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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꽃잎 목욕

  • 문범은 경아가 너무 깊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말했다.
  • "죄송한데 꽃잎과 뿌리를 다듬어서 욕조에 넣어주세요."
  • "……."
  • 경아는 한숨 돌렸다.
  • "네. 바로 할게요."
  • 욕조는 이미 뜨거운 물로 가득 찼고 뿌연 연기가 올라왔다.
  • 경아는 신속히 꽃잎과 뿌리를 손질하면서 속으로 투덜거렸다.
  • '시크하게 생긴 사람이 꽃잎 목욕을 하는 취향이 있을 줄 몰랐네!'
  •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 됐다.
  • '꽃잎 목욕을 한다 쳐도 왜 작약을 고른 거지? 그리고 뿌리까지?'
  • '무슨 비밀이 있는 거지?'
  • 경아가 잠시 생각에 잠겨있을 때 방금 나갔던 문범이 다시 문을 열고 들어왔다.
  • 손에는 몇 가지 약재가 올려져 있는 쟁반이 있었다.
  • 문범은 들어와서 아무 말도 없이 약재를 물에 넣었다.
  • 금방 약 냄새가 공기 중에 퍼졌다.
  • '알고 보니 약욕이구나!'
  • 경아는 자신이 방금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깨닫고 갑자기 민망해서 들고 있던 꽃을 급하게 다듬고 바닥에 떨어진 꽃대와 포장지를 치웠다.
  • 그리고 일어나 문범에게 말했다.
  • "다 했습니다."
  • "좋아요. 나갑시다. 결제해드릴게요."
  • 경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따라 나갔다.
  • 준혁은 인기척이 나서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켜 그쪽을 쳐다봤다.
  • 경아를 보고 의외라는 듯 멈칫한 뒤 여유롭게 걸어와 물었다.
  • "아이는 괜찮아요?"
  • 경아는 놀라서 황급히 대답했다.
  • "낮에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준혁은 키 185 이상에 엄청난 포스가 느껴져서 위압감이 느껴졌다.
  • 경아는 쭈뻣거렸다.
  • 준혁은 침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아무 말 없이 큰 보폭으로 욕실에 들어갔다.
  • 작은 공간에 연기가 자욱했고 준혁은 옷을 벗고 거울에 서린 김을 닦았다.
  • 거울엔 바로 준혁의 어깨에 있는 흉터들이 4개 비쳤다.
  • 흉터의 정도는 달랐지만 선명했다.
  • 준혁은 정신이 몽롱했다.
  • 과거 할아버지가 병이 위중하다고 거짓말을 해서 하소원과 호텔에서 관계를 가지게 했었다.
  • 하룻밤을 그렇게 보내고 새벽에 일어나니 품에 안겨 있는 사람은 소원이었고 침대에 있는 빨간 자국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준혁은 자신과 하룻밤을 보낸 여자가 소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 '5년 전에 그 여자가 너무 세게 잡았었지!'
  • 준혁은 표정이 살짝 굳었다가 몸을 돌려 욕조로 걸어갔다. 하지만 갑자기 뾰족한 물건을 밟았고 아파서 인상을 찌푸렸다.
  • 허리를 굽혀 주어보니 여자 반지였다.
  • 간단한 디자인에 별로 비싸 보이지 않았다.
  • '여기에 왜 여자 반지가 있지?'
  • 준혁은 인상을 썼고 문득 전에 꽃을 가져다준 그 여자가 생각났다.
  • "그 여자의 반지인가?"
  • 경아는 나와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 그 전담 비서의 손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 작약 꽃다발 가격에 배송료까지 더해도 많아야 몇만 원인데 두 배를 줬기 때문이다.
  • 두 아이에게 선물 좀 사가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 찰나 정면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소원과 마주쳤다.
  • "이게 누구야?"
  • 소원은 경아를 보고 눈썹을 바로 찌푸렸고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 경아는 소원과 여기서 엮이고 싶지 않아서 몸을 돌려 가려고 했다.
  • 하지만 소원은 경아를 잡았다.
  • "신기하게 여기서 만나네. 왜 여기 있어?"
  • "무슨 상관이죠?"
  • 경아는 무표정으로 소원을 쳐다봤다.
  • 소원은 냉소를 지었다.
  • "상관없긴 하지. 그냥 이 층에 가난한 사람이 어떻게 들어왔는지 궁금해서 말이야."
  • 경아는 표정 변화 없이 소원을 쳐다보고 있었다.
  • "그쪽도 들어오는데 저는 왜 안 돼요?"
  • 소원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 "꽃이나 파는 주제에 나한테 말대꾸해? 제작팀의 꽃값 잔금을 받고 싶지 않은가 봐!"
  • "무슨 말이죠?"
  • 경아는 얼굴이 굳었다.
  • 저녁에 제작팀에 보낸 장미값은 아직 안 치른 잔금이 많았다.
  • 소원은 경아의 얼굴색이 변하자 바로 기세등등하게 턱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 "오후에 보내준 꽃이 맘에 안 들어. 잔금 안치를 거니까 돈 받을 생각 하지 마."
  • 말을 마친 후 소원은 목을 꼿꼿이 세우고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