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어르신이 작은 도련님에게 놀아난 기분이 드는데? 어쩌다 결론이 도련님이 사모님에게 구애해야 하는 쪽으로 기운 거지?’
고정임이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강예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를 사서 돌아왔다.
“왜 안 들어가고 있었어?”
서현은 바로 휴대폰 화면을 끄고 말했다.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지.”
서강예는 가슴이 뭉클했다.
‘역시 내 아들이야. 날 걱정할 줄도 알고. 차재운 그 인간은 외박도 모자라 여태까지 전화 한 통 없잖아. 어디서 또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니야? 안되겠어? 만나면 따끔하게 혼내야겠어. 스폰받는 입장이면서 자신의 입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잖아!’
서강예는 서현의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가 아침식사를 즐겼다. 그리고 진아라가 보내온 보고서를 읽었다.
캐븐회사는 이미 매입한 상태였다. 그녀는 내일 회사로 가서 회사 상황을 살필 생각이었다.
‘이승준도 내일이면 볼 수 있겠군.’
서현은 만두를 먹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엄마야. 매일 이렇게 힘들게 돈을 버는 거도 다 나 때문이겠지? 이제는 아빠가 생겼으니 엄마랑 아빠가 알콩달콩 행복할 수 있게 밀어줘야겠어. 그럼 엄마는 더 이상 지금처럼 힘들게 살 필요가 없겠지?’
운해그룹 대표 사무실.
강천은 널찍한 가죽 소파에 앉아 찻잔을 들고 말했다.
“좋은 차가 들어왔는데 좀 마셔 봐.”
차재운은 무덤덤한 얼굴로 힐끗 본 뒤, 손을 내저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강천은 또 흥분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화제를 돌렸다.
“재운아, 너 지금 기분이 어때? 갑자기 완전 예쁜 마누라가 생긴 거잖아? 거기다 다 큰 아들까지 떡하니 말이야. 어때? 흥분되어 죽겠지? 좋아 죽겠지?”
서강예의 말이 나오자 차재운은 드디어 고개를 들고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생각하던 것보다 재미있는데.”
“정말? 요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강천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다가오며 차재운을 바라보았다.
다시 고개를 숙이고 서류를 읽고 있는 차재운은 강천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
그가 또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강천은 어깨를 으쓱한 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생각이 많았다. 해성시에서 소식이 가장 빠른 그는 알고 싶으면 알아보지 못할 게 없었다.
차재운의 아들을 데리고 갑자기 튀어나온 여자. 그는 서강예의 어린 시절부터 낱낱이 파헤칠 생각이었다.
퇴근한 뒤, 비서 왕민은 이미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대기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그 여자를 아주 대단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애 하나로 대표님을 꽉 잡은 거잖아? 집도 사고 대표님과 혼인신고도 하자 그러고. 아이를 사생아로 만들지 않았어.’
차재운을 노리는 여자들은 아주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이 소식을 알게 되면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눈물 콧물 흘릴까?’
차재운은 강천과 헤어진 뒤, 차를 타고 말했다.
“파라지오로 가자.”
왕민은 순순히 대답하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놀랍기 그지없었다.
‘하루만에 파라지오로 들어간다고?’
파라지오의 집은 쉽게 살 수 없는 귀족의 상징이었다. 그곳에 있는 별장은 모두 최고 레벨의 디자이너가 오랫동안 공을 들여 디자인한 건물로, 외부 인원들은 수백억을 내걸어도 살 수 없었다.
파라지오의 88번 별장에 도착한 왕민은 백미러로 아이와 함께 걸어오는 여자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가 직접 서강예에 대해 조사했기에 서강예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실물을 본 순간, 그녀는 사진이 실물의 미모를 다 담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강예는 겉모습으로 봐서는 애를 낳은 여자 같지 않고 오히려 소녀 같았다. 주름이나 잡티 없이 뽀송한 얼굴은 물론, 서현과 얘기를 나누느라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서 우아함과 귀티가 흘렀다.
‘작은 도련님처럼 훌륭한 아이가 태어나려면 부모 유전자도 크게 연관 있겠지.’
차재운은 차에서 내리며 왕민에게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 왕민은 그의 시선에 깜짝 놀라 다급히 차를 운전해 떠났다.
‘큰 일이야. 대표님 사생활을 너무 많이 안 잘못으로 잘리진 않겠지?’
서강예는 오늘 서현과 함께 파라지오의 유치원에 데려갔다. 시설과 환경이 마음에 들어서 바로 수속을 밟고 싶었다.
저녁을 먹은 서강예는 아들의 손을 잡고 집 근처를 산책하다가 충격적인 상황을 목격했다.
차재운이 한 여자의 차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그 여자는 직장인으로 보였는데 차가 수십억에 달하는 롤스로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