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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구란의 품에 안긴 도둑고양이

  • 구란의 가슴이 서연의 팔에 닿는 순간, 찰나의 정적이 흐르며 서연의 이성이 묘하게 흐트러졌다. 하지만 서연은 곧바로 평정을 되찾고 고열로 신음하는 구란을 살폈다.
  • "아파? 조금만 참아, 내가 불어줄게."
  • 서연은 몸을 숙여 구란의 이마에 부드럽게 숨을 불어넣었다. 입술이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숨결 덕분인지, 구란의 긴장이 조금씩 풀려갔다. 이윽고 흐려지던 구란의 눈동자가 서서히 감기며 의식을 놓았다.
  • 잠든 것을 확인한 뒤에야 서연은 소독을 멈췄다. 다행히 체온은 조금씩 내려가고 있었다. 다음은 다리 치료였다. 서연은 늘 지니고 다니던 은침을 꺼내 구란의 다리에 조심스럽게 시술을 시작했다.
  • 침술을 마쳤을 때 이미 두 시간이 흘러 있었다. 서연은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배가 고파 속이 꼬르륵거렸지만, 더 이상 움직일 기력조차 없었다. 서연은 고개를 떨군 채 침대 가장자리에 기대어 그대로 잠이 들었다.
  • 다음 날 아침, 정적을 깨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에 서연은 번쩍 눈을 떴다.
  • "구란! 담장을 넘은 도둑이 들었다는 보고가 있었어! 너 괜찮아?!"
  • 맑고 높은 목소리가 방으로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서연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커다란 손이 서연의 머리를 꾹 눌러 이불 안으로 밀어 넣었다.
  • "나오지 마."
  • 구란의 낮고 단호한 목소리였다. 서연은 반사적으로 입을 다물고 이불 속에 웅크렸다. 그제야 어젯밤 침술을 하느라 구란에게 바지를 입히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지금 구란은 속옷 차림이었고, 서연은 그의 품 안에 안긴 채 이불에 덮여 있는 민망한 상황이었다.
  • '분명 침대 밑에 기대어 잤는데, 언제 침대 위로 올라온 거지?'
  • 서연이 당황하는 사이 방문이 벌컥 열렸다.
  • "구란, 무사한 거야?"
  • 구혁이 급하게 방으로 들어오려다, 구란의 서늘한 눈빛과 마주치고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 "무슨 일로 온 거지." "그 여자가 너를 이 낡은 저택으로 보냈다고 해서……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 봐 걱정돼서 왔죠. 게다가 담장에 누군가 넘은 흔적도 있었단 말이에요. 도둑 든 거 맞죠?" "내가 설명하지—"
  • 구란의 말이 길어지려는 찰나, 이불 속이 답답했던 서연이 홱 하고 이불을 걷어 올렸다.
  • "후— 답답해서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 서연이 이불을 너무 과하게 젖히는 바람에 바지를 입지 않은 구란의 하반신이 구혁의 시야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 "……너, 너희들……!"
  • 구혁은 경악하며 말을 잇지 못한 채 얼어붙었다. 구란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 "구란, 꽤 숨겨둔 비밀이 많았나 보네."
  • 서연은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 "사실…… 제가 배가 너무 고파서요. 먹을 것도 좀 빌리고, 잠깐 쉴 데도 필요해서 몰래 들어왔어요." "알았어요! 알았어! 아무 말도 안 할 테니까 걱정 마요!"
  • 구혁은 무언가 큰 오해를 한 듯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갔다. 방 안에는 다시 서연과 구란, 두 사람만 남았다.
  • "이름이 구란이었구나." "방금 그 말, 무슨 뜻이지."
  •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지만, 서연은 구란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구란이 다시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 "왜 배가 고프다고 거짓말을 한 거지?"
  • 사실 그건 임기응변으로 던진 핑계였다. 하지만 서연은 앞으로 구씨 가문과 복잡하게 얽히게 될 상황을 떠올렸다. 서가에서 핍박받으며 굶주릴 날이 올지도 모른다. 차라리 지금부터 구란이라는 확실한 '식량원'을 확보해 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 서연은 몰래 자신의 팔을 세게 꼬집었다. 순식간에 눈가가 붉어지며 눈물이 고였다. 헝클어진 머리와 붉어진 얼굴로 손으로 입을 가린 모습은, 누가 봐도 연약하고 힘없는 소녀였다.
  • "어제도 봤잖아. 나 사실 서가에서 잃어버렸던 친딸이래."
  • 서연은 고개를 숙인 채 애처로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그런데 거기 사람들, 나를 전혀 반기지 않아. 데려가자마자 화를 내고 함부로 대하고…… 밥도 제대로 안 줬어. 그래서 몰래 빠져나온 거야. 너한테 뭐라도 얻어먹을 수 있을까 싶어서."
  • 구란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
  • "잘 곳도…… 없는 건가?"
  • 서연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이윽고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졌다.
  • "없는 건 아닌데…… 내 방이 너무 좁고 버린 물건들만 쌓여 있어. 냄새도 심하고 벌레도 많아서 도저히 있을 수가 없어."
  • 구란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치켜올라갔다. 서씨 가문이 딸(서린)을 얼마나 애지중지하는지는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새로 찾은 친딸을 이런 식으로 대우하다니.
  • "너, 어제 나를 살려줬었지."
  • 구란의 시선이 복잡하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