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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이번에 쫓겨날 사람은 내가 아니다

  • 구란의 눈은 새빨갛게 충혈된 채 넘칠 듯한 고통과 연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서연을 품에 안은 구란의 목소리는 부서질 듯 떨렸다.
  •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더 일찍 돌아왔어야 했어. 치료 핑계로 해외에 나가는 게 아니었어. 네 곁을 지켰어야 했는데."
  • 구란은 고개를 숙여 조심스럽게 서연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영혼 상태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서연은 경악했다.
  • '으악, 진짜…… 변태는 아니겠지?'
  • 다행히 구란은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구란은 정성스럽게 서연에게 깨끗한 옷을 입혀 주고, 휠체어에 앉혀 2층 통유리 앞으로 데려갔다. 그곳은 생전 구란이 늘 앉아 서가를 바라보던 바로 그 자리였다. 이제는 그 자리에 서연이 앉아 창밖을 향했다.
  • "연연아, 여기서 지켜봐. 내가 네 대신 서가를 무너뜨릴 거야."
  • 구란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으며 서늘한 살기를 띠었다.
  • "너를 상처 준 놈들, 단 한 명도 남기지 않겠다."
  • 서연은 그 복수의 다짐을 들으며 의식을 잃었다. 끝내 서가가 무너지는 장면은 보지 못했다. 서연의 혼이 완전히 흩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 다시 눈을 떴을 때, 서연은 회귀해 있었다. 서재우가 자신을 데리러 왔던 바로 그날이었다.
  • "언니…… 나 린이야."
  • 눈앞에서 서린이 울먹이며 몸을 떨고 있었다.
  • "오늘 언니한테 부탁하고 싶었던 게 있어서 왔어. 집으로 돌아가더라도 제발 나를 쫓아내지 말아줘. 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오빠들을 정말 좋아해. 떠나기 싫어. 설령 서가에서 하녀로 살아도 좋으니까…… 제발 부탁이야."
  • 서린은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며 가련한 연기를 펼쳤다. 전생의 서연은 이 가증스러운 눈물에 속아 동생이 먼저 마음을 열어줬다며 기뻐하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이 눈물 뒤에는 곧 도착할 서재우에게 누명을 씌우기 위한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
  • 전생에서 서린은 일부러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고, 마침 도착한 서재우는 서연의 뺨을 갈기며 "너 같은 독한 년은 내 동생도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 "……언니, 나를 무시하는 건 내가 싫어서야?"
  • 기억에서 빠져나온 서연은 하얗게 분칠한 서린의 꽃 같은 얼굴을 내려다보며 차갑게 비웃었다.
  • "무시한 게 아니라."
  • 서연의 목소리에 서늘한 기운이 서렸다.
  • "어떻게 걷어차야 잘 굴러갈지 생각 중이었거든." "뭐……?"
  • 서린이 멍하니 눈을 깜빡이는 순간, 서연의 발이 거침없이 꽂혔다.
  • 퍽—! "꺄악—!"
  • 서린은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이마가 찢어지며 선명한 핏자국이 바닥으로 번졌다. 서연은 솔직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왕이면 저 여우 같은 것이 죽어버렸어야 했다.
  • "린아!"
  • 그때 별채로 들어선 서재우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와 서린을 끌어안았다.
  • "오빠…… 아파요……."
  • 서린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금방이라도 기절할 듯 보였다. 아프다고? 고작 이 정도로 엄살이라니. 서연은 속으로 비웃었다. 전생에서 자신이 겪은 고통에 비하면 이건 시작도 아니었다. 이번 생에는 그 모든 고통을 훨씬 더 가혹하게 되돌려줄 작정이었다.
  • "서연! 네가 밀었지?!"
  • 서재우가 짐승처럼 포효했다. 서연은 여유롭게 입꼬리를 올렸다.
  • "밀긴. 발로 찼어." "왜……? 언니가 내가 싫다면 내가 집에서 나갈게……."
  • 서린은 몸을 떨며 서재우의 품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끝까지 비련의 여주인공 연기를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 "좋아. 그럼 지금 당장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마. 서가 사람 누구도 만나지 말고."
  • 서연의 담담한 요구에 서재우가 고함을 쳤다.
  • "그만해! 너 같은 잡종이 무슨 권리로 린이를 가라 마라 하는 거야!" "나는 서씨 가문의 친딸이고, 저 애는 가짜잖아. 재벌 집안이라면서 진짜와 가짜도 구분 못 해?"
  • 서린은 눈물을 머금은 채 억지로 몸을 일으키는 척했다.
  • "오빠, 그만 싸워요…… 제가 지금 나갈게요." "아니야, 린아. 이 오빠가 있는데 누가 너를 쫓아내!"
  • 하지만 서린은 한 발 내딛는 척하더니, 이내 힘이 풀린 듯 쓰러지며 기절한 연기를 시작했다. 서재우는 미친 듯이 동생의 이름을 외치며 서린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서연을 향해 독기 어린 시선을 꽂았다.
  • "너 같은 악독한 년은 우리 집에 필요 없다. 서가에 발도 들이지 마라!" "그게 네 마음대로 될까?"
  • 서연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하는 순간, 서재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통화를 이어가던 서재우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려갔다.
  • "……네. 지금, 지금 데리고 가겠습니다."
  • 전화를 끊은 서재우의 당혹감을 지켜보며 서연이 비웃음을 흘렸다.
  • "와, 진짜 태세 전환 빠르네." "부모님이 원해서 데려가는 거다! 내가 너를 데려오고 싶어서가 아니야!" "그래?"
  • 서연이 서재우에게 한 걸음 다가서며 서늘하게 말했다.
  • "그럼 나를 데려가고 싶으면, 빌어."
  • 서연은 잘 알고 있었다. 서가는 아직 서연이 필요했다. 투병 중인 서가 다섯째의 '여분 신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복수를 완수하기 위해 서연은 반드시 그 지옥 같은 집구석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 "……너."
  • 서재우는 이를 악물었다. 서연을 데려가고 싶지 않았지만, 부모님의 엄중한 명령이 머릿속을 스쳤다. 결국 서재우는 굴욕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 "……서연아. 제발, 같이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