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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못 가

  • 남자의 어두운 표정을 본 서강예는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 “왜 그래? 이것도 하지 못할 거면서 현이 아빠가 되고 싶다고? 애도 있는 사람이 다른 여자랑 막 자고 다니면 현이가 뭘 보고 배우겠어?”
  • 아빠가 매일 다른 여자랑 웃고 지내는 것을 본다면 아이에게도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 차재운은 미간을 찌푸렸다.
  • ‘내가 언제 다른 여자랑 막 자고 다녔다고 그래? 내가 잔 여자는 너밖에 없거든!’
  • 하지만 서강예의 말 중에도 맞는 말이 있었다. 그가 아이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야 나중에 아이를 데려오기 쉽기 때문이었다.
  • 차재운은 콧방귀를 뀌고 자신의 이름을 사인했다.
  • 서강예는 기쁜 얼굴로 계약서를 가져갔다. 계약서에는 수려한 글씨체로 차재운이라고 적혀 있었다.
  • 휘갈긴 필체에 힘이 담겨 있었다.
  • ‘제비가 글씨를 잘 쓰네? 나쁘지는 않아.’
  • 서강예도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글씨체였다. 그녀는 계약서를 접어서 넣어둔 뒤, 말했다.
  • “편하게 앉아 있어. 9시라서 애 재우고 올게.”
  • 서현의 방으로 들어온 서강예는 자신이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 ‘나 방금 전에 끝내주지 않았어?’
  • 서현은 침대 머리맡에 앉아 있다가 엄마가 기쁜 얼굴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 “엄마, 귀국한 첫날에 아빠가 찾아온 게 이상하지 않아?”
  • “그래, 분명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너 데려가려고 온 거야.”
  • 서강예는 아들을 꼭 끌어안고 말했다.
  • “네 아빠 잘생겼다고 따라가면 안돼.”
  • 서현은 어리둥절했다.
  • ‘...? 지금 포인트는 그게 아니잖아. 됐어, 휴.’
  • 서현은 엄마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 “엄마 걱정하지 마. 난 엄마만 사랑하니까 저 아저씨 따라 안 갈 거야!”
  • ‘역시 내가 아들 하나는 잘 키웠네!’
  • 서강예는 서현에게 뽀뽀한 뒤, 그를 안고 욕실로 데려가 목욕을 시켰다.
  • 텅 빈 거실에 혼자 남게 된 차재운은 소파에 기댄 채, 삼십 평도 채 안되는 집을 바라보았다.
  • ‘이 집 너무 별로인데? 유명한 아파트도 아니고 치안도 엉망일 텐데. 내 명의의 다른 집으로 바꿔줄까?’
  • 소파는 크지 않았지만 둘이 앉기에는 적당했다. 하지만 차재운은 키도 크고 몸집도 커서 그가 앉자 소파의 반 이상을 차지했다.
  • 서현을 다 씻긴 서강예는 차재운이 아직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서현을 안고 밖으로 나왔다. 아이가 차재운과 굿나잇 인사를 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 둘은 오늘 처음 만났으니 서먹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둘이 친해지게 할 생각이었다.
  • 그녀는 서현에게 옷을 입히지 않고 타월로 몸을 감쌌다. 뽀송하게 씻긴 아이를 하얀색 타월에 감싸고 있으니 귀엽기 그지없었다. 차재운은 서강예의 품에서 아이를 받아 안은 뒤, 손으로 볼을 만지며 말했다.
  • “아빠 오늘에는 먼저 가보고 내일 다시 올게.”
  • 그의 손길을 피하려고 했던 서현은 자신과 꼭 닮은 얼굴을 보자 친근감이 들어 쿨하게 말했다.
  • “좋아.”
  • 서강예는 아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정력이 왕성하지만 잠도 쉽게 들었다.
  • ‘잘 데도 없으면서 이 시간이 어디 간단 말이야? 설마 또 동종업계 친구들과 같이 어울리는 거 아니야? 그 사람들과 월세로 사는 거면 거주환경도 안 좋을 텐데. 어쩌면 제비들끼리 합숙할 수도 있어. 지금 시간에 가면 또 손님 받는 거 아니야?’
  • 조용히 있던 서강예는 머릿속에 온갖 생각들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 그녀는 아이가 잠든 것을 보고 바로 안방에서 나왔다. 그러다 마침 현관에서 나가려고 준비하던 차재운과 마주쳤다.
  • 그녀는 재빨리 뛰어가 남자의 팔을 잡고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 “오늘 애를 본 첫날인데 그냥 가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