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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죽여버릴 거야

  • “몸이 좋지 않다고? 올해 정기검진 할 때도 괜찮다고 했는데 할머니를 어떻게 모셨기에 이런 일이 생긴 거야!”
  • 차재운이 차가운 얼굴로 나지막하게 호통쳤다.
  • “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도련님, 어서 오세요.”
  • 차재운은 소름 끼치게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 “알았으니까 어서 주치의에게 지금 바로 간다고 전화해.”
  • 차재운은 전화를 끊은 뒤, 자리에 돌아왔다. 서강예와 서현은 그가 오는 줄도 모르고 새우만두 하나를 두고 아웅다웅 다투고 있었다.
  • 서현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 “엄마, 더 먹으면 안돼. 이거 다 먹으면 어제 금방 산 여름 한정 원피스가 안 들어갈지도 몰라!”
  • 서강예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서현에게서 만두를 빼앗으며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 “괜찮아, 이거 다 먹고 운동장 뛸 거야!”
  • “흥.”
  • 서현은 콧방귀를 뀌고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 둘의 모습을 본 차재운은 초조하던 마음이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그는 한결 부드러워진 얼굴로 말했다.
  • “나 좀 바빠서 먼저 가야 할 것 같아. 오늘 밤 못 돌아올 것 같으니 데려다줄게.”
  • ‘또 간다고?’
  • 서강예는 그의 말을 듣고 무의식결에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 “밥 제대로 먹은 거야? 천천히 가.”
  • 서현은 이 기회에 서강예의 앞접시에 있는 소고기를 집어서 날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 “아빠, 안녕!”
  • 차재운은 따뜻한 눈빛으로 ‘응’이라고 한 뒤, 뒤돌아서 떠났다.
  • 서강예는 그가 떠나는 곳을 멍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 ‘첫날부터 외박이라고? 내가 돈을 이렇게 많이 주는데 다시 그 일 하는 거 아니야?’
  • 차재운은 다급히 집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문을 여는 순간, 그는 할머니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소파에 앉아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았다.
  • “재운아, 드디어 왔구나.”
  • 고정임은 손자가 들어온 것을 보고 인자한 얼굴에 미소를 담고 말했다.
  • 차재운은 멍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중 한 여자는 이십 대 초반인 듯했는데 예쁘고 귀여웠다.
  • 그는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닫고는 표정이 구겨졌지만 손님 앞에서 할머니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 그래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 “할머니, 편찮으시다고 들었는데 쉬지 않고 왜 나와 계세요?”
  • “그냥 고질병이지. 의사가 와서 봐도 소용없어.”
  • 고정임은 손을 흔들고는 연약한 척 그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 “다 마음의 병이지 뭐.”
  • “괜찮으시다니 다행이네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 차재운은 돌아서서 떠나려고 했다. 그의 머릿속은 두 모자의 모습으로 가득했다. 그 둘은 길도 잘 모르기에 집으로 가는 게 걱정이 되었다.
  • “내가 언제 괜찮다고 했어?”
  • 고정임은 눈을 부릅뜨고 그를 보았다.
  • “오자마자 간다고 하다니. 네 눈에 이 할미가 있기는 한 거야? 얼른 와서 앉아.”
  • 고정임이 크게 화를 내자 차재운도 뭐라고 하기 무엇해서 할머니의 옆에 앉았다.
  • 그는 밖에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능력자였지만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기에 할머니의 말이라면 곧 잘 따랐다.
  • 고정임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 “재운아, 내가 소개해줄게. 이 아가씨는 임서원이라고 임씨 가문의 장녀야. 오늘 특별히 식사 같이 하자고 집에 초대했어. 서로 알고 지내면 좋겠지?”
  • 차재운도 임씨 가문에 대해 어느 정도 들은 게 있었다. 지금 한창 권력가로 떠오르는 재벌가였고 또 이씨 가문과 손을 잡고 있다는 말도 들렸다. 많은 사람들이 임씨 가문에 줄을 대려고 했다. 얼마 전에 임씨 가문은 운해그룹과 협력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 집에 이렇게 어린 딸이 있을 줄이야.
  • 남들이 보기에는 가문끼리 어울리는 한쌍이었다. 고정임이 이렇게 급히 나서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 임서원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인사를 건넸다. 얌전하고 차분한 게 딱 봐도 좋은 집안에서 자란 티가 났다.
  • “대표님,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임서원이에요.”
  • 차재운이 입을 열기 전에 고정임이 재빨리 말했다.
  • “대표님은 무슨. 듣기에도 너무 딱딱하잖아. 그냥 이름 불러.”
  • “네, 할머니 말씀대로 따를게요.”
  • 임서원은 몰래 차재운의 눈치를 살피고는 생긋 미소를 지었다. 가까이서 차재운의 잘생긴 얼굴을 보고 그에게서 풍기는 강압적인 포스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 ‘이런 남자를 내 거로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 “안녕하세요.”
  • 차재운은 무표정한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 그의 심드렁한 반응에 임서원 얼굴의 미소가 점차 옅어졌다.
  • 그녀는 예전에 차재운과 파티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뒤로 차재운은 그녀의 머리에 콕 박힌 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차재운은 평소 파티에도 잘 나가지 않고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드러내는 일도 적기에 그녀는 오랫동안 정성을 들여서야 그가 차씨 가문 후계자라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 고정임은 몰래 그에게 눈을 흘겼으나 차재운은 영문을 모르는 눈치였다.
  • 답답한 손자의 모습에 고정임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 “얘도 왔으니 같이 밥 먹으면 얘기를 나누자꾸나.”
  • “할머니, 제가 모실게요.”
  • 임서원은 종종걸음으로 뛰어가 고정임을 부축했다. 둘은 그렇게 화기애애한 모습으로 앞에서 걸었다.
  • 뒤따라가던 차재운은 휴대폰 진동을 느끼고 확인해 보았다. 서강예가 보내온 문자였다.
  • [차재운, 다른 여자와 말 한마디라도 섞기만 해봐. 아주 죽여버릴 거야!]
  • 이상하게도 이 문자를 본 차재운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