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는 그녀를 칭찬했다. 하지만 돌아서기가 무섭게 간호사는 또 안타까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윤혜숙은 이미 석 달째 이곳에 입원해 있었다. 그녀는 폐암 말기였고, 지금으로서는 그저 별다른 수 없이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는 것뿐이었다.
듣기로는 자식이 세 명이나 있다고 했지만, 자주 그녀를 찾아오는 사람은 손녀인 신지은뿐이었다.
“할머니, 저 왔어요.”
신지은은 할머니의 병상 옆에 앉아 그녀의 앙상한 손을 잡았다. 윤혜숙은 간호사와 마찬가지로 놀란 듯한 기색을 보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왜 오늘 같은 날 여길 왔어?”
“괜찮아요. 처리해야 할 건 다 했어요.”
신지은은 억지로 미소를 짜내며 답했다. 그러자 윤혜숙이 중얼거렸다.
“아쉽구나. 내가 몸만 성했다면 네가 결혼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을 텐데.”
신지은은 눈시울을 붉혔다. 임씨 가문은 윤혜숙이 아프다는 사실을 좋아하지 않았었다. 말기 암 환자가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이 불길하다며 윤혜숙이 결혼식에 오는 것을 거부했었던 것이다.
더욱이 안시훈은 병원이 재수가 없다며 단 한 번도 병문안을 온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사실이 죄송스럽기만 했다.
“걱정 마세요, 할머니. 좋은 사람이에요. 저한테도 잘해주고요.”
하지만 할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녀는 또 한 번 울음을 꾹 참은 채 할머니에게 장담할 수밖에 없었다.
신지은은 다음날 해가 떠오를 때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신아영이 일부러 그녀에게 못된 말들을 해댔다.
“시훈 오빠한테 차였으니 메이크업 비용은 누가 대신 내줘?”
이에 신지은은 눈살을 찌푸렸다. 신아영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호텔은 모두 안씨 가문에서 비용을 대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제는 머리가 너무 복잡했던 터라 그녀는 이런 문제들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는 안시훈과 이에 대해 이야기한 적도 없었다. 그렇기에 안씨 가문이 예약한 호텔 측에서 그녀가 신랑을 바꾸는 것을 받아들일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걱정 마세요, 지은 아가씨. 강재욱 님께서 절 보내신 거예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얼른 나서서 설명했다. 그러던 그때, 그녀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강재욱입니다.”
“그쪽이… 어떻게 제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녀는 분명 어제 그와 연락처를 교환한 적이 없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제가 고용한 사람이니까, 마음 놓고 맡기세요. 호텔도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이미 다 처리했습니다.”
강재욱은 그녀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그녀를 안심시키기에 충분했다.
“후회하고 있는 거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잠시 망설이던 신지은은 결국 참지 못하고 한마디 내뱉었다. 그녀는 그 또한 어제 홧김에 충동적으로 자신과 결혼하겠다고 한 것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룻밤 동안이면 다시 냉정을 되찾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고, 만약 그가 지금 후회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전 단 한 번도 후회할 일은 한 적이 없습니다.”
남자는 단호한 목소리로 이 같은 한마디를 내뱉고는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에 신지은은 잠시 휴대폰을 손에 든 채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기가 막혔다.
‘지금 나한테 화낸 거야? 됐다. 일단 결혼부터 하자. 안 그러면 오늘 수습할 방법이 없어.’
“엄마, 언니가 입은 웨딩드레스 너무 예쁘다. 나 결혼할 때도 저런 드레스 입고 싶어.”
신지은이 메이크업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그녀가 입은 예쁜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본 신아영이 조성희에게 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챙겨 온 것으로, 꽤 안목이 있는 모양인지, 드레스가 신지은을 더 예뻐 보이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부러워할 게 뭐 있어. 안씨 가문한테 파혼이나 당하고, 창피해 죽겠어. 급하게 어떤 남자를 찾아온 건지도 모르잖아. 나중에 봤는데 너희 아빠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면 그야말로 집안 망신이지.”
조성희가 비꼬듯 말했다. 그러자 신지은은 몸을 돌려 조성희를 쳐다보며 설명했다.
“안씨 가문에서 파혼 얘기를 꺼낸 게 아니라 제가 파혼한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람은 젊으니까 안심하세요. 창피하실 일 없을 거예요.”
“쳇, 그 말을 누가 믿겠어.”
조성희가 그녀를 향해 눈을 흘겼다.
“와! 엄청 거창하잖아.”
그러던 그때 갑자기 건물 아래에서 들려온 소란스러운 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지은 아가씨, 웨딩카가 도착했어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에게 알렸다. 이에 신지은이 문을 나서려는데, 조성희가 신아영을 이끌고 그녀보다 한발 앞서 문밖으로 비집고 나갔다.
하지만 아래로 내려온 그들이 보게 된 것은 롤스로이스를 선두로 뒤따르는 들러리 차량들조차 전부 다 비싼 차들로 이루어진 웨딩카 행렬이었다.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는 광경이 아닐 수가 없었다.
“보나 마나 늙은 남자겠지. 그런 게 아니라면 이렇게 좋은 차들을 빌릴 돈이 어디 있겠어?”
조성희는 거의 확신했다.
“차에서 내린다, 엄마.”
신아영이 잔뜩 신이 난 채 말했다. 그녀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늙은 남자가 차에서 내려오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차에서 내린 남자는 꽤 젊었다. 게다가 굉장히 잘생긴 사람이었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진하고 날카로운 얼굴형, 그리고 시원하게 뻗은 눈매의 남자는 주위를 압도하는 분위기를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감히 범접할 수도 없을 것 같은 엄청난 분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