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까지 영화 4편, 드라마 3편 계약이 해지됐습니다. 광고도 7개나 끊겼고요. 지금 대부분 회사들이 위약금과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어서 상황이 매우 심각합니다.”
그 말을 들은 하경봉의 낯빛은 더욱 거무죽죽해졌다.
딸에게 쏟아 부은 돈이 얼만데, 하룻밤 사이에 이 꼴이 되다니.
그 때 하소원의 모친인 이정화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사돈. 소원이랑 준혁이 약혼한지도 꽤 됐는데 이젠 결혼 날짜를 잡는 게 어떨까요?”
연주희는 이정화가 건수를 잡았다는 생각에 약간 머뭇거리다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그게, 저야 당연히 그러고 싶죠. 우리 바깥양반도 매일 손주를 안아 보고 싶다고 성화시고. 저도 우리 준혁이가 얼른 결정을 내려 줬으면 좋겠는데. 글쎄 얘가 일 핑계로 매번 거절을 하니 저도 어쩔 방법이 없네요.”
“사돈. 이제는 더 미루면 안 될 것 같아요. 애들도 나이가 딱 적당할 때 얼른 결혼 시켜야죠.”
연주희가 웃으며 말했다.
“집에 가면 제가 다시 얘기해볼 테니 너무 걱정들 마세요.”
그 말을 들은 소원의 부모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좀 부탁 드릴게요.”
연주희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유 뭘요. 그 때 두 분이 도와주시지 않았으면 저희가 어떻게 오늘 같은 날을 맞았겠어요. 준혁이랑 소원이 혼사는 저도 늘 생각하고 있답니다.”
하 씨네 별장에서 나온 후 연주희는 바로 준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모친의 전화를 받은 준혁이 무심하게 물었다.
“어머니 무슨 일이세요?”
연주희가 말했다.
“준혁아. 이제 소원이랑 너 결혼 진행 해야겠다. 애초에 네가 일 핑계로 5년이나 미뤘잖니. 이제 더는 안 돼.”
“어머니 뜻입니까 아니면 그쪽 집안 뜻입니까?”
준혁이 차갑게 대답했다.
“기다리는 게 싫다면 파혼 하면 되겠네요. 약혼녀는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으니까.”
말을 마친 그는 모친이 대답할 틈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고, 연주희는 안색을 굳혔다.
준혁은 전화를 끊자마자 돌아서서 문범에게 물었다.
“찾았습니까?”
문범이 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대표님. 송경아씨의 행방을 알아봤지만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우리 쪽 사람들도 그 두 아이들 유치원에도 가봤는데 거기 선생님 말이 송경아씨가 그냥 애들 유치원을 좀 길게 쉬어야 할 것 같다고만 했지 구체적인 이유는 얘기하지 않았답니다.”
준혁이 눈썹을 찌푸렸다.
“그 여자 신상에 관한 건 알아 봤습니까?”
“네. 조사했습니다.”
문범이 이어서 대답했다.
“송경아씨의 고향은 운주가 아닌 북성이었습니다.”
“뭐?”
강준혁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세웠다.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네요.”
그의 일군 사업의 본부는 북성시 도심에 있었다.
“바로 북성으로 갑니다. 운이 좋으면 마주칠 수도 있겠네.”
“네 알겠습니다.”
문범은 바로 차를 대기시켰다.
…….
그 시각 북성. 골드호텔 1208호.
보겸이 방으로 들어섰을 때 경아는 창가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가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서 소리쳤다.
“경아야!”
정신을 차린 경아가 흥분하며 물었다.
“찾았어 선배?”
“그래. 너희 집안 소식에 대해 알아봤어. 우선 진정해. 내가 천천히 얘기해줄게.”
보겸이 고개를 들고 그녀에게 말했다.
“너희 아버지는 작은 회사를 여셨고, 사업은 괜찮게 돌아가는 것 같아. 식구들도 잘 지내고 있고. 할아버님 건강도 괜찮으셔. 내일이 마침 칠순 잔치여서 송 씨 집안에서 잔치를 열 모양이야.”
식구들 이야기를 들을 때 까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경아가 할아버지 얘기가 나오자마자 감정이 격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 됐어. 할아버지 건강이 괜찮으시다면 나도 이젠 안심할 수 있어.”
경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울고 싶으면서도 기쁘고 마음이 놓였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이해한 보겸이 말했다.
“너무 조급해 하지 말자. 내일이 되면 할아버님을 만나 뵐 수 있을 거야.”
경아가 두 눈이 빨개진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선배.”
그 때 강준혁도 북성에 도착해 있었다.
“대표님. 알아 본 결과 송경아씨가 어릴 때 어머니가 송경아씨를 두고 집을 나갔고, 그 뒤로 아버지가 내연녀를 집으로 데려왔고 딸도 낳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송경아씨는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유일하게 할아버지만이 경아씨를 아꼈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학업에 열중했는데, 5년 전 갑자기 이유 없이 학교에 졸업 유예를 미뤘다고 합니다. 그리고 1년 후에야 다시 복학해서 졸업했고요. 5년 전 그 기간 동안 어디로 가서 뭘 했는지는 아무리 뒤져도 정보가 없었습니다.”
준혁은 재미있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5년 전…….졸업을 유예했다? 뭔가 비밀이 있으신가 본데.”
문범은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이었다.
“또 공교롭게도 내일이 바로 송경아씨 할아버님의 칠순 잔치라고 합니다. 만약에 정말 북성에 계시다면 아마 그 자리에 나타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