잖아?”
“아니… 정들었다기보다는, 누군가에게 속았다는 게 엄청 기분 나쁘단 말이야. 소생, 이번 생에 진짜 개돼지한테 시집가더라도 절대 게이한테 시집가지 마. 정말 비참 해질 거야. 내가 왜 너한테 이런 소리를 하지? 서경천이 게이도 아니고.”
이 말을 들은 나는 갑자기 우울해졌다. 서경천이 게이가 아니라고 누가 그래?
네가 말했던 현실 게이 아내가 바로 나야.
나는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말을 꺼냈다.
“그만 울어. 뚝 그쳐.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가슴 미어지도록 울 것까지야 있어? 다음부터는 조심하고, 그런 곳에 이젠 얼씬도 하지 마.”
“응, 그래. 다음부터는 때려죽여도 안 갈게. 아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놈.”
온갖 욕설을 퍼붓고 나서야 교이는 울음을 그쳤다.
“됐어. 나 지금까지 한숨도 못 자서 좀 쉬어야겠어. 그 쓰레기 같은 놈 깨끗이 잊을 거야. 만난 지 이틀밖에 안 돼서 다행이지, 오래 만나서 감정이라도 생겼으면 죽을 만큼 힘들었을 거야. 그래서 충고하는 건데 주위에 이런 놈 만나는 사람 있으면 하루빨리 손절하라고 해. 될수록 빨리. 게이가 너를 좋아할 거라는 헛된 기대는 접어두는 게 좋을 거야. 그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교이는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고는 자러 갔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그녀 때문에 뒤숭숭했다.
나는 서경천이 나를 사랑해 주기를 바라 본적은 없었지만 그와 오랫동안 함께 한다면 해서는 안 될 기대나 의지를 하게 될지도 모르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장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세상 일은 단정 짓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잠이 확 깨서 침대에 앉아 휴대폰을 보았다.
동영상 사이트를 열자 갑자기 스팸이 튀어나와서 나도 모르게 터치했는데 하필이면 동성애자의 부인에 관한 동영상이었다.
소개를 간단히 훑어보니 한 여인이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에야 남편이 동성애자였음을 알게 된 내용이었다.
남편은 자신의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그 남자와 함께 보냈고 마지막에 전 재산까지 남자에게 물려주었지만 이 여인은 벌써 청춘기를 겪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이 남자를 위해 자신의 모든 청춘을 바쳤지만 남편의 한 치의 사랑도 얻지 못했다.
영화 중에서 그 부인은 늘 불안함 속에서 걷고 또 울었다. 그녀를 보고 있자 하니 마치 나의 미래라도 본 듯 괜스레 마음이 불안했다.
갑자기 앞서 며칠 동안 관계를 가지고는 아무런 보호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난 절대 영화 속 여인처럼 되고 싶지 않아.
나는 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손에 잡히는 대로 옷을 걸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약방에 가서 사후 피임약을 사야 해. 제발 효과가 있어야 될 텐데.
복도에서 서경천과 마주쳤다, 출근하는 길인지 그는 마침 문을 나서고 있었다.
그와 부딪쳤지만 사과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내 팔을 확 낚아채서는 무서운 표정으로 얘기했다. “뭐가 그리 급해?”
교이의 말들 때문에 답답하고 불안한 터라 그를 응대하기도 귀찮아서 그의 손에서 손을 빼고 뒤도 안 돌아보고 뛰었다.
시간을 계산해 보니 아직 48시간이 지나진 않았다, 약방에 48시간 후에도 복용할 수 있는 약이 있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다행히 구입하고 바로 약방에서 포장을 뜯고 생으로 먹었다. 목이 메어 눈이 돌아갈 뻔했다.
알약이 내 목구멍으로 넘어가고서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때려죽여도 절대 동성애자의 부인은 되기 싫어. 서경천의 아이 역시 낳지 않을 거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와 서경천의 결혼은 위험적이었다. 그가 소시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든 그는 절대 날 사랑하지 않을 것이고 나 역시 그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약방의 카운터에서 문 앞까지 몇 미터 안되는 거리를 걸으면서 서경천과 이혼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래, 지금 바로.
나는 손을 들어 택시를 잡아 서경천의 회사로 향했다. 스토리는 이틀 전과 똑같았다. 이쁘장한 여비서가 다급히 내 앞을 가로막고 못 들어가게 했다. 오늘 또 무슨 19금 스토리길래?
오늘은 서경천에게 더 중요한 얘기를 해야 하므로 있는 힘껏 여비서를 밀쳐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서경천씨 할 얘기가…”
말을 절반밖에 안 했는데 바로 목구멍에 걸렸다. 또 뭘 본 거지?
저번과 똑같은 상황, 서경천은 엉덩이가 거의 다 들어낸 채로 바지를 내리고 소파에 엎드려 있었고 백우는 그의 곁에 앉아 그의 엉덩이를 애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