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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백마 탄 왕자님

  • “딱 맞춰 도착했군요.”
  • 강재욱은 신지은의 앞으로 걸어가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 모습에 신지은은 두 볼을 붉혔다.
  • 비록 그와 혼인신고까지 한 상태였지만 그녀는 이제껏 그의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 잘생긴 얼굴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오늘의 그는 흰 턱시도를 입고 신랑의 모습으로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
  • 그 모습이 마치 동화 속의 백마 탄 왕자님 같았고, 그런 그의 주위에만 밝은 빛이 둘러싸고 있는 듯 차마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눈이 부셨다.
  • “엄마, 늙은 남자라며? 어떻게 저렇게 젊고 잘생겼을 수가 있어?”
  • 신아영은 부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조성희의 안색 역시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 그녀가 화가 난 듯 신아영의 손을 밀어내며 말을 내뱉었다.
  • “분명 가짜일 거야. 급히 고용한 연기자일지도 모르지.”
  •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일단 호텔로 가야 하니 타자고.”
  • 신영호는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이제껏 이렇게 좋은 차를 타 본 적이 없던 그는 기다렸다는 듯 차에 올라탔다.
  • “뭐가 이렇게 거창해요?”
  • 신지은은 강재욱을 따라 차에 올라타며 불안한 듯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준비한 웨딩카 행렬은 허세스럽기 그지없었고, 온 동네 사람들이 전부 밖으로 나와 이를 구경하고 있었다.
  • “마음에 안 듭니까?”
  • 그가 물었다. 이에 신지은은 두 볼을 붉히며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당연히 마음에 들었다. 지금껏 그 누구도 그녀를 위해 이런 거창한 일을 해준 사람은 없었다.
  • “지은아, 저렇게 잘생긴 남자는 어디서 불러온 거니?”
  • 술을 따르러 갔을 때, 작은 숙모가 호의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말투로 물었다.
  • “불러온 거라니요?”
  • 신지은은 도통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자 작은숙모가 말을 이어갔다.
  • “가족끼리 숨길 게 뭐가 있겠어. 너희 새엄마가 다 말해줬어. 안씨 가문한테 파혼당하고 급히 결혼식을 위해 사람을 찾아온 거라며. 얘는, 친척들이 그걸 가지고 웃음거리로 삼을 일도 없을 텐데, 뭐 하러 그 돈을 쓰니?”
  • ‘또 새엄마가 헛소리를 하고 다닌 건가?’
  • 화가 나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신지은이 무언가 설명을 하려던 그때, 강재욱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더니 그녀보다 먼저 대답했다.
  • “저랑 지은이는 법적으로 부부 사이입니다. 숙모님께선 본인이 본 걸 믿으십니까, 아니면 남이 한 말을 믿으십니까?”
  • 말을 마친 그의 눈빛이 순간 차갑게 얼어붙더니 경고를 가득 담아 한쪽을 힐긋 쳐다보았다.
  • 그 눈빛에 겁을 먹은 조성희는 흠칫 몸을 떨었다. 그의 눈빛은 정말이지… 너무 무서웠다.
  • “식사들 하시죠.”
  • 작은고모부가 상황을 수습하려는 듯 너털웃음 지으며 모두에게 식사를 권했다.
  • “잠시만 더 기다리시죠. 아직 오실 분이 한 분 더 계십니다.”
  • 강재욱이 말했다. 그러자 신영호가 기분이 상한 듯 불평했다.
  • “대체 누가 이런 중요한 날에 늦는단 말이야?”
  • “오셨군요.”
  • 강재욱은 문 쪽을 쳐다보더니 신영호의 불평은 그냥 무시해 버리고는 신지은의 손을 잡고 문을 향해 걸어갔다.
  • 이에 신지은은 그의 가족이 온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문 앞에 거의 다다랐을 때야 그녀는 그곳에 있는 사람이 할머니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 한복 저고리 차림을 한 채 휠체어에 앉아 있는 윤혜숙이 싱글벙글한 얼굴로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 신지은은 감동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그녀의 손을 잡은 손에 살짝 힘을 주며 귀띔하듯 말했다.
  • “할머님한테 인사드려야죠.”
  • 신지은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감격에 겨운 듯 허리를 숙여 윤혜숙을 끌어안았다. 윤혜숙이 참석함으로써 이 결혼식은 그녀에게 있어서는 가장 원만해진 것이었다.
  • 식이 끝난 뒤, 신지은은 강재욱과 함께 윤혜숙을 다시 병원으로 모셨다. 눈치가 빠른 윤혜숙은 기어코 두 사람과 같은 차에 앉는 것을 사양했다.
  • 차 안에는 은은한 향기가 퍼져 있었다. 그의 몸에서 풍겨오는 것 같이도 했다. 이에 옆에 앉아 있는 그녀는 긴장감으로 인해 손바닥에 땀이 찰 지경이었다.
  • “우리 할머니가 병원에 계신 건 어떻게 알고 결혼식에 모셔 오기까지 한 거예요?”
  • “신지은, 24세. 부모님은 생후 6개월 때 이혼하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친께서 재혼하시면서 당신은 할머니 댁으로 보내져 할머니 손에서 자랐죠. 당신과 결혼했으니, 당신에 대한 일들을 확실하게 조사해 봐야 하는 거죠.”
  • 강재욱이 느릿하게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신지은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 “당신 대체 누구예요?”
  •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 그 짧은 시간 안에 그녀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 “저흰 회사에서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 강재욱은 애매모호하게 답했다.
  • ‘우리 대표님도 강씨인데. 나랑 결혼한 사람이 설마 대표님의 친척인 건가?!’
  • 차가 병원에 도착하자, 두 사람은 함께 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두 사람은 윤혜숙의 병실로 향하는 것이 아닌 위로 두 층 더 올라갔다.
  • “여기는…”
  • “할머님을 VIP 병실로 옮겨드렸습니다. 새로 고급 간병인도 고용했고요.”
  • 강재욱이 설명했다.
  • “강재욱 씨… 고마워요!”
  • 신지은은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감동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그 어떤 말로도 현재 그녀가 느끼는 고마움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하게 느껴졌다.
  • “당신은 내 아내니까 이런 것들은 당연히 당신이 누려야 할 것들입니다.”
  • 강재욱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로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