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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꽃

  • 이튿날, 고급 승용차 한 대가 꽃집앞에 도착하면서 뒷좌석에 한 남자가 내렸다. 긴 다리에 맞춤 제작 양복을 입은 남자는 어깨가 넓고 허리가 가는 황금 비율의 몸매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누가 봐도 신분이 높은 사람이었다.
  • 준혁은 눈앞에 있는 작은 꽃집을 둘러보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이때 마침 지민과 하늬가 장난을 치면서 위층에서 내려왔다.
  • 하늬가 먼저 준혁을 발견하고 신난듯 소리를 쳤다.
  • “어, 잘생긴 아저씨다!”
  • 하늬의 목소리에 준혁은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하늬는 빠르게 달려와 그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준혁은 하늬가 넘어질까 본능적으로 부축하면서 말했다.
  • “넘어지겠네. 조심해.”
  • 하늬는 고개를 들고 앳된 목소리로 말했다.
  • “잘생긴 아저씨, 어떤 일로 여기에 왔어요?”
  • 준혁은 그런 하늬의 모습이 귀여워 보여 무의식적으로 그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대답했다.
  • “꽃 사러 왔지.”
  • 이때 뒤에서 나온 경아는 준혁의 다리를 잡고 있는 하늬의 모습을 보며 급히 말했다.
  • “애들아 먼저 올라가서 놀고 있어. 손님에게 그러면 안 돼. 알았지?”
  • 경아의 말에 두 아이는 조금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철이 든 하늬는 준혁의 다리를 놓고는 말했다.
  • “아저씨 우린 먼저 올라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 준혁은 머리를 끄덕이며 그들과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준혁은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왠지 모르게 마음속으로 허전한 감정이 느껴졌다.
  • 준혁은 자신이 왜 두 아이한테 그런 감정이 드는지 자신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때 경아의 미안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손님 아이들이 어려서 철이 없네요. 죄송해요.”
  • “괜찮습니다.”
  • 경아는 준혁을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 “손님, 머 필요한 거 있으신가요?”
  • 문범은 준혁 대신 대답했다.
  • “사장님이 어제 배송한 작약이 효과가 아주 좋아서 그런데 오늘 또 사러 왔습니다. 재고 있으면 있는대로 다 살게요.”
  • 경아는 약간 놀라면서 대답했다.
  • “그렇군요. 작약이 아직 있긴 한데 많이 없어요. 있는 만큼 다 가져올게요. 잠시만요.”
  • 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넸다.
  • “고마워요.”
  • 준혁은 한쪽에 서서 경아가 꽃을 들고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손님이 들어왔다. 소리를 들은 경아는 급하게 나오면서 미안한 눈빛으로 준혁을 바라봤다. 들어온 손님은 바로 영화 여생 제작진이었다. 경아는 바로 앞으로 마중 나가면서 물었다.
  • “조감독님, 어제 배달한 꽃 대금 결제하러 오신 건가요?”
  • 비록 어제 호텔에서 하소원과 약간의 부딪침이 있긴 하지만 경아는 그녀가 속이 그리 좁은 사람이 아닐 거라는 기대를 품고 물었다. 하지만 조감독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 “사장님 죄송해요. 어제 주문한 장미는 결제 못 해줄 것 같아요.”
  • 경아는 믿기지 않는 듯 되물었다.
  • “왜요? 어제 배달한 꽃은 모두 신선한 꽃들로 보내준 건데 왜 결제를 못 해준다는 거에요?”
  • 경아의 질문에 조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저도 어쩔 수 없어요. 소품팀 예산이 아직 부족해서 장미꽃 대금은 반밖에 결제를 못 해줄 것 같아요.”
  • 경아는 어이없는 듯 되물었다.
  • “그렇게 큰 제작비에 우리 집 꽃 대금 결제해줄 돈이 없다고요? 하소원씨가 시킨 거죠? 그분이 결제해주지 말라고 했어요?”
  • 옆에서 조용히 듣던 준혁은 하소원이라는 말에 눈살을 찌푸리며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 “무슨 일이에요?”
  • 조감독은 뒤를 돌아보면서 바로 준혁을 알아봤다. 조감독은 준혁이 왜 이 작은 꽃집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는 준혁의 질문에 바로 대답했다.
  • “그게…어제 하 배우님이 목욕신을 찍어야 해서 장미꽃을 여기서 주문했거든요. 그러다가 하 배우가 갑자기 안 찍겠다고 난리를 펴서 꽃들이 다 낭비됐지 뭐예요. 소품 팀은 예산을 줄이려고 해서 저도 어쩔 수 없이…….”
  • 준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가에 불쾌함이 스쳐 지나갔다.
  • ‘하소원, 겉으로는 얌전한 척하더니 이런 사람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