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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부자라도 낚았어?

  • 서강예는 해성시로 돌아오면 언젠가 이인혜를 보게 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의 맑은 눈은 얼음처럼 차가워지더니 냉소하며 말했다.
  • “너도 살아 있는데 내가 왜 죽어야 해? 아 참, 나쁜 짓을 하면 평생 악마에 시달린다고 하던데 그동안 너 매일 악몽에 시달린 건 아니야?”
  • 서강예는 턱을 괴고 입꼬리를 올린 채 웃고 있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분노 때문에 이글거리고 있었고 테이블 아래쪽에 내려놓은 손도 주먹을 꽉 움켜쥔 상태였다.
  • 그녀는 자신이 당한 수모를 조금도 잊지 않고 있었다.
  • “너...”
  • 이인혜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욕을 퍼부으려고 했다. 당장이라도 서강예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었지만 사람들 앞에서 추태를 부리고 싶지 않은지라 화를 삭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여직원을 째려보며 말했다.
  • “이 사람들 왜 왔대?”
  • “매니저님, 제가 집을 보여 드렸는데 이분들이... 집값이 비싸대요.”
  • 직원은 이인혜와 서강예의 사이가 나쁘다는 것을 눈치챘다.
  • 이인혜는 이씨 그룹의 미래 사모님인데다가 지금은 로얄캐슬의 담당자기에 직원은 이 기회에 그녀에게 잘 보이려고 일부러 서강예를 까내리는 말을 했다.
  • “비싸다고? 웃겨!”
  • 이인혜는 고개를 쳐들더니 오만한 자세로 비꼬았다.
  • “돈도 없으면서 무슨 별장을 보러 온 거야? 없으면 없는대로 살 거지, 허영심이 가득해서는.”
  • ‘큰 불에 죽지 않고 도망친 건 운 좋다 쳐. 하지만 난 곧 이씨 그룹의 안주인이 될 사람이라고. 몸값이 수조에 달할 수도 있는데 서강예가 다 뭐라고 감히 덤벼? 시궁창의 버러지 같은 게!’
  • 서강예는 윤기가 흐르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도도한 얼굴로 말했다.
  • “풀옵션이라고 하지만 가구랑 가전 모두 싸구려더만. 물이 잘 빠지지도 않고 단지 시설 역시 거의 없던데? 드나드는 차량도 통제하지 않으면서 별장지역이라고 말은 잘해. 네가 개발자라고 하더니 꼭 너처럼 싼티가 줄줄 흐르더라.”
  • 서강예의 목소리에 다른 손님들도 고개를 돌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 이인혜의 안색은 대뜸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
  •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인혜는 서강예가 자신을 겨냥해서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승준의 여동생 신분이었지만 오빠인 이승준과 몰래 사귀는 사이였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를 한번이라도 더 보려고 일부러 서강예의 옆을 졸졸 따라다니곤 했다.
  • 이인혜는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지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서강예와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 이인혜는 화를 꾹 참고 냉소를 하였다.
  • “빈털터리 주제에 트집을 잡기는. 못 본 사이에 허풍만 늘었구나. 정신병원에서 도망친 정신병자가 감히 우리 로얄캐슬을 넘봐? 어디 부자라도 낚았어?”
  • 이인혜는 말하며 옆에서 말없이 앉아 있는 차재운을 힐끗 보았다. 그는 아주 바쁜지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 이인혜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해성시의 상류층 인물 중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게 떠오르지 않았다.
  • 남자는 서강예의 뒤에 서 있었는데 키가 훤칠하고 차가운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서강예의 뒤에 서 있는 것만으로 서강예를 끌어안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강압적인 분위기에 이인혜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 둘의 다정한 모습에 이인혜는 왠지 모르게 배가 아팠다.
  • ‘죽다 살아난 주제에 이렇게 괜찮은 남자를 물었어? 저 남자는 눈이 먼 거 아니야?’
  • 정신병자라는 말이 서강예의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그녀는 싸늘하게 말했다.
  • “꼭 남자를 꼬셔야 돈이 생기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