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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한심한 아빠

  • 서현은 낯선 얼굴의 할머니가 울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 ‘왜 갑자기 우시지?’
  • 잠깐 머뭇거린 그는 고정임을 찬찬히 보면서 경계 어린 얼굴로 물었다.
  • “아빠의 할머니세요?”
  • “맞아, 내가 바로 네 아빠의 할머니란다.”
  • 고정임은 눈물을 닦았다. 아이의 말을 들은 그녀는 또 기분이 좋아졌다.
  • ‘녀석 아주 똘똘하구먼. 차씨 가문에 데려다 잘 키워야겠어.’
  • 서현은 그녀를 말없이 바라만 보았다. 눈앞에 있는 할머니는 그의 아빠와 좀 닮은 듯했다.
  • 서현은 차재운과 똑같게 생긴 눈을 깜박이더니 말했다.
  • “엄마가 그러는데 유괴범들이 애들 유괴할 때 다 비슷한 말을 한다고 했어요. 아빠의 할머니라고 그러셨으니까 우리 아빠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어디에서 일하는지 말해봐요.”
  • 서현의 질문에 고정임은 전혀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 “네 아빠는 차재운이고 운해그룹의 후계자지. 회사는 해성시 금융 중심에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높고 멋진 건물이란다. 얘야, 할미 말이 맞지?”
  • 그리고 미리 준비한 사진을 꺼내 서현에게 보여주었다.
  • 서현은 담담한 얼굴로 사진을 받아서 확인했다. 그의 아빠가 맞았다. 그는 해외에 있을 때부터 운해그룹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상위권 재벌인데 재산이 어마어마해 스스로도 자신의 정확한 재산을 잘 알지 못할 거라고 언론사에서 발표한 적이 있었다.
  • ‘정말 운해그룹의 대표라면… 이 정도는 돼야 우리 엄마와 어울리지.’
  • 서현은 입을 삐죽거렸다.
  • 오직 그의 엄마만 멍청하게 차재운이 제비인 줄 알았다.
  • 영리한 아이의 모습에 고정임은 아주 기뻤다. 그녀는 옆에 있는 가정부에게 자랑했다.
  • “우리 현이 얼마나 똑똑해?”
  • “그러게요, 차씨 가문 핏줄이니 당연히 똑똑하죠.”
  • 고정임은 서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 “현아, 이 할미랑 같이 집에 가자꾸나.”
  • 사진을 본 서현은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증조할머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그에게만 함께 집으로 가자고 했다.
  • 서현은 고정임을 보면서 말했다.
  • “그럼 우리 엄마는요?”
  • 고정임은 서현이 이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해 당황했다. 아이는 차씨 가문의 핏줄이니 당연히 데려가야 하지만 그 여자가 손주며느리로 될 거라는 확신은 없지 않은가?
  • 잠깐 생각해 본 뒤, 고정임이 미간을 찌푸렸다.
  • “네 엄마는 별로야. 우리 다른 여자를 네 엄마로 들일까? 네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고르면 아빠더러 그 여자와 결혼하라고 하면 되지.”
  • “엄마는 세상에서 절 제일 예뻐하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엄마예요. 엄마는 열심히 일해서 절 지금까지 키운 거예요.”
  • 서현은 입을 삐죽 내밀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 “증조할머니가 만약 우리 엄마 안 좋아하면 저도 좋아하지 마세요.”
  • 그는 엄마를 싫어하는 사람을 모두 싫어했다.
  • 그의 말을 들은 고정임은 당황했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이와 대화할수록 그는 어린 서현이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
  • ‘차씨 가문의 아이는 반드시 차씨 가문에서 커야 해!’
  • 고정임은 바로 미소를 지으며 서현을 달랬다.
  • “착하지, 할미도 네 엄마 좋아해. 우리 같이 엄마도 데리고 집에 가자꾸나.”
  • 서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 “그건 안될 것 같아요.”
  • “왜?”
  • 고정임과 가정부는 의아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 서현은 한숨을 푹푹 쉬며 말을 이었다.
  • “엄마는 아빠를 좋아하지 않아요. 아빠 옆에는 자꾸 이상한 아줌마들이 얼씬거리며 제 새엄마가 되고 싶다고 하는데 저는 이미 엄마가 있잖아요? 증조할머니, 전 절대 우리 엄마를 떠나지 않을 거예요. 앞으로 엄마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 전 그 아저씨를 아빠로 여길 거예요.”
  • ‘뭐라고? 서강예가 애를 데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고? 차씨 가문의 핏줄이 다른 아빠를 섬기게 한다고? 차재운 참 한심하네. 아이도 낳았는데 여자 마음을 못 잡은 거야? 안돼, 그래서는 절대 안돼!’
  • 고정임은 눈을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 ‘이렇게 된 바에 재운이더러 그 여자와 결혼하라고 해야겠어. 현이가 이렇게 똑똑한 걸 봐서 얼른 애 하나 더 낳으라고 해야지.’
  • 고정임은 서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 “걱정하지 마, 네 아빠가 엄마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게 이 할미가 도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