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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Just got married

  • 신지은은 그의 눈빛에 쑥스러움을 느끼며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다시 나직이 입을 열어 물었다.
  • “혹시… 한 가지만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 “뭡니까?”
  • “할머니를 새 병실로 모신 뒤에 할머니가 안심하실 수 있도록 듣기 좋은 말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무리한 요구인 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부탁드릴게요!”
  • 신지은은 두 손을 모은 채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그녀는 예전에도 이런 식으로 안시훈에게 부탁을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안시훈은 그녀가 아무리 부탁해도 절대 들어주지 않았었다.
  • “말기 암에 걸린 사람은 보고 싶지도 않은데 나더러 할머니 앞에서 약속하라고? 만약 내가 약속을 못 지키면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뒤에 날 찾아오면 어떡해?”
  • “최대한 노력해 보도록 하죠.”
  • 그가 대답했다.
  • “고마워요!”
  • 신지은은 감동에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비록 최대한 노력해 보겠다고 한 것뿐이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이미 충분히 감격스럽기 그지없었다.
  • 그러던 그때, 간병인이 할머니를 모시고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그러자 신지은은 얼른 간병인의 손에서 휠체어를 건네받아 할머니를 모셨다.
  • VIP 병실은 넓고 쾌적했다. 침대만 해도 전에 쓰던 것보다 배는 더 컸다. 병실 안에는 간병인이 24시간 곁을 지킬 수 있도록 간병인 용 침대도 준비되어 있었다.
  • 그렇게 새 병실로 옮긴 뒤, 윤혜숙은 다소 지쳐있었음에도 신지은의 손을 잡고 말을 내뱉었다.
  • “참 잘됐어. 우리 지은이가 결혼을 다 하고, 이 할미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어.”
  • “할머니…”
  • 신지은은 고개를 떨구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자 강재욱이 윤혜숙의 다른 쪽 손을 잡으며 전혀 싫은 내색 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 “걱정 마세요, 할머님. 앞으로 제가 지은이를 잘 보살필게요. 절대 그 어떤 설움도 당하지 않게 하겠습니다.”
  • 이에 신지은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이렇듯 감동적인 말을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 게다가, 그는 그녀를 지은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할머니를 제외하고는 이렇듯 애정이 담긴 호칭으로 그녀를 불러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지은이를 자네한테 맡겨놓으니 이 할미가 마음이 놓여.”
  • 윤혜숙이 안심이 되는 듯 말했다. 강재욱은 그런 그녀에게 수많은 약속들을 더 했다. 윤혜숙이 피곤한 기색을 내비치고서야 그는 그녀가 쉴 수 있도록 말을 멈추었다.
  • “갑시다.”
  • 강재욱은 신지은을 데리고 병실을 나섰다.
  • 병원을 나왔을 때는 이미 길가의 가로등들이 켜져 있는 상태였다.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시고 마음속의 큰 걱정거리 하나를 덜어낸 그녀는 저도 모르게 차 안에서 잠들어버렸다.
  • “이만 일어나시죠.”
  • 얼마 동안이나 잠들어 있었을까, 문득 자신을 깨우는 소리에 눈을 뜬 그녀는 자신의 얼굴 바로 앞에 있는 남자의 잘생긴 얼굴을 마주했다.
  • “죄송해요. 잠들어버렸네요.”
  • 깜짝 놀란 그녀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는 뒤로 물러났다. 그런 그녀를 향해 강재욱이 담담하게 말을 내뱉었다.
  • “집에 도착했습니다.”
  • ‘고작 가까이 간 것만으로도 잔뜩 긴장하는 모습이 겁을 먹은 꼬마 토끼 같군. 조금 전에 끌어안기라고 했더라면 분명 더 겁을 먹었겠지. 어쩌면 내 품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을 쳤을 수도 있겠군.’
  • “죄송해요. 지금 바로 내릴게요.”
  • 신지은은 다시 한번 그에게 사과하고는 다급히 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차에서 내린 그녀는 눈 앞에 펼쳐진 낯선 환경에 그대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그녀의 집도 아니었고, 기숙사는 더더욱 아니었다.
  • “여기가 어디예요?”
  • “우리 집이요.”
  • 강재욱의 대답에 신지은은 경악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강재욱이 말을 이어갔다.
  • “설마 나랑 결혼까지 해놓고 본인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습니까?”
  • “하지만 우리가…”
  • ‘우리가 어떻게 한집에서 지내냐고!’
  • “들어갑시다.”
  • 그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의 커다란 손이 빠져나가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강하게 그녀의 작고 여린 손을 움켜잡았다.
  • 그 상태로 신지은은 그에게 이끌려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집은 화려하고 으리으리했다.
  • 그녀는 안씨 가문의 저택에 가 본 적이 있었다. 안씨 가문의 저택만 해도 이미 충분히 으리으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곳에 들어서고 나서야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는다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 ‘이 사람 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비싼 차에 이렇게 좋은 저택에 산다고?’
  • “사장님, 사모님.”
  • 두 사람이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두 줄로 가지런히 서 있던 고용인들이 일제히 허리 굽혀 그들을 향해 인사했다. 그 모습에 신지은은 깜짝 놀랐다.
  • “오 집사님, 내일 영민한 사람으로 사모님을 전담하도록 붙여주세요.”
  • 강재욱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지시했다. 그러자 가장 앞쪽에 서 있던 중년의 남자가 사람들을 데리고 떠나갔다.
  • “챙겨줄 사람 같은 거 필요 없어요, 제가…”
  • “필요할 겁니다. 이제 저랑 위층으로 올라가 쉬도록 하죠.”
  • 그는 그녀의 말이 채 끝이 나기도 전에 끊어버리고는 그녀의 손을 잡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 그리고 놀랍게도 신지은은 그가 준비한 신혼 방을 마주할 수 있었다. 로맨틱한 장식으로 가득한 방 안에 붙어있는 “Just got married”라는 문구에 그녀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 “드레스룸은 오른쪽입니다. 직진하다 코너를 돌면 욕실이고요. 먼저 씻을 겁니까, 아니면 제가 먼저 씻을까요? 그것도 아니면, 같이 씻어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