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있다면서 왜 파라지오 쪽은 알아보지 않는 건데? 거기는 다 좋은데 사기도 힘들고 살 돈도 없겠지! 나와 승준 오빠가 결혼할 때 가봤거든? 오빠가 파라지오에서 별장을 사주겠다고 해서 말이야. 그런데 팔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옆에다 로얄캐슬을 지어준 거야. 나만을 위한 거지.”
이인혜는 자랑하듯 ‘결혼’이라는 말을 유난히 어필했다.
아니나 다를까, 서강예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등에 난 화상 자국까지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이인혜와 이승준이 그녀를 어떻게 배신했던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서강예는 화가 나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눈빛은 차갑고 딱딱하게 변했다.
그러다 시선이 차재운에게 닿는 순간, 서강예는 무슨 생각인지 남자의 건장한 팔을 잡고 말했다.
“소개하는 걸 깜박했네. 내 남편이야. 뭐 특별한 건 없고 잘생긴데다 재산이 수십조 된다는 것 정도? 예전에는 정말 눈이 멀었지 뭐야. 나 좋다고 따라다니는 이런 남자를 내버려두고 이승준 같은 인간이랑 사귀었으니 말이야. 지금 보면 이승준은 우리 남편 발치에도 못 미치지.”
차재운의 얼굴과 포스는 이인혜도 손쉽게 꼬실 수 있는 레벨이었다.
차재운은 비서의 말에 답장을 보낸 뒤, 휴대폰을 넣고 자신의 팔뚝을 잡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복잡한 기색으로 가득했다.
‘정신병원? 이승준? 그게 이 여자의 과거였어? 날 모르는 척하면서 내 몸값은 어떻게 안 거야!’
차재운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너!”
이인혜는 화가 나 이를 악물었다.
“몸값이 수십조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
세계적으로 재산이 수십조에 달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인혜는 한번도 눈앞에 있는 이 남자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남자는 팔을 내밀어 서강예의 허리를 감싸더니 귀티 흐르는 얼굴로 말했다.
“파라지오? 자기 마음에 들면 사자.”
“좋지.”
서강예는 웃으며 차재운의 손을 잡고 도발하듯 이인혜를 노려보았다.
“무리하지 마!”
이인혜는 경멸 어린 얼굴로 비꼬았다. 그녀는 서강예가 파라지오의 집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파라지오는 더 이상 외부 인원에게 집을 팔지 않았다.
‘망신이나 당하게 될걸!’
이승준은 신분이 많이 상승했지만 온갖 인맥을 동원해서도 사지 못했다. 팔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엄청나게 비싸기에 이인혜는 서강예가 절대 사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입고 있는 옷이 다 합해도 몇십 만 정도인데 수십억짜리 별장을 어떻게 산다고 그래? 말도 안되는 소리지!’
차재운은 고개를 살짝 돌렸다. 파라지오는 그의 회사에서 개발한 아파트로 친구들이 좋아하기에 일부러 몇 채 남겨두었다.
‘어쨌든 이사는 해야겠고 애도 곧 학교에 들어갈 테니 입주하면 딱이겠네.’
생각해본 끝에 차재운이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친한 친구가 집 판다고 하는데 마음에 들면 사.”
서강예는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
그러나 그녀는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집주인이 여자인 거 아니야? 그렇다면 이 인간을 두들겨패야겠네. 대체 돈 많은 여자 몇 명과 연락하고 있는 거야? 내가 제일 불쌍하게 되었군. 결국 결혼하는 건 나이니 말이야.’
둘이 떠나려고 하자 이인혜도 따라왔다. 그녀는 차재운과 서강예가 망신당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파라지오는 그들이 있는 곳과 멀지 않았다. 둘이 천천히 걸어갈 때, 상사의 문자를 받은 유혁이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급히 운전한 탓에 숨을 헐떡이는 그는 서류가방을 들고 또 뛰어오기 시작했다.
싸늘한 얼굴의 차재운과 그의 옆에 서 있는 아름다운 여자를 보고 입을 떡 벌렸다.
‘대표님에게 여자가 있었어? 사모님이 될 분이신가?’
차재운의 싸늘한 시선을 마주하며 유혁은 다급히 걸어가서 허리를 굽신거렸다.
“대....”
‘표님?’
입을 떼자마자 차재운의 얼음 같은 시선을 느낀 유혁은 갑자기 문자의 내용이 떠올랐다. 차재운이 그더러 친구인 척하라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바로 말을 바꾸었다.
“재운아?”
차재운이 아무 반응도 없이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 유혁은 시뻘게진 얼굴로 연기를 계속했다.
“재...재운아, 너 집 산다는 말을 듣고 집문서 가지고 왔어. 친구니까 가격 같은 건 천천히 상의해 보자고.”
“응, 이 사람과 말해 봐.”
“안녕하세요.”
집주인은 본 서강예는 안심한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다행히 남자네.’
하지만 유혁은 굳어버린 상태였다.
‘이 여자... 지금 대표님 팔짱을 끼고 있잖아? 두 분 사이도 좋아 보이는데 정말 사모님이 되실 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