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시연, 할아버지가 돌아오셨어. 할아버지가 너 보고 싶으시대. 설령 우리 모두가 잘못을 했다고 해도 할아버지는 잘못한 게 없잖아? 요즘 할아버지 건강도 많이 안 좋으셔.”
강 씨 가문에 아마 오직 어르신만이 그녀의 유일한 미련일 것 같다!
“알았어. 뵈러 갈게.”
아니나 다를까, 어르신을 거론하자 강시연은 대답했다.
“할아버지께서 나더러 널 데리고 오라고 하셨어. 나랑 같이 돌아가자.”
“혼자 알아서 갈게.”
강시연은 그와 더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대부도의 집으로 돌아온 강시연은 노트북을 꺼낸 뒤 코드를 입력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은 그녀는 그것을 감찰부로 보냈다.
‘진국현 부국장이라고?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아들을 그렇게 쓰레기같이 키운 사람이 대단한 사람일 리가 없지.’
강시연은 그제야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
공항을 나선 뒤 강시연은 곧바로 차를 타고 예약해놓은 호텔로 향했다. 그녀는 돌아왔지만 본가에서 지낼 생각은 아니었다.
호텔에 체크인한 강시연은 샤워를 한 뒤 택시를 타고 본가로 향했다.
“엄마, 강시연이 돌아왔다고?”
그 소식을 들은 강지연은 안색이 안 좋아졌다.
“네 할아버지가 네 오빠 더러 데리고 오라고 하셨어.”
양나리의 안색도 좋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대체 무슨 생각이래? 강시연이 그렇게 쪽팔리는 짓을 했는데. 아직도 사람들이 내 뒤에서 손가락질한단 말이야! 이제 강시연이 돌아오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뒤에서 우리 강 씨 가문의 딸이…”
강지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시연은 이미 저택 안으로 들어섰고 그녀의 말을 강시연은 전부 들었다.
강지연도 그녀가 들을까 겁내지 않았다.
“강시연, 넌 얼굴이 어떻게 그렇게 두꺼워? 내가 너였으면 이 세상에 살아있기도 민망했을 거야.”
강지연의 말은 몹시 날카로웠다.
“민망하면 지금 당장 죽어도 돼.”
“할아버지는?”
강시연은 두 사람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녀가 돌아온 것은 그저 할아버지가 그녀를 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강지연은 화가 나 어쩔 줄을 몰랐다.
“엄마, 쟤 좀 봐!”
“다 조용히 하거라.”
그때, 강 씨 가문 어르신이 2층에서 내려왔다.
“강시연은 이 강진국의 손녀이니 당연히 강 씨 저택에서 지내야 해. 너희 둘, 한 마디만 더했다간 당장 쫓아낼 줄 알아.”
“할아버지, 그러실 순 없어요. 강시연 쟤…”
“강지연, 내 말 못 알아들은 게냐?”
강 씨 가문 어르신이 차갑게 경고했다.
“강시연, 이리 와 보거라. 이 할아버지가 한 5년은 널 못 봤구나.”
할아버지의 머리가 완전히 백발이 된 것을 본 강시연은 마음이 아파졌지만 그래도 얌전하게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할아버지, 저 할아버지 보러 왔어요.”
열몇 살에 대부도 같은 곳에 보살피는 사람 하나 없이 버려진 탓에 삐쩍 말라 있었다.
강 씨 가문 어르신은 강시연의 손을 꼭 잡았다.
“강시연, 5년 전에는 할아버지가 없어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지만, 이제 할아버지가 돌아왔으니 내가 있는 한 아무도 널 괴롭히지 못해.”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그는 이 집에서 무조건 그녀를 믿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녀석아, 할아버지한테 무슨 감사냐? 집사, 가서 셋째 방 좀 정리하거라.”
어찌 됐든 강시연을 보니 어르신은 기분이 좋았다.
“애미는 내일 바로 강시연의 전학 준비하거라.”
“아버님, 시연이는 5년 전에 학교에서 퇴학당했어요. 지금 아마 받아 줄 학교가 없을 거예요.”
이곳은 대부도가 아니라 돈 좀 쓰면 강시연이 다닐 학교를 찾을 수 있었다.
“지연이 다니는 서과고로 보내!”
강 씨 가문 어르신은 양나리의 말은 들리지 않는 것처럼 굴었다.
“아버님, 서과고가 무슨 시장통인 줄 아세요? 거긴 서울에서 들어가기 제일 어려운 고등학교예요. 돈이 있고 권세가 있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요. 지연이는 자기 실력으로 시험 봐서 들어갔어요.”
“할아버지, 제 일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강시연이 온 것은 그저 할아버지를 뵙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저 지낼 곳 있어요. 여기서 안 지낼래요.”
그녀의 말을 듣자 어르신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강시연, 내가 말했지. 내가 있는 한 누구도 널 괴롭힐 수 없다고. 강 씨 가문은 앞으로 네가 이끌어야 해.”
“할아버지, 강시연이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는데요? 쟨 그저 싸움이나 하고 양아치들이랑 어울려 다니는 것밖에 몰라요.”
“탁!”
어르신은 찻잔을 세게 테이블 위로 쳤다. 거대한 소리와 함께 찻잔 안의 차가 흘러넘쳤다.
“강지연, 한 마디만 더했다간 쫓아낼 거다.”
강 씨 가문 어르신이 대노했다.
“왜, 내가 고작 5년 집을 비웠다고 이젠 내 말은 소용없다는 것이냐?”
“강시연, 너도 이 할아버지의 말은 듣지 않겠다는 것이냐?”
“할아버지, 저…”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녀는 조금의 체면도 봐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앞에 있는 어르신은 그녀가 유일하게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었다.
“네, 알겠어요.”
만약 이것이 할아버지의 마지막 바람이라면 그녀는 서과고에 갈 것이다.
“하지만 저 이곳에서 지내지는 않을 거예요.”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지낸다니, 강시연은 자신이 저들을 죽이지 않을 거라는 장담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 할아버지도 강요하지 않으마. 하지만 오늘은 하룻밤만 묵거라.”
강시연은 고개를 끄덕여 나름 대답했다.
“할아버지, 시간이 많이 늦었어요. 얼른 가서 쉬세요! 저 요 며칠은 할아버지 곁에 있을게요.”
강시연은 그가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사람이 늙고 보니 한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는 게 보고 싶구나.”
어르신은 의미심장하게 말한 뒤, 집사의 부축을 받고 위층으로 향했다.
양나리는 집사를 데리고 강시연의 방을 정리하러 갔고 거실에는 강시연과 강지연만 남았다.
눈앞에 있는 강시연을 본 강지연은 어쩐지 지금의 강시연이 예전의 강시연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뭐가 어찌 되었든 강 씨 가문의 딸은 오직 그녀 한 명이어야 했다.
“강시연, 감히 돌아올 줄은 몰랐네.”
강지연의 얼굴에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악독함이 서려 있었다.
강시연은 주머니에서 껌을 꺼내 포장지를 벗긴 다음 입에 넣었다.
“강지연, 난 널 반드시 강 씨 가문에서 쫓아낼 거야.”
강시연은 더 말하고 싶지 않아 등을 돌려 예전에 지내던 2층 방으로 향했다.
소파에 털썩 앉은 강지연은 화가 치밀어 어쩔 줄 몰라 했다. 망할 강시연,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튿날 아침, 강 씨 가문 어르신은 직접 강시연을 데리고 서울과학고등학교로 향했다.
서울과학고등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서울 교육청의 청장을 겸직하고 있어 늘 바쁜 탓에 만나고 싶다고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강 씨 가문 어르신은 서울에서도 나름대로 명망이 있는 사람이라 강시연을 데리고 교장실에서 기다렸다.
11시 반이 되어서야 교장 선생님이 나타났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본 그는 비서에게 교장실의 문을 열라고 한 뒤, 두 사람을 들여보냈다. 강시연의 상황을 알아본 교장 선생님은 조금 난처해했다.
이 성적이라면 서과고가 아니라 실업계 고등학교에서도 받아주지 않을 듯싶었다.
“교장 선생님, 전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부탁이란 걸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저 좀 도와주십시오.”
“어르신, 제가 돕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어르신도 알겠지만 우리 서과고는 명문중의 명문인 학교입니다. 저희 학생들은 못 해도 서울대, 카이스트로 진학합니다. 강시연 학생의 이 성적은 저도 참 난감해요. 차라리 실업계를 찾아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엔 다른 고등학교에서도 안 받아줄 겁니다.”
강시연은 단 한 번도 어르신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기를 바란 적이 없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