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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수상한 행위

  • 그의 수상한 행위에 배성진도 시간을 대충 확인하며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왔다!
  • 더원 술집은 철통 보안이 되어있어 신서율은 달랑 선글라스만 끼고 왔다. 그녀는 여전히 사계절 내내 즐겨 입는 면 원피스 차림이었다.
  • 이 옷차림은 이젠 거의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였다.
  • 데뷔하던 그해에도 면 원피스를 입고 길거리에서 노래 한 곡 불렀는데 하루 만에 영상 리트윗이 만을 넘었고 그 이후로 회사를 계약하여 오늘날 모두가 알고 있는 발라드 여왕 신서율로 거듭났다.
  • 회사에서 연애 금지 명령을 내린 바람에 그녀는 한창 열애 중이던 박찬우와 결별했다.
  • 그녀는 박찬우의 첫사랑이자 그의 유일한 여자친구였다.
  • 하시은은 첫눈에 그녀를 알아봤다.
  • “서율... 언니?”
  • 신서율은 선글라스를 벗고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 “시은이 벌써 이렇게 컸어?”
  • 그녀는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박찬우의 옆에 앉았다.
  • “혁재야, 샤토 라피트 한 병 가져와.”
  • 그녀는 깔끔하게 뚜껑을 따고 술을 따랐다.
  • “그동안 다들 찬우 잘 챙겨줘서 고마워.”
  • 그녀는 말 한마디로 주도권을 장악했다.
  • “채영이라고 했던가?”
  • 신서율은 채영에게도 잔을 맞대며 순진한 얼굴로 경고장을 날렸다.
  • “나 포도 좀 더 까줄 수 있어?”
  • 연예계에 수년간 몸담은 그녀는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고 전보다 자신감이 훨씬 차 넘쳤다. 채영은 그녀가 안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저도 몰래 소파 구석으로 몸을 움츠렸다.
  • 신서율은 하도 눈부시다 보니 평범한 여자들은 그녀 옆에 있으면 자존감만 떨어진다.
  • 채영은 신서율이 기분이 언짢다는 걸 알면서도 순순히 포도를 까주었다. 그녀가 포도를 먹자 채영은 그제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함께 사진 찍을 수 있을까요?”
  • “당연하지.”
  • 신서율은 나름대로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녀는 채영이 촬영 버튼을 누를 때 박찬우의 팔짱을 끼고 그에게 살며시 머리를 기댔다.
  • 둘은 마치 그 해 열애 중이던 커플 같았다.
  • 박찬우는 그녀를 밀치지 않고 짙은 눈빛으로 담담하게 말했다.
  • “사진 외부로 퍼뜨리지 마.”
  • 신서율의 자신감에 찼던 미소가 조금 굳어졌다.
  • 하시은은 눈앞의 광경을 보며 한심하다는 듯 웃어 보였다.
  • ‘이런 장면이나 보여주려고 여기까지 데려온 거야?’
  • 박찬우는 항상 하시은이 안중에도 없다면서, 이 결혼도 아무 의미 없는 거라면서 거듭 강조했지만 주변 사람들에겐 왜 자꾸 선뜻 그녀의 신분을 알리는 걸까? 게다가 전처럼 그녀에게 옷도 한가득 사주고 이젠 집까지 데려가려 하다니.
  • 하시은은 엄마한테 버림받은 그 순간부터 집이라는 단어를 잊고 살았다.
  • 너무나 가슴 따뜻해지는 단어라 그녀의 마음도 설레니까.
  • “하시은.”
  • 박찬우가 문득 그녀를 불렀다.
  • “이리 와.”
  • 신서율은 그녀와 박찬우가 혼인신고를 한 사실을 알고 있을까?
  • 하시은은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 그녀가 꿈쩍하지 않으니 박찬우는 무언가에 홀린 듯 그녀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 다만 신서율이 팔을 꽉 붙잡고 있었고 그도 딱히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박찬우는 언성을 조금 높이며 또다시 반복했다.
  • “하시은, 이리 오라고.”
  • 그의 목소리에 분노가 살짝 섞였다.
  • “너 예전에는 쉽게 화내지 않았잖아.”
  • 신서율이 무구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몇 년이 지났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을 이었다. 애초에 이별을 고할 때도 마치 점심 뭐 먹을지 말하듯 자연스럽게 내뱉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 아무런 예고도 없이 제멋대로 박찬우의 인생을 드나들었다.
  • 박찬우가 그녀를 차마 밀치지 못할 거로 줄곧 여겨왔다.
  • 갑작스러운 만남에 박찬우는 잠시 멍하니 넋 놓고 있었지만 자신이 이미 유부남이란 걸 알아채고는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선을 그었다.
  • 이 결혼이 얼마나 탐탁지 않든 그는 남편으로서의 선을 지켜야 했다.
  • 박찬우는 그동안 상업계에서 매사에 결단력 있고 깔끔하게 일을 해결했지만 유독 신서율에게만 속수 무책해진다. 그녀 앞에만 서면 박찬우는 풋풋한 소년으로 돌아가곤 한다.
  • TV 속의 그녀를 봐도 온몸에 전율이 감돌았다.
  • 그녀는 박찬우의 청춘이었다.
  • 다만 순수하고 설렜던 그 시절은 그녀가 이별을 고한 순간 과거로 돼버렸다.
  • 앞으로 이 결혼이 무산될 수도 있고 혹은 딴 여자를 만날 수도 있지만 무엇이 되었든 간에 신서율은 절대 가능성이 없었다.
  • “시은 씨는 왜 불러요?”
  • 배성진은 포도를 먹으며 채영 등 불필요한 자들을 내보냈다. 그는 윤혁재의 경고를 완전히 뒤로 한 채 줄곧 박찬우의 심기만 건드렸다.
  • 채영의 뒤에 있던 키 작은 여자가 하시은의 옆을 스쳐 지나갈 때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는데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 채영은 몰래 그녀의 손을 잡고 다독여주었다. 문을 닫기 전, 채영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구석에 쪼그리고 있는 하시은을 바라보더니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 윤혁재는 또다시 어리석은 배성진에게 곁눈질하며 적당히 하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배성진은 박찬우의 마음이 대체 어디로 향하는지 궁금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질문을 건넸다.
  • 그는 마이크를 들고 흥분에 겨운 눈길로 박찬우에게 물었다.
  • “형, 취재 좀 할게요. 오랜만에 첫사랑을 본 기분이 어때요?”
  • 그의 깐족거리는 표정을 본 순간, 박찬우는 오늘 신서율이 이곳에 나타난 이유를 바로 알아챘다.
  • 그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
  • “성진아.”
  • 배성진이 물었다.
  • “네?”
  • “꺼져.”
  • 배성진은 이를 악물고 난생처음 용기 내어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다잡았다.
  • “싫은데요!”
  • 윤혁재와 신서율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 하시은은 어느덧 박찬우의 앞으로 다가갔다.
  • 박찬우와 신서율이 연애할 때 하시은은 줄곧 찬우 뒤를 졸졸 따라다녔고 그땐 신서율도 진심으로 하시은을 예뻐했다.
  • 그랬던 그녀가 박찬우의 아내로 돼버리다니...
  • 하시은의 늘씬한 몸매를 바라보던 신서율은 며칠 전 퍼져 흘렀던 지하실 사진까지 생각하며 아직 박찬우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섰다.
  • “여기 앉아.”
  • 박찬우가 왼쪽 빈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 배성진은 두 눈을 반짝이더니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 “형... 설마... 양옆에 각각 한 명씩 차지하려고요? 오랫동안 금욕하더니 오늘 화끈하게 풀어볼 생각이에요?”
  • “풉.”
  • 옆에서 묵묵히 술만 마시던 윤혁재가 끝내 입밖에 내뿜으며 동정 어린 눈길로 배성진을 쳐다봤다. 마음 같아서는 그가 기절할 정도로 한 대 치고 싶었다.
  • ‘얘는 왜 하필 총구에 들이받는 건데?’
  • 신서율은 이곳에 오기 전에 먼저 강리나를 만났었는데 그녀의 말을 되새겨보자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 “시은이 점점 더 예뻐지네.”
  • ‘그날 밤 지하실에서 찬우가 정말 시은이를...’
  • 신서율은 감히 더 생각할 엄두가 안 났다.
  • 그녀는 담뱃불을 지피고 박찬우를 잡아당기며 밖으로 나가려 했다.
  • “나가서 얘기 좀 해.”
  • 박찬우는 전혀 일어날 기미가 안 보였다. 그는 오히려 그녀의 입에 문 담배를 빼내고 담뱃불을 껐다.
  • “담배는 언제부터 피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