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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결혼

계약 결혼

이윤슬

Last update: 2024-01-19

제1화 덫

  • “누구세요? 왜 이러는 거예요?”
  •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왜긴 아이를 만드는 거죠. 다 알면서 왜 모르는 척입니까?”
  • 애를 낳아?
  • 무슨 애를 낳아? 경아는 순간 멍해졌다.
  • 그녀는 집을 나간 지 오래 된 엄마를 만나러 나왔을 뿐이었는데, 눈 앞에 나타난 건 낯선 남자였다. 엄마의 계획에 말려든 것일까?
  • 더 생각할 틈도 없이 남자가 그녀를 덮쳐오고 있었다.
  • 놀란 경아는 짧게 비명을 질렀다.
  • “이거 놔! 누가 들여보낸 거야 당신? 나가! 나가라고…….”
  • 그 다음의 모든 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들며 머릿속이 하얘졌다.
  •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그녀가 다시 깨어났을 때는 날이 밝기 전이었다.
  • 욱신거리는 통증을 참아내며 눈물을 삼킨 그녀는 서둘러 옷을 입고 뒤의 남자를 차마 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급히 도망쳤다.
  • 송경아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복도에서 한 호텔직원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 그리고 그녀는 휴대폰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네. 말씀하신 대로 확실하게 처리했습니다.”
  • …….
  • 5년 후
  • Y시 남부 교외.
  • 드라마 ‘여생, 너와 나의 이야기’ 촬영 현장.
  • 네 살에서 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 둘이 여러 인파 사이에 끼어 있었다.
  • 하늬가 신이 난 목소리로 외쳤다.
  • “오빠, 오빠. 연예인 언니다!”
  • 흥분한 아이는 짧은 다리로 앞으로 뛰어나갔다.
  • “하늬야…….”
  • 그 때 갑자기 스타 하소원의 매니저가 옆에서 여자아이의 옷깃을 잡아챘다.
  • “여기 웬 애들이 있어? 야. 여기서 함부로 뛰어다니면 안 되는 거 몰라?”
  • 하늬는 순간 겁에 질렸다.
  • “미안해요 아줌마. 그냥 연예인 언니를 보고 싶어서…….”
  • 매니저 소연은 아이에게 차갑게 말했다.
  • “연예인 언니 보는 건 상관 없는데 저기 멀리 가서 볼래? 이렇게 가까이 말고. 빨리 가.”
  • 그러면서 지저분한 것을 털어내듯 아이를 밀어내자, 미처 중심을 잡지 못한 아이는 넘어지고 말았다.
  • “아! 아파…….”
  • 하늬의 눈에 서러움으로 눈물이 가득 찼다.
  • 마침 달려온 지민이 그 모습을 보고 급히 하늬에게 달려갔다. 아이는 자신의 동생을 부축하면서 소연을 노려보며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 "아줌마. 빨리 얘한테 미안하다고 해요!”
  • 그 모습을 본 소연은 혹시나 하소원의 심기를 건드릴 까봐 지민에게 윽박질렀다.
  • “너 귀찮게 하지 말고 빨리 가. 안 가? 그럼 경비아저씨 불러서 쫓아낸다?”
  • 지민은 그래도 굽히지 않았다.
  • “내 동생한테 사과 하시라구요!”
  • 소연은 화가 나서 바로 보안요원을 불렀다.
  • “이 애들 빨리 여기서 쫓아내요. 촬영하는데 방해되니까!”
  • 보안요원이 바로 그들에게 다가와 두 아이들을 밀어버렸고, 아이들은 넘어졌다.
  • 이 광경을 마침 힘겹게 인파를 헤치고 나온 경아가 보고 말았다.
  • 그녀는 바로 달려들어 아이들을 자신의 뒤로 감춘 후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 “지금 우리 애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죠?”
  • 그녀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하늬의 다리에 난 상처를 보자 화가 더 치밀어 올랐다.
  • 오늘 오전 그녀의 꽃집에 갑자기 드라마 ‘여생, 너와 나의 이야기’ 촬영 스태프라는 손님이 꽤 높은 가격을 제시하며 급히 장미 500송이를 촬영장으로 가져다 달라고 주문을 했다.
  • 이런 큰 주문은 너무 오랜만이라 경아는 별로 고민하지 않고 바로 알겠다고 한 후 빠르게 오백 송이를 모아 이곳으로 배송하러 온 참이었다.
  • 그리고 그녀의 두 보물 같은 아이들은 그녀가 드라마 촬영현장에 간다는 말을 듣고는 자신들도 예쁜 연예인을 보고 싶다며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 경아는 꽃만 배송해주면 된다는 생각에 아이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
  • 그런데 이 사단이 난 것이다.
  • 그녀는 화가 난 눈으로 소연을 노려보았다.
  • “어른이 돼서 어떻게 아이들을 이렇게 밀쳐 버릴 수가 있어요?”
  • 할 말이 없는 상황이라 머쓱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연은 혹시라도 하소원이 올 까봐 차가운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이 때 갑자기 누군가가 팔을 내밀어 하늬를 안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