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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사과

  • “많이 아파?”
  • 하늬는 두 눈을 깜빡이며 호기심에 찬 얼굴로 자신을 안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 검은 셔츠를 입은 남자에게서는 오만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마치 제왕처럼 남자는 주변 사람들을 압도했다.
  • 하지만 하늬는 그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품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 주위 사람들이 여자아이를 안고 있는 남자가 누군지 알아본 후 아연실색했다.
  • 강준혁.
  • 이 일대에서 선망의 존재인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지만, 오늘 갑자기 이 자리에 나타난 건 매우 뜻밖이었다.
  • 준혁은 타고나길 냉랭한 사람이었음에도 여자아이를 보자마자 부드러운 손길로 아이를 대했다.
  • 하소원은 갑자기 나타난 준혁이 난 데 없이 오지랖을 부린다는 생각에 서둘러 해명을 하기 시작했다.
  • “준혁씨. 나 보러 온 거예요? 우리 매니저가 조심했어야 하는데, 꼬마 팬이 넘어졌나 봐요. 안 그래도 지금 막 병원에 데려가 보려고 하던 참이에요.”
  • 준혁이 사무적인 어조로 대답했다.
  • “아버지께서 보내셔서 왔습니다.”
  • 소원의 웃는 낯이 굳어졌다.
  • “괜찮아요. 와 주신 것만으로도 기쁜걸요.”
  • 그 모습을 본 경아는 경계하며 빠르게 다가가 하늬를 도로 데리고 왔다.
  • “감사합니다. 아이가 다리만 좀 다쳤을 뿐 별 일 아니에요. 저희는 사과를 원할 뿐이지 촬영을 방해할 생각은 없습니다.”
  • 품 안의 아이가 사라지자 준혁은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가 바로 소원을 보며 차갑게 내뱉었다.
  • “정말 사과 하셔야겠군요.”
  • 준혁의 냉랭한 태도를 본 소원의 눈이 소연을 향했다.
  • “맞아. 어서 사과 드려.”
  • 소연은 놀라 서둘러 말했다.
  • “정,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조심했어야 하는데.”
  • 사과를 들은 지민은 그제야 찌푸렸던 표정을 풀었다. 아이가 작은 얼굴을 들어 자신들을 도와준 멋진 아저씨를 보았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준혁의 마음속에 알 수 없는 감정이 생겨났다.
  • 아무 말 없이 서로 한참 바라보고 있는데 경아가 재빨리 지민의 손을 잡고 자신의 뒤로 감추었다. 그리고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준혁을 바라보았다.
  • “방금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 드립니다. 주문하신 꽃은 이미 배송해드렸으니 저희는 가 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 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아이들의 손을 잡고 재빨리 현장을 빠져 나왔다.
  • 준혁은 그들이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또 다시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확실한 건 그는 더 이상 이 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는 바로 출구 쪽으로 몸을 돌려 걸어갔다.
  • 그 모습을 본 소원은 다급히 외쳤다.
  • “준혁씨 어디 가요?”
  • 그는 대답 대신 냉정한 뒷모습만 보이며 떠날 뿐이었다.
  • 경아가 아이들을 데리고 꽃집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저녁 7시가 되어 있었다.
  • 저녁을 간단히 먹은 후 경아가 아이들을 재우고 일어났을 때 갑자기 주머니 속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 “네 ‘송플라워’입니다. 주문 도와드릴까요?”
  • 전화 속에서 굵고 낮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긴 제정호텔입니다. 작약 한 다발 부탁합니다. 갓 핀 싱싱한 꽃으로, 뿌리까지 같이, 뿌리에도 손상이 없어야 합니다.”
  • “네 가능합니다.”
  • 20분 가량 지나서 경아는 제정호텔에 도착했다.
  • 호텔 지배인이 직접 그녀를 마중 나와 꼭대기 층의 로얄 스위트룸으로 안내했다.
  • “들어가시면 되도록 말은 하지 마시고, 할 일만 하고 나오시면 됩니다. 고객님 불편하게 하지 마시고요. 아셨죠?”
  • 지배인은 딱딱한 표정으로 경아에게 당부했다.
  •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습니다.”
  • 이런 방에 머무는 수준이라면 아마 평범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혼자 꽃을 배달하러 와도 무슨 일이 생길 리 없다.
  • 경아는 지배인과 함께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한 호텔방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문이 바로 열리고, 문범이 나왔다. 그가 경아를 한 번 훑어보고는 말했다.
  • “들어와요.”
  •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꽃다발을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 넓은 소파 위에 늘씬한 장신의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 남자는 긴 다리를 꼰 채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는 풀어진 자세로 앉아 두꺼운 책을 든 채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 집중하는 남자의 얼굴은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했으며, 주위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내뿜고 있었다.
  • 남자를 본 경아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는 아까 전 촬영장에서 하소원과 함께 있던 그 남자였기 때문이다.
  • 어떻게 여기서 다시 우연히 만날 수 있을까.
  • 남자의 고개는 미동도 없었다. 아마 경아가 들어온 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 문범은 경아를 보며 말했다.
  • “이 쪽에 놔 주세요.”
  • 그리고 그는 경아를 욕실로 이끌었다.
  • 순간 경아는 놀라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 “저기요.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