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그러는데 유괴범들이 애들 유괴할 때 다 비슷한 말을 한다고 했어요. 아빠의 할머니라고 그러셨으니까 우리 아빠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어디에서 일하는지 말해봐요.”
서현의 질문에 고정임은 전혀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네 아빠는 차재운이고 운해그룹의 후계자지. 회사는 해성시 금융 중심에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높고 멋진 건물이란다. 얘야, 할미 말이 맞지?”
그리고 미리 준비한 사진을 꺼내 서현에게 보여주었다.
서현은 담담한 얼굴로 사진을 받아서 확인했다. 그의 아빠가 맞았다. 그는 해외에 있을 때부터 운해그룹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상위권 재벌인데 재산이 어마어마해 스스로도 자신의 정확한 재산을 잘 알지 못할 거라고 언론사에서 발표한 적이 있었다.
‘정말 운해그룹의 대표라면… 이 정도는 돼야 우리 엄마와 어울리지.’
서현은 입을 삐죽거렸다.
오직 그의 엄마만 멍청하게 차재운이 제비인 줄 알았다.
영리한 아이의 모습에 고정임은 아주 기뻤다. 그녀는 옆에 있는 가정부에게 자랑했다.
“우리 현이 얼마나 똑똑해?”
“그러게요, 차씨 가문 핏줄이니 당연히 똑똑하죠.”
고정임은 서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현아, 이 할미랑 같이 집에 가자꾸나.”
사진을 본 서현은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증조할머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그에게만 함께 집으로 가자고 했다.
서현은 고정임을 보면서 말했다.
“그럼 우리 엄마는요?”
고정임은 서현이 이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해 당황했다. 아이는 차씨 가문의 핏줄이니 당연히 데려가야 하지만 그 여자가 손주며느리로 될 거라는 확신은 없지 않은가?
잠깐 생각해 본 뒤, 고정임이 미간을 찌푸렸다.
“네 엄마는 별로야. 우리 다른 여자를 네 엄마로 들일까? 네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고르면 아빠더러 그 여자와 결혼하라고 하면 되지.”
“엄마는 세상에서 절 제일 예뻐하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엄마예요. 엄마는 열심히 일해서 절 지금까지 키운 거예요.”
서현은 입을 삐죽 내밀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증조할머니가 만약 우리 엄마 안 좋아하면 저도 좋아하지 마세요.”
그는 엄마를 싫어하는 사람을 모두 싫어했다.
그의 말을 들은 고정임은 당황했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이와 대화할수록 그는 어린 서현이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
‘차씨 가문의 아이는 반드시 차씨 가문에서 커야 해!’
고정임은 바로 미소를 지으며 서현을 달랬다.
“착하지, 할미도 네 엄마 좋아해. 우리 같이 엄마도 데리고 집에 가자꾸나.”
서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안될 것 같아요.”
“왜?”
고정임과 가정부는 의아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서현은 한숨을 푹푹 쉬며 말을 이었다.
“엄마는 아빠를 좋아하지 않아요. 아빠 옆에는 자꾸 이상한 아줌마들이 얼씬거리며 제 새엄마가 되고 싶다고 하는데 저는 이미 엄마가 있잖아요? 증조할머니, 전 절대 우리 엄마를 떠나지 않을 거예요. 앞으로 엄마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 전 그 아저씨를 아빠로 여길 거예요.”
‘뭐라고? 서강예가 애를 데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고? 차씨 가문의 핏줄이 다른 아빠를 섬기게 한다고? 차재운 참 한심하네. 아이도 낳았는데 여자 마음을 못 잡은 거야? 안돼, 그래서는 절대 안돼!’
고정임은 눈을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된 바에 재운이더러 그 여자와 결혼하라고 해야겠어. 현이가 이렇게 똑똑한 걸 봐서 얼른 애 하나 더 낳으라고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