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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손주며느리가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 식탁에 마주앉은 임서원은 발그레한 얼굴로 차재운을 힐끔 훔쳐보더니 그에게 음식 한 점을 집어주었다.
  • “드세요.”
  • 고정임은 임서원의 행동에 아주 만족하는지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
  • “너도 많이 먹어. 특별히 주방장에게 말해서 한 요리들이야.”
  • “저 살 빼야 해요.”
  • 임서원이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 차재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얌전한 그녀의 모습을 보자 이상하게 자꾸만 머릿속에 서강예의 모습이 나타났다. 서강예는 호탕하고 통쾌한 것이 그의 마음에 들었다.
  • 특히 방금 전에 보내온 문자를 보니 그를 썩 믿지 않는 눈치였다.
  • 그는 임서원이 집어준 음식을 옆으로 밀어놓고 고개를 들었다.
  • “할머니, 저 배불러요.”
  • “먹지도 않고 배가 부르다고?”
  • 차재운은 고개를 돌려 임서원의 창백해진 얼굴을 보면서 씩 미소를 지었다.
  • “오기 전에 아들이랑 애엄마와 함께 샤부샤부를 먹었더니 배가 고프지 않아요.”
  • ‘뭐라고?!’
  • 임서원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그녀의 예쁜 얼굴은 파랗게 질려버렸다. 오랫동안 기대한 식사자리가 치욕의 자리로 되고 말았다.
  • 고정임은 화가 나려다가 손자의 말을 듣고 똑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 ‘나에게 증손주가 생겼다고?’
  • 너무 기쁜 나머지 그녀는 임서원의 표정을 신경 쓰지 못하고 다급히 물었다.
  • “너 지금 나 속이는 거 아니지? 내 증손주 지금 어디 있는데?”
  • “애엄마랑 있어요. 어제 외박한 것도 현이 집에서 묵은 거고요.”
  • 차재운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서현만 떠올리면 얼굴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미소를 지울 수 없었다.
  • 그는 임서원에게 고개를 돌리고 사정없이 축객령을 내렸다.
  • “임서원 씨, 죄송하지만 애엄마가 저랑 다른 여자가 가깝게 지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요. 이만 가주세요.”
  • 임서원은 고정임이 불러온 손님인지라 고정임이 언짢은 얼굴로 말했다.
  •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 하지만 그녀에게 임서원은 증손주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 고정임은 입장이 난처하게 되었지만 그저 식사 초대를 한 것이기에 임서원에게 충격이 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 증손주까지 생겼으니 임서원은 당연히 그녀의 관심 밖이었다.
  • 고정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아가씨, 이만 집에 가봐. 내가 어떻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연락할게.”
  • 아까까지 ‘서원아’라고 부르다가 갑자기 호칭을 바꾼 고정임 때문에 임서원은 난처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속상했지만 참한 모습을 보여야 했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 “마침 집에 일이 있었는데 그럼 저 이만 가볼게요.”
  • 말을 마친 임서원은 돌아서서 떠났다. 그녀의 눈에서는 서러움의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 ‘대체 어떤 년이기에 뻔뻔하게 몸으로 꼬셔서 애까지 낳은 거야?’
  • 손님이 간 뒤, 고정임의 표정은 바로 엄숙해졌다.
  • “너 이상한 여자에게 발목 잡힌 거 아니야? 친자확인 했어? 왜 애를 집에 데려오지 않고 밖에서 지내게 하는 거야?”
  • 차재운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현이가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저랑 친하지도 않아서 나중에 다시 데려오려고요.”
  • 서현은 여태까지 줄곧 서강예와 함께 살았는데 갑자기 아이를 엄마에게서 떨어뜨리면 그를 싫어할 수 있었다.
  • 그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았다.
  • 고정임은 어리둥절한 기분이 들었다.
  • “그래서 내 손주며느리는 어디 있는데?”
  • 차재운은 라이터를 꺼내 담배에 불을 붙인 뒤, 생각에 잠겼다.
  • 서강예의 일에 대해 그는 잘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말이다.
  •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증손주가 생긴 건 맞는데 손주며느리가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