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2화 질문 하나 해도 되나요?

  • 이건 무조건 벌 일 것이다. 벌 뿐만 아니라 완전히 학대이다.
  • 나는 평생 받을 고통을 다 받은 것 같다. 서경천이 내 몸에서 일어난 뒤, 내 온몸은 기차한테 짓눌린 것만 같았다.
  • 그는 나를 등지고 옷을 입는데 그의 완벽한 근육라인이 보여졌다.
  • 그러나 나는 소파에 앉아 쿠션으로 가슴을 가릴 수 밖에 없었다.
  • 내 옷은 이미 그로 인해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고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 그는 서랍 앞으로 걸어가 셔츠 하나를 꺼내 나에게 던져줬다.
  • 나는 바로 입고 정신없이 단추를 잠궜다.
  • 근데 바지가 없었다. 스웨터 원피스라 따로 바지를 안 입고 왔다.
  • 비록 서경천의 셔츠는 나에게 많이 컸지만 맨발로 나갈 수도 없었다.
  • 나는 온몸이 아파서 간신히 몸을 지탱하여 일어서서 말했다.
  • “바지 없어요.”
  • 그는 머리를 돌리고 나를 보았다. 눈에는 혐오로 가득 차 있었다.
  • “이따가 송비서 보고 바지 한 벌 갖고 오라고 할게.”
  • “당신 비서랑 사이즈가 달라요. 당신 비서 엉덩이가 나보다 훨씬 큰걸요.”
  • “관찰력 좋네.”
  • 그는 단추를 닫았고, 넥타이도 매었다. 그리고 정장 코트까지 걸치니 방금 짐승 같은 남자와 달리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 그는 거울 앞에서 소매 단추를 열심히 매었는데 단추가 너무 반짝거려서 불빛 아래 있는 내 눈이 멀 것만 같았다.
  • 나도 모르게 치욕스러운 느낌이 들어서 질문을 했다.  
  • “그러니까...”
  • 나는 소파 위에 웅크려 있었고, 큰 셔츠로 다리를 감싸며 말했다.
  • “난 게이 아내인 셈이죠?”
  • 거울에 비친 그의 잘생긴 얼굴에는 기쁨과 분노를 찾을 수 없었다.
  • 서경천은 무표정이 아니다. 나랑 있을때만 이러지. 나는 그가 그의 친구들과 대화할  때 하얀 이까지 보이면서 웃었던 것을 본 적이 있다.
  • 대답이 없어서 묵인한 것으로 느꼈다.
  • 어쩐지, 결혼한지 반년이나 지났는데도 눈꺼풀로도 나를 쳐다보지 않더니. 애초부터 여자를 안 좋아했구나.
  • 근데 오늘은 왜 나한테 이런 걸까?
  • 아니면 백우와 했어야 할 일을 내가 망쳐놔서 나한테 화 난건가?
  • 내 주변에는 동성애자인 친구가 없어서 관심이 조금 갔다.
  • “서경천, 당신 같은 사람들도 여자한테 충동적인 행동을 해?”
  • “우리 같은 사람?”
  • 그는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 그는 잘 생긴 척을 많이 한다. 넥타이만 하루 종일 매는 것 같다.
  • “당신을 차별하는 게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 “그러니까, 내가 게이라고?”
  • 그는 나를 힐끔 봤다.
  • “아니야?”
  • 그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 “어떻게 알아낸 거야?”
  • “백우 손이 당신 엉덩이까지 뻗었는데 나보고 어떻게 알아낸 거라니?”
  • 그는 나에게 걸어왔고, 두 손으로 소파의 등받이를 지탱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 나도 모르게 소파 안으로 움츠렸다.
  • 그의 눈빛은 소파의 어떤 초점에 갑자기 머물렀고, 나는 그의 눈길을 쫓아갔다.
  • 소파는 패브릭 재질이고, 베이지색으로 색깔이 연해서 방금 내가 묻힌 얼룩이 있었다.
  • 나는 얼굴이 빨개졌고, 서경천이 말한 것을 들었다.
  • “처음이었어?”
  • ‘처음이란게 이상한 건가?’
  • 나는 셔츠의 옷자락을 꽉 쥐었고 입을 다물었다.
  • 이때, 문이 열렸다. 아름다운 여비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 “서경천씨, 이 옷 괜찮나요?”
  • “내려놔.”
  • 서경천이 말했다.
  • 여비서는 문을 닫고 나갔고, 왠 원피스 하나가 나에게 던져졌다.
  • 핑크색과 주황색 니트 원단으로 만들어진 원피스였다. 몸에 딱 붙을 옷이라 싫었다.
  • 나는 옷을 들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색깔이 맘에 안 들어.”
  • “왜 찾아왔어?”
  • 그는 내 질문을 완전히 무시했다.
  • 나는 그제서야 그를 찾은 목적이 생각났다.
  • “할머니가 입원해서.”
  • “할머니가?”
  • 그의 표정이 바로 변했다. 
  • “왜 빨리 말을 안 해줬어?”
  • “나한테 말할 기회는 줬어요?”
  • 나는 더이상 옷의 색깔이나 스타일을 신경쓸 겨를 없이 바로 입었다.
  • 서경천은 책상 위에 놓인 휴대전화를 들고 밖으로 걸어 나갔고, 나는 옷을 입고 비틀거리며 그를 따라갔다. 
  • 나가자마자 백우와 마주쳤다. 서경천이 낮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하길래 나는 얼른 멀리 떨어져 서있었다.
  • 서경천은 말을 다 하고 머리를 돌렸다. 거리가 멀어진 것을 보고는 언짢은듯 큰 소리로 물었다.
  • “우리 몸에 가시라도 있냐?”
  • 가시뿐만 아니라 당신들의 비밀까지 알고 있으니, 멀리 숨어야 지.
  • 백우는 뒤돌아 나를 보고는 얼굴이 갑자기 또 빨개졌다.
  • 그는 얼굴이 참 잘 빨개지는 남자네. 어휴, 나는 잘생긴 오빠들 중 대부분은 게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 하늘 아래 이렇게 많은 독신녀들은 어떻게 살아가지?
  • 예를 들면, 맨날 연애하고 맨날 실연하고 있는 교이 아가씨 보고 어쩌라는 걸까?
  • 백우는 서경천의 측근 보조원이라서 당연히 병원에 같이 갔다.
  • 우리는 같은 차를 타고 가서 나는 자발적으로 조수석에 탔고, 백우랑 서경천은 뒤쪽에 앉았다.
  • 서경천의 차는 상무용으로 두 사람은 마주 앉고 있었다. 나는 백미러로 몰래 힐끔 보았다.
  • 백우는 피부가 하얗고 아름다워 전형적인 한국 꽃미남 스타일이었고, 반대로 서경천의 기질은 좀 복잡하다. 그의 얼굴은 아름답지도 호탕하지도 않다. 세련됐다고 표현해야 한다.
  • 당시를 생각해 보면, 나는 그와 약혼하기 전 처음으로 만났을 때, 어떻게 세상에서 이렇게 잘생긴 남자가 있는지 하며 놀라워했다.
  • 그리고 결혼하고 나서 나는 세상에서 이렇게 함께 지내기 힘든 사람이 있는지 느끼며 또다기 놀라워했다.
  • 이렇게 보면, 두 사람은 의외로 얼굴이 잘 어울린다.
  • 꽃미남과 멋진 남자, 어떻게 보면 눈을 정화 시킬 수 있다.
  • 갑작스럽게 내 좌석은 서경천의 말 없는 발차기를 당했다.
  • 그는 마침 내 엉덩이를 찼는데, 다행하게도 좌석의 질이 좋았다. 안 그러면 내 엉덩이는 아파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 그는 내가 그들을 훔쳐보는 것을 발견했고 매우 화가 났다.
  • ‘쩨쩨하네. 보는 게 뭐 어때서?’
  • 당신들의 비밀을 알아냈지만 나도 이미 대가를 치뤘잖아.
  • 나의 첫 경험을 사무실의 소파위에서 하다니.
  • 병원에 도착하자, 서경천은 급하게 내렸고, 나와 백우는 뒤에 따랐다.
  • 백우는 나를 보았고 얼굴은 여전히 빨갛게 물들었다. 얼굴이 빨간 남자아이는 진짜 귀엽다. 비록 나는 게이의 아내라는 불공평힌 대우를 받지만, 백우에 대한 미움은 단 일 도 없었다.
  • 어차피 나도 서경천을 사랑하지도 않고, 서경천도 나를 사랑하지도 않기에, 우리 둘의 혼인은 어떻게 된 일인지 다 알고 있었다.
  • 나와 백우는 뒤에서 서경천을 따라가는데, 서경천이 너무 빨리 걸어서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와 백우는 단둘이서 같은 엘리베이터를 탔다.
  • 나는 도저히 활기찬 지식욕을 참지 못해 옆모습만 보여주던 꽃미남에게 말을 건넸다.
  • “백 팀장님.”
  • “백우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 그는 바로 말했다.
  • “네네,”
  •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뭐 좀 물어봐도 될까요?”
  • “네, 말씀하세요.”
  • 그는 예의가 있었다.
  • “서경천이랑 백우씨랑 누가 공이고 누가 수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