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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창백한 별장, 사라진 그림자

  • "오빠도 현장에 있었잖아."
  • 서린은이 억울하다는 듯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 "부모님께 사실이 아니라고 말씀드려줘. 부모님이랑 오빠들이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데, 내가 어떻게 감히 그런 입에 담지도 못할 말을 하겠어?"
  • 서재우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울먹이는 서린은과, 지나치게 침착한 태도로 일관하는 서연을 번갈아 보았다. 사실 서재우는 서린은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장면만 목격했을 뿐, 그 직전에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 서연은 서재우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서린은에게 일부러 누명을 씌웠다. 전생에 자신이 억울하게 누명을 썼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서린은도 똑같이 느껴보게 하려는 것이었다.
  • “린은이는 그런 말 한 적 없어. 네가 린은이를 질투하는 거잖아. 우리가 린은이만 예뻐하는 것도, 린은이가 십 년 넘게 서가의 딸로 살아온 것도 못마땅해서 일부러 해치려 한 거고!”
  • 서재우는 거짓말을 선택했다. 착한 동생 서린은이 가족을 헐뜯는 말을 했을 리 없다고 굳게 믿었다.
  • 그가 보기에 이 집안에서 악독한 사람은 오직 서연 하나뿐이었다.
  •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하세요."
  • 서연은 태연하게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그 당당한 태도에 서 회장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서 회장은 이렇게 거칠고 길들여지지 않은 딸은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연의 외모는 이용 가치가 충분할 만큼 뛰어났다. 다섯째 서재성에게 신장을 이식한 뒤, 서연을 적당한 가문에 정략결혼시켜 집안에 이익을 가져오게 하면 그만이었다.
  • 부자들은 뭐든 부족할 게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곁에 두고 가지고 놀 만한 대상이 부족할 뿐이었다. 특히 길들이기 힘든 새끼 고양이 같은 존재라면 더더욱.
  • 계산을 끝낸 서 회장은 일단 일을 크게 만들지 않기로 했다. 우선 서연을 집에 붙잡아 두고, 나머지는 나중에 천천히 따져보기로 한 것이다.
  • "됐다. 오해가 있었겠지. 우리는 린은이 그런 아이가 아니라고 믿는다. 서연, 네가 린은이를 밀친 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서 생긴 실수라 생각하고 이번만 넘어가 주마.”
  • “오늘 일은 다시는 입 밖으로 꺼내지 마라. 재성이에게 신장이 필요한 건 맞지만, 우리 집안이 좋은 신장 하나 찾지 못할 만큼 궁핍하지는 않다."
  • 서연이 그 위선을 비웃으며 대꾸했다.
  • "그래야겠죠. 안 그러면 당신들 정말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이니까요."
  • "너……! 말이 어쩜 그렇게 독하고 사납니! 왜 린은이처럼 순하고 얌전하게 굴지 못해? 돌아오자마자 가족을 들쑤셔 놓다니, 정말 무례하구나!"
  • 서 부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 “화나신 거 알아요. 그래도 일단 화 좀 푸세요. 저는 교양도 없지만, 예의도 없고 양심도 없거든요. 앞으로도 여러분 속 뒤집어놓을 일이 아주 많을 거예요.”
  • 또다시 말다툼이 벌어질 것 같자, 아버지가 짜증 섞인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 "그만해라. 너도 피곤할 테니 집사를 따라 방으로 가서 쉬도록 해."
  • 가장의 서슬 퍼런 명령에 서 부인와 서재우는 분노를 삼킬 수밖에 없었다.
  • 서연은 집사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전생에 자신이 당했던 원한은 하나씩 천천히 갚아줄 생각이었다.
  • 전생과 마찬가지로 서연은 복도 끝에 있는 작은 방으로 안내받았다. 오히려 잘됐다. 이 방에서는 맞은편 별장이 훤히 보였다.
  • 서연은 그 남자가 너무 궁금했다. 하고 싶은 말도 많았고,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았다.
  • 창가에서 한참을 기다렸지만 맞은편 별장에서는 좀처럼 남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커튼 사이로 희미한 불빛만 새어 나올 뿐이었다.
  • 아직 밤 8시밖에 되지 않았다. 기억 속의 그는 이렇게 일찍 잠들 사람이 아니었다.
  • 설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