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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죽음보다 차가운 진실

  • 약은 서린은이 직접 달여서 가져온 것이었다.
  • 서재우는 옆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서린은을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 “……서연이 죽었어.”
  • 서린은의 얼굴에 순식간에 경악이 번졌다.
  • “뭐……? 어떻게 된거야?”
  • “이 약에 손댄 사람, 너 말고 또 있어?”
  • “오빠…… 설마 지금 나 의심하는거야?“
  • 서린은은 창백한 얼굴을 들어 서재우를 바라봤다. 곧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억울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었다.
  • "언니가…… 결혼하기 싫어서 스스로 독을 마신 거 아닐까? 언니는 의술도 할 줄 알잖아. 약초에도 익숙하고…….”
  • 서재우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 서연은 1년이 넘도록 집 안에 감금되어 있었다. 혹시라도 자살을 시도할까 봐, 예전에 서재우가 직접 하인들에게 서연의 몸을 샅샅이 뒤지게 한 적도 있었다.
  • 독약을 숨겨둘 가능성은 애초에 없었다.
  • 범인은 뻔했다.
  • 서린은이었다.
  • 하지만 서연 하나 때문에 서린은을 경찰에 넘기는 일은 할 수 없었다.
  • 서재우는 서린은의 눈물을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 “무서워하지 마. 오빠는 널 믿어.”
  • “우리가 언니를 제대로 막지 못해서…… 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야. 부모님이 물어보시면…….”
  • “흥. 서연은 그동안 저지른 짓도 많잖아. 진작 죽었어야 할 애야.”
  • 서재우가 차갑게 말했다.
  • “차라리 잘됐어. 시집가서 서씨 집안 망신시키는 꼴을 보느니 이게 낫지.”
  • 이미 마음을 굳힌 듯했다.
  • 서재우는 서린은을 바라봤다.
  • “린은아, 가서 옷 갈아입고 씻어. 몸에 뭐 묻은 거 하나도 남지 않게.”
  • 그는 특히 마지막 말을 강조했다.
  • 서린은이 알아듣길 바랐다.
  • 자신의 옷이나 몸에 증거가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 서린은은 곧장 방을 빠져나갔다.
  • 서재우는 주변을 살피더니 손수건을 꺼내 약그릇에 남은 지문을 하나하나 닦아냈다.
  • 그뿐만이 아니었다. 방 안을 샅샅이 뒤지며 서린을 범인으로 지목할 만한 흔적이 남아 있지는 않은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 “서연아, 날 원망하지 마.”
  • 서재우가 죽은 서연을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 “린은이는 내 동생이잖아. 난…… 걔를 지켜줘야 해.”
  • 그 광경을 허공에서 지켜보던 서연의 영혼이 차갑게 조소했다. 가짜 동생이 진짜 동생을 죽이고, 친오빠라는 사람은 그 살인을 덮기 위해 증거까지 없애고 있었다.
  • 정말이지…… 좋은 오빠였다.
  • ‘내가 대체 어떻게 눈이 멀었길래…….’
  • 서연은 그동안 서씨 가문의 인간들을 가족이라고 믿었다. 그들을 가족으로 인정받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 하지만 돌아온 건 배신과 감금, 그리고 죽음이었다.
  • 억울함, 후회, 원망.
  • 온갖 감정이 한꺼번에 치솟았다.
  • 서연은 이를 악물고 서재우에게 달려들었다.
  • 죽어서라도 복수하고 싶었다.
  • 목을 졸라 죽이고 싶었다.
  • 하지만—
  • 손이 그대로 서재우의 목을 통과했다.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복수할 수도 없었다.
  • ‘그럴 거면…… 왜 나를 귀신으로 만든 거야?’
  • 차라리 아무것도 남기지 말고 그대로 사라지게 해주지.
  • 그때였다.
  • 복도 저편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 서연이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보는 순간, 신랑 예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문을 벌컥 열고 뛰어 들어왔다.평소라면 차갑고 침착했을 그의 잘생긴 얼굴에는 당혹감과 다급함이 역력했다.
  • ‘……저 남자.’
  • 서연은 단번에 알아봤다.
  • 저택 맞은편 별장에 살던 남자였다. 분명 장애가 있어 휠체어를 사용하던 사람.
  • 그런데 1년 전부터 갑자기 모습을 감췄던 게 아니었나?
  • 서연은 무심코 그에게 다가갔다.
  • 하지만 남자는 그녀를 그대로 통과해 지나갔다. 마치 넋이라도 빠져나간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달려간 곳은 다름 아닌 서연의 시신 앞이었다.
  • “……연아?”
  • 남자는 서연의 시신을 조심스럽게 품에 안았다.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입가에 번진 피를 계속해서 닦아냈다. 마치 그렇게 하면 죽은 그녀가 다시 눈을 뜨기라도 할 것처럼.
  • 서재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 “서연이 죽었으니…… 두 사람 혼인은 없던 일로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 담담한 말투였지만, 상대의 반응을 살피는 기색이 역력했다.
  •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 깊고 서늘한 눈동자 속에서 거센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 “……어떻게 죽었습니까?”
  • 서재우는 순간 눈을 피했다.
  • “서연이는 원래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애였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뭐가 이상합니까?”
  • 그때 서린은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어느새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데다, 얼굴에는 정성스럽게 화장까지 한 상태였다.
  • 서린은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구 오빠…….서연 언니는 오빠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 서린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 “결혼한다는 말을 듣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예요.”
  • 구란의 차가운 시선이 두 사람을 훑고 지나갔다. 귀국하기 전, 구란은 이미 지난 1년 동안 서연이 이 집에서 어떤 취급을 받아왔는지 낱낱이 조사해 둔 상태였다. 그 사실을 몰랐다면 저 가증스러운 남매의 말을 믿었을지도 모른다.
  • 구란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서연을 안아 들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 순간, 서린은이 다급하게 구란의 앞을 가로막았다.
  • "오빠…… 저, 사실 예전부터 오빠 좋아했어요. 서연 언니보다 제가 천 배, 만 배는 더 잘할 수 있어요. 제발 한 번만 저를 봐주시면 안 돼요?"
  • “꺼져!”
  • 구란은 앞을 가로막은 서린은을 거칠게 걷어찼다.
  • “네가 감히 그녀와 비교해?”
  • “구 오빠…….”
  • 서린은은 바닥에 나뒹굴며 피를 한 모금 토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그를 쫓아가려 했다.
  • 하지만 서재우가 서린은을 붙잡았다.
  • “그만해. 우리가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 서재우는 남자의 신분과 배경을 떠올리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만약 저 남자의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서씨 가문은 무사하지 못할지도 몰랐다.
  • 한편, 남자는 서연을 품에 안은 채 곧장 집으로 향했다.
  • 그가 데려간 곳은 서씨 가문 저택 바로 맞은편에 있는 별장이었다. 서연은 살아 있을 때 저 별장을 수없이 바라봤다.
  • 그곳에는 늘 혼자 지내는, 어딘가 처연해 보이는 장애인 남자가 살고 있었다. 남자는 매일 2층의 커다란 통유리창 앞에 앉아 서씨 가문을 바라보곤 했다.
  • 그가 서씨 가문을 바라본 건 석 달. 서연 역시 그런 그를 바라본 건 석 달이었다.
  • 그러다 어느 날, 남자가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서연은 그가 죽은 줄로만 알았다.
  • 그런데 지금—
  • 그 남자가 다시 그녀 앞에 나타났다.
  • 대체…… 이 남자는 누구일까?
  • 서연의 혼은 고란의 주위를 맴돌며 그를 관찰했다. 구란은 마치 깨지기 쉬운 보물을 다루듯 서연을 욕조에 눕히고 얼굴에 묻은 피를 정성스럽게 닦아냈다. 이윽고 구란이 서연의 옷 단추를 풀기 시작하자 영혼 상태의 서연이 비명을 질렀다.
  • '야, 미쳤어?! 나 이미 죽었거든? 왜 남의 몸에 손을 대!'
  • 물론 구란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옷을 전부 벗겨낸 구란은 말라비틀어지고 상처투성이가 된 서연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혐오나 경멸 대신, 넘칠 듯한 고통과 미칠 듯한 연민만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