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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부탁

  • “저기요, 사람 잘못 보셨어요.”
  • 강시연은 자신의 손을 빼냈다.
  • 강효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모습을 보니 아직 그들을 용서하지 않은 듯했다.
  • “강시연, 네가 우리를 미워하는 거 알아. 하지만 당시에 우리도 다른 선택지가 없었어.”
  • “다른 선택지가 없어? 어떻게 선택지가 없을 수가 있어? 이미 선택했잖아.”
  • “강시연, 할아버지가 돌아오셨어. 할아버지가 너 보고 싶으시대. 설령 우리 모두가 잘못을 했다고 해도 할아버지는 잘못한 게 없잖아? 요즘 할아버지 건강도 많이 안 좋으셔.”
  • 강 씨 가문에 아마 오직 어르신만이 그녀의 유일한 미련일 것 같다!
  • “알았어. 뵈러 갈게.”
  • 아니나 다를까, 어르신을 거론하자 강시연은 대답했다.
  • “할아버지께서 나더러 널 데리고 오라고 하셨어. 나랑 같이 돌아가자.”
  • “혼자 알아서 갈게.”
  • 강시연은 그와 더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 대부도의 집으로 돌아온 강시연은 노트북을 꺼낸 뒤 코드를 입력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은 그녀는 그것을 감찰부로 보냈다.
  • ‘진국현 부국장이라고?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아들을 그렇게 쓰레기같이 키운 사람이 대단한 사람일 리가 없지.’
  • 강시연은 그제야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 ……
  • 공항을 나선 뒤 강시연은 곧바로 차를 타고 예약해놓은 호텔로 향했다. 그녀는 돌아왔지만 본가에서 지낼 생각은 아니었다.
  • 호텔에 체크인한 강시연은 샤워를 한 뒤 택시를 타고 본가로 향했다.
  • “엄마, 강시연이 돌아왔다고?”
  • 그 소식을 들은 강지연은 안색이 안 좋아졌다.
  • “네 할아버지가 네 오빠 더러 데리고 오라고 하셨어.”
  • 양나리의 안색도 좋지 못했다.
  • “할아버지는 대체 무슨 생각이래? 강시연이 그렇게 쪽팔리는 짓을 했는데. 아직도 사람들이 내 뒤에서 손가락질한단 말이야! 이제 강시연이 돌아오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뒤에서 우리 강 씨 가문의 딸이…”
  • 강지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시연은 이미 저택 안으로 들어섰고 그녀의 말을 강시연은 전부 들었다.
  • 강지연도 그녀가 들을까 겁내지 않았다.
  • “강시연, 넌 얼굴이 어떻게 그렇게 두꺼워? 내가 너였으면 이 세상에 살아있기도 민망했을 거야.”
  • 강지연의 말은 몹시 날카로웠다.
  • “민망하면 지금 당장 죽어도 돼.”
  • “할아버지는?”
  • 강시연은 두 사람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녀가 돌아온 것은 그저 할아버지가 그녀를 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 강지연은 화가 나 어쩔 줄을 몰랐다.
  • “엄마, 쟤 좀 봐!”
  • “다 조용히 하거라.”
  • 그때, 강 씨 가문 어르신이 2층에서 내려왔다.
  • “강시연은 이 강진국의 손녀이니 당연히 강 씨 저택에서 지내야 해. 너희 둘, 한 마디만 더했다간 당장 쫓아낼 줄 알아.”
  • “할아버지, 그러실 순 없어요. 강시연 쟤…”
  • “강지연, 내 말 못 알아들은 게냐?”
  • 강 씨 가문 어르신이 차갑게 경고했다.
  • “강시연, 이리 와 보거라. 이 할아버지가 한 5년은 널 못 봤구나.”
  • 할아버지의 머리가 완전히 백발이 된 것을 본 강시연은 마음이 아파졌지만 그래도 얌전하게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 “할아버지, 저 할아버지 보러 왔어요.”
  • 열몇 살에 대부도 같은 곳에 보살피는 사람 하나 없이 버려진 탓에 삐쩍 말라 있었다.
  • 강 씨 가문 어르신은 강시연의 손을 꼭 잡았다.
  • “강시연, 5년 전에는 할아버지가 없어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지만, 이제 할아버지가 돌아왔으니 내가 있는 한 아무도 널 괴롭히지 못해.”
  •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 그는 이 집에서 무조건 그녀를 믿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 “녀석아, 할아버지한테 무슨 감사냐? 집사, 가서 셋째 방 좀 정리하거라.”
  • 어찌 됐든 강시연을 보니 어르신은 기분이 좋았다.
  • “애미는 내일 바로 강시연의 전학 준비하거라.”
  • “아버님, 시연이는 5년 전에 학교에서 퇴학당했어요. 지금 아마 받아 줄 학교가 없을 거예요.”
  • 이곳은 대부도가 아니라 돈 좀 쓰면 강시연이 다닐 학교를 찾을 수 있었다.
  • “지연이 다니는 서과고로 보내!”
  • 강 씨 가문 어르신은 양나리의 말은 들리지 않는 것처럼 굴었다.
  • “아버님, 서과고가 무슨 시장통인 줄 아세요? 거긴 서울에서 들어가기 제일 어려운 고등학교예요. 돈이 있고 권세가 있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요. 지연이는 자기 실력으로 시험 봐서 들어갔어요.”
  • “할아버지, 제 일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 강시연이 온 것은 그저 할아버지를 뵙기 위해서였다.
  • “게다가 저 지낼 곳 있어요. 여기서 안 지낼래요.”
  • 그녀의 말을 듣자 어르신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 “강시연, 내가 말했지. 내가 있는 한 누구도 널 괴롭힐 수 없다고. 강 씨 가문은 앞으로 네가 이끌어야 해.”
  • “할아버지, 강시연이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는데요? 쟨 그저 싸움이나 하고 양아치들이랑 어울려 다니는 것밖에 몰라요.”
  • “탁!”
  • 어르신은 찻잔을 세게 테이블 위로 쳤다. 거대한 소리와 함께 찻잔 안의 차가 흘러넘쳤다.
  • “강지연, 한 마디만 더했다간 쫓아낼 거다.”
  • 강 씨 가문 어르신이 대노했다.
  • “왜, 내가 고작 5년 집을 비웠다고 이젠 내 말은 소용없다는 것이냐?”
  • “강시연, 너도 이 할아버지의 말은 듣지 않겠다는 것이냐?”
  • “할아버지, 저…”
  •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녀는 조금의 체면도 봐주지 않았을 것이다.
  • 하지만 지금 그녀의 앞에 있는 어르신은 그녀가 유일하게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었다.
  • “네, 알겠어요.”
  • 만약 이것이 할아버지의 마지막 바람이라면 그녀는 서과고에 갈 것이다.
  • “하지만 저 이곳에서 지내지는 않을 거예요.”
  •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지낸다니, 강시연은 자신이 저들을 죽이지 않을 거라는 장담을 할 수가 없었다.
  • “그래, 할아버지도 강요하지 않으마. 하지만 오늘은 하룻밤만 묵거라.”
  • 강시연은 고개를 끄덕여 나름 대답했다.
  • “할아버지, 시간이 많이 늦었어요. 얼른 가서 쉬세요! 저 요 며칠은 할아버지 곁에 있을게요.”
  • 강시연은 그가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 “그래. 사람이 늙고 보니 한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는 게 보고 싶구나.”
  • 어르신은 의미심장하게 말한 뒤, 집사의 부축을 받고 위층으로 향했다.
  • 양나리는 집사를 데리고 강시연의 방을 정리하러 갔고 거실에는 강시연과 강지연만 남았다.
  • 눈앞에 있는 강시연을 본 강지연은 어쩐지 지금의 강시연이 예전의 강시연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뭐가 어찌 되었든 강 씨 가문의 딸은 오직 그녀 한 명이어야 했다.
  • “강시연, 감히 돌아올 줄은 몰랐네.”
  • 강지연의 얼굴에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악독함이 서려 있었다.
  • 강시연은 주머니에서 껌을 꺼내 포장지를 벗긴 다음 입에 넣었다.
  • “강지연, 난 널 반드시 강 씨 가문에서 쫓아낼 거야.”
  • 강시연은 더 말하고 싶지 않아 등을 돌려 예전에 지내던 2층 방으로 향했다.
  • 소파에 털썩 앉은 강지연은 화가 치밀어 어쩔 줄 몰라 했다. 망할 강시연,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 이튿날 아침, 강 씨 가문 어르신은 직접 강시연을 데리고 서울과학고등학교로 향했다.
  • 서울과학고등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서울 교육청의 청장을 겸직하고 있어 늘 바쁜 탓에 만나고 싶다고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 강 씨 가문 어르신은 서울에서도 나름대로 명망이 있는 사람이라 강시연을 데리고 교장실에서 기다렸다.
  • 11시 반이 되어서야 교장 선생님이 나타났다.
  •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본 그는 비서에게 교장실의 문을 열라고 한 뒤, 두 사람을 들여보냈다. 강시연의 상황을 알아본 교장 선생님은 조금 난처해했다.
  • 이 성적이라면 서과고가 아니라 실업계 고등학교에서도 받아주지 않을 듯싶었다.
  • “교장 선생님, 전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부탁이란 걸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저 좀 도와주십시오.”
  • “어르신, 제가 돕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어르신도 알겠지만 우리 서과고는 명문중의 명문인 학교입니다. 저희 학생들은 못 해도 서울대, 카이스트로 진학합니다. 강시연 학생의 이 성적은 저도 참 난감해요. 차라리 실업계를 찾아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엔 다른 고등학교에서도 안 받아줄 겁니다.”
  • 강시연은 단 한 번도 어르신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기를 바란 적이 없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 강 씨 가문 어르신도 아이의 자존심이 강하다는 걸 알아 얼른 따라 나갔다.
  • 그리고 그때, 교장은 김무열의 전화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