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4화 내가 또 뭘 알아냈지?

  • 나는 마음이 답답하고 괴로웠다. 서경천과의 결혼이 끝날 때까지 순결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이변이 일어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 나는 교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 그녀는 얼떨떨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 “너 자고 있어?”
  • “말투가 왜 이렇게 놀라워해?”
  • “이제 8시밖에 안됐어.”
  • “8시에 자면 안 된다고 누가 규정이라도 했어?”
  • 나는 그녀와 말싸움하기 싫어 간단명료하게 말했다.
  • “나와, 술 한잔하자.”
  • “네 주량으로 무슨 술, 됐어.”
  • “교이야.”
  • 나는 마치 부모님이 돌아가신 듯 너무 괴로웠다.
  • “나 서경천이랑 잤어. 빨리 나와서 나 위로해 줘.”
  • “어?”
  • 교이의 목소리는 곧 기운을 차렸고 나는 그녀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는 소리까지 들었다.
  • “어떻게 된 거야? 너 드디어 적의 내부에 침투한 거야?”
  • “잔말 말고, 나 칵테일바에서 기다릴게.”
  • “거기 뭐 볼 거 있어. 잘생긴 오빠들도 없는데. 내가 괜찮은 곳으로 데리고 갈게. 거기 오빠들은 하나같이 다 잘 생겼어. 내가 주소 보내줄게!”
  • 나는 교이가 보내준 주소대로 그 술집에 도착했다. 밖에서 볼 때도 이상하게 여겨졌지만 들어가서 술을 시키고 바에 앉으니 이곳이 더욱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 이곳은 여자애들은 거의 없고 모두 하나같이 남자들만 있었다. 하지만 교이가 말한 대로 이곳의 오빠들은 정말 모두 잘생겼다.
  • 심지어 술을 따르는 웨이터까지도 잘생겼다. 
  • 하지만 그는 술을 놔두고 그냥 가버렸다. 태도가 아주 냉담했다.
  • 나는 비록 경국지색의 미녀는 아니지만 우리 화성에서는 그래도 손꼽히는 미녀이다. 그가 설령 여자친구가 있다고 해도 이렇게 싫어하는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지 않나.
  • 나는 술을 붓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시선을 바의 곳곳으로 움직였다.
  • 어, 나는 마치 대단한 상황을 발견한 것 같았다.
  • 저 꽃미남은 왜 그 우람하고 덩치가 큰 남자 어깨에 기대고 있고 그 남자는 꽃미남의 엉덩이를 만지고 있지.
  • 나는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마침 이때 교이가 와서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 “교이야, 저기 저거, 너 봤어?”
  • 나는 그녀를 끌어당기며 내가 방금 발견한 격렬한 장면을 기리켰다.
  • 그녀는 의외로 담담했다.
  • “뭐가 이상해, 여기는 다 이렇게 한 쌍이야.”
  • 나는 눈을 깜박이며 정신을 차렸다.
  • “너 나한테 오라고 한 곳이 게이바야?”
  • “뭐가 어때, 게이바에 잘생긴 남자가 많잖아!”
  • “너 미쳤어, 아무리 잘생긴 남자들이 많다고 해도 아무도 눈길을 안주잖아.”
  • “최소한 보는 눈이 즐겁잖아. 에이, 네가 서경천이랑 결혼한 뒤부터 화성은 볼만한 남자가 별로 없어.”
  • 교이는 다리를 꼬고 술잔을 들었다. 입에는 갸는 시가를 물고 있었다.
  • 나는 그제서야 그녀가 오늘따라 유난히 남성스럽게 셔츠에 정장을 입고 온 걸 눈치챘다. 그녀는 키가 커서 가정 형편이 좋았다면 모델 일을 했을 것이다. 거의 180센치의 키에 이런 걸 입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 “대체 뭔 짓을 하려는 거야?”
  • 나는 그녀의 옷을 잡아당겼다.
  • “아마 저 오빠들이 나를 남자로 생각하고 로맨틱한 사랑을 시작할지도 모르잖아?”
  • “같이 자면 들통나잖아.”
  • “너 왜 이렇게 속물이야, 플라톤 몰라?”
  • 그녀는 팔꿈치로 나를 툭 쳤다.
  • “말해봐, 너랑 서경천은 어떻게 된 거야?”
  • 금방은 너무 답답해서 못 참고 말했는데 이제 좀 진정되니 조금 후회됐다. 나는 서경천에게 그의 비밀을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나도 가장 중요한 부분을 생략했다.
  • “나 그 사람의 사무실로 찾아갔어, 그리고…”
  • “어?”
  • 그녀는 손에 쥔 수박을 먹는 걸 잊을 정도로 흥미로워 했다.
  • “이렇게 자극적이야? 평소에 집에서는 너 쳐다도 안 봤잖아, 그런데 어떻게 이번에는 사무실에서 그럴 수가 있지?”
  • “내가 어떻게 알아?”
  • 나는 속으로 분명히 원인을 알고 있지만 말할 수가 없었다.
  • “혹시.”
  • 그녀는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 “그에게 특별한 애호가 있는 게 아닐까. 예를 들면 어떤 특별한 장소, 뭐 사무실, 회의실, 엘리베이터 같은 곳을 선호한다든지.”
  • “변태같아, 그만해.”
  • “이건 변태에 축도 못 들지 요즘 더 짜릿한 장소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어. 예를 들면 묘지라든지, 아무도 없는 초원이라든지…”
  • “넌 대체 왜 아는 게 많니?”
  • 교이가 온통 야한 얘기를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사실 그녀는 아직 어린애다. 남자친구는 매일 사귀지만 저녁만 되면 헤어졌다. 하루를 버티지 못하는 연애를 하고 있다.
  • “인터넷을 돌아다니면 세상사 다 알아.”
  • 교이는 술을 한 모금 크게 마시고 나를 쳐다보았다.
  • “무슨 느낌이야?”
  • “뭐가 무슨 느낌이야?”
  • 나는 그녀가 노려보는 것이 몹시 괴로웠다.
  • “서경천이랑 그거할 때, 무슨 느낌이었냐고?”
  • 그녀의 얼굴이 내 얼굴에 곧 붙을 것 같았다.
  • 술집 안이 어둡고 머리 위의 등이 이리저리 흔들려서 설사 내 얼굴이 붉어지더라도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 술이 두어잔 들어가니 수치심은 서서히 가라앉았다.
  • “아무 느낌도 없었어.”
  • “말도 안 돼. 서경천이 화성 꽃미남 차트에서 섹시 부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거 알아 몰라?”
  • “너 또 어디서 알게 된 차트야?”
  • “내가 너한테 나랑 같이 명원파티에 가자고 하면 늘 안 갔잖아, 어떡하냐, 세대차이 느껴진다.”
  • 교이가 말하는 명원파티는 바로 전 화성의 고관 귀인 아가씨 사모님들이 모이는 모임인데 나는 그곳에 가기 싫었다.
  • “나 그런데 안가, 얕잡아 본단 말이야.”
  • 비록 우리 가족도 화성의 4대 가문 중 하나지만 우리 엄마는 본처가 아니기 때문에 나도 소 씨네 집안에서 대접받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 다행히 우리 아빠가 나를 좋아하셔서 잘해 주셨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 나를 소 씨네 집으로 데리고 왔다. 위로 오빠 한 명에 언니 두 명이 있었는데 관계는 어색할 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없을 때 그 두 언니는 신데렐라의 두 언니와 별 다를 게 없었다.
  • 그 때문에 나는 진정한 부유한 집안 아가씨들 울타리에 들어가지 못하고 외곽에 속해 밖에서 어슬렁거리는 편이었다.
  • “얕잡아 볼게 뭐 있어. 나도 첩이 낳았잖아.”
  • 교이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 내가 고개를 돌려 째려보자 그녀는 즉시 사과했다.
  • “미안 미안, 너희 엄마가 우리 엄마랑 다른 건 알지만 너희 엄마는 너무 착하고 너무 운이 없어서 일찍 돌아가셨어. 역시 우리 엄마가 대단해, 사악한 본처를 밀어내고 상위에 올랐으니, 하하하하.”
  • 그녀는 어쩜 웃음이 나올까, 나는 그녀만큼 속이 없지 않다.
  • 나는 술을 음미하며 시선은 술집 안을 거닐었다.
  • 여기는 시끄러운 음악소리도 없고 가슴을 들뜨게 하는 DJ도 없어서 환경은 좋은 편이다.
  • 술을 많이 마셔서 화장실 가는 길에 한 모퉁이에서 두 남자는 부둥켜 안고 있었다.
  • 술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인데 두 사람은 아주 예쁘게 안고 있어서 불편함이 느껴지진 않았다.
  • 나는 그저 아무렇지 않게 한번 쓱 훑어봤을 뿐인데 유난히 눈에 띄는 한 잘생긴 남자의 옆모습에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 그는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 사무직 엘리트의 옷차림이었다.
  • 백우..? 낮에 회사에서 입었던 옷을 입고 있었다.
  • 하지만 그의 뒤에 있는 남자는 서경천이 아니었다!
  • 어머, 상류층은 원래 다 이렇게 난잡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