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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내가 네 증조할미야

  • 차재운은 흥분한 얼굴의 고정임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 “현이 놀랄 테니 찾아가거나 하지 말아요. 나중에 데려와서 보여드릴게요.”
  • 고정임은 연애를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손자가 이상한 여자에게 사기당했을까 무척 걱정이 되었다.
  • 또 애엄마라는 여자에 대한 인상도 좋지 않았다. 애를 낳은 지 시간이 몇 년이나 흘렀는데 이제 나타난 게 이상했던 것이다.
  • ‘차씨 가문의 돈이 목적이 아니면 뭐겠어?’
  • “걔가 돈 달라고 찾아왔지?”
  • “아니에요, 할머니. 그 반대예요.”
  • 차재운은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대답했다. 지금 상황을 보면 그가 서강예의 돈을 쓰고 있는 것이었다.
  • 고정임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 “그게 무슨 말이야?”
  • “말 그대로예요.”
  • 차재운은 심플하게 한마디로 대답했을 뿐, 자세한 상황 설명은 하지 않았다.
  • 그러나 고정임은 어린애처럼 차재운에게 매달려서 자세히 말해달라고 했다.
  • 아무리 차재운이라도 할머니를 당할 수 없었기에 어떻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간략하게 말해주었다.
  • 얘기를 들은 고정임은 놀란 얼굴에서 점차 기쁜 얼굴로 변했다.
  • 그녀는 차재운의 손을 꽉 잡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 “너도 참,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내가 하마터면 다른 여자와 널 엮을 뻔했지 뭐니. 그러고 보니 나에게 귀여운 증손자랑 착한 손주며느리가 한꺼번에 생긴 거네?”
  • 차재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 “네, 할머니. 이제는 증조할머니로 되셨어요.”
  • 자신에게 증손주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 고정임은 그제야 차재운을 놓아주었다.
  • ‘얘는 이제 다 컸다고 내 말을 듣지도 않아. 얼른 귀여운 우리 증손주를 만나야겠는데.’
  • 기나긴 하룻밤을 보낸 고정임은 당장이라도 증손주를 만나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 차재운이 아침을 다 먹고 출근하자 고정임은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테이블을 탁 내리치며 말했다.
  • “안되겠어. 지금 당장 증손주 만나러 가야겠어.”
  • “어르신, 도련님이 사모님과 작은 도련님에게 찾아가면 안된다고 하셨잖아요.”
  • 임씨 성을 가진 가정부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차재운이 몇 번이나 당부하면 뭐 하나, 고정임은 전혀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 “난 곧 죽게 될지도 모르는데 아직도 사람을 데려오지 않으면 나더러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거야?”
  • 고정임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그녀는 가정부에게 바로 지시를 내렸다.
  • “차 대기시켜. 증손주 보러 가야겠으니.”
  • 차재운이 행적을 숨긴 적이 없었기에 고정임은 바로 주소를 찾아냈다.
  • 파라지오 별장 지역에서 파란색 옷차림을 한 여자가 빠른 속도로 뛰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서 조그마한 몸집이 뒤따르고 있었는데 그 속도 역시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 둘은 바로 서강예 모자였다.
  • 서강예는 뛰다가 멈춰서서 서현에게 눈썹을 치켜세웠다.
  • “이천 미터밖에 뛰지 않았는데 벌써 힘든 거야?”
  • “엄마는 다리가 나보다 길잖아. 그게 자랑이야?”
  • 서현은 한숨을 내쉬고 미간을 찡그렸다. 서강예의 도발에 기분이 썩 좋지 않은 눈치였다.
  • “그럼 엄마랑 아침 먹으러 갈래?”
  • 서강예는 멋지게 머리를 쓸어넘기며 물었다.
  • 서현은 고개를 저었다.
  • “집에 가서 씻고 싶어. 엄마 올 때 아무거나 포장해 와.”
  • “알았어.”
  • 서강예는 고개를 끄덕였다.
  • 서현은 종종걸음으로 집에 갔다. 입구에 도착했을 때, 낯선 얼굴의 두 사람이 입구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 서현은 눈알을 굴리고 나서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 “누구세요?”
  • 고정임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손자인 차재운과 꼭 닮은 서현을 본 순간, 그녀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다른 확인을 할 것 없이 증손주라는 사실이 뻔해졌다.
  • “네가 현이구나? 난 네 증조할머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