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선택
- 두 볼 역시 발그레하게 상기되어 있었고, 이로 인해 그녀의 두 눈은 더 새까맣게 빛나는 듯 보였다.
-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남자의 손은 늘씬하면서도 힘이 있었다. 그의 단단한 손끝에는 사람을 안심시키는 그 어떤 힘과 따듯함이 배어있었다.
-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긴장되었다.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했다.
- 그렇게 한참을 망설이던 그녀는 끝내 용기를 내어 남자의 손을 뿌리쳤다.
- 그녀는 발그레해진 얼굴을 한 채 반짝이는 두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긴가민가한 듯 물었다.
- “정말 저랑 결혼하시려고요?”
- “난 농담 같은 건 좋아하지 않습니다.”
- 남자가 답했다.
- “하지만 전 그쪽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쪽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는데요. 물론, 그쪽 역시 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테고요. 우리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아무래도 이렇게 결혼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요.”
- 조금 전 안시훈의 앞에서는 순간 홧김에 승낙한 것이었지만, 현재 분노가 가라앉은 뒤에야 그녀는 뒤늦게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남자에게 공평한 상황이 아니었다.
- “제 이름은 강재욱입니다.”
- 남자가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더니 물었다.
- “선택하세요. 내일 결혼식장에 저랑 안시훈 중에 누구와 들어가시겠습니까?”
- 신지은은 둘 중 누구도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내일의 결혼식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계획대로 진행되어야 했다. 결혼식이 취소되면 할머니가 걱정하실 것이 뻔했기에, 그녀는 제멋대로 결정할 자격이 없었다.
- “그쪽이요.”
- 안시훈의 배신을 생각하면 그녀는 화가 치밀었다. 나중에 일이 어떻게 될지는 이미 그녀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눈앞에 닥친 난관을 무사히 넘기고 싶을 뿐이었다.
- 비록… 강재욱이라는 이름이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었지만 말이다.
- 왜인지 어딘가에서 들어본 적이 있었던 이름 같았다. 하지만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당장에는 그보다 더 나은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 이 남자에게서는 귀티가 흐르고 있었고, 얼굴 또한 꽤 잘생겼기 때문이었다.
- 게다가 그녀 역시 얼굴이 조금 예쁘장한 것 말고는 딱히 가진 것도 없었기에 그에게도 자신을 속여야 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 혼인 신고는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었고, 두 사람은 이내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다. 구청 문을 나선 순간, 그녀가 들고 있던 혼인관계증명서를 강재욱이 가져가 버렸다는 사실만 빼면 말이다.
- “제가 가지고 있을게요!”
- 신지은은 그것을 다시 가져오고 싶었다.
- “저한테 두겠습니다.”
- 하지만 남자의 말투는 그 어떤 거절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강경했다.
- 신지은은 입술을 삐죽였다. 그녀는 이 일로 그와 실랑이하고 싶지 않았다.
- “아참, 내일 결혼식은…”
-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 “아, 네.”
- 신지은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 “운전기사더러 집에 데려다주라고 말해놨습니다.”
- 언제 온 것인지는 몰라도, 문 앞에는 차가 한 대 더 서 있었고, 운전기사가 길옆에 서서 차 문을 열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 이에 신지은은 순간 그에게 뭐 하러 갈 것인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끝내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 비록 이미 혼인신고까지 한 사이이긴 하지만, 어쨌든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였기에, 그런 것까지 묻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 차에 올라탄 뒤, 운전기사에게 주소를 알려준 그녀는 가족들에게 이 일을 어떻게 알려야 할지 고민했다. 결혼식 하루 전에 신랑을 바꾼다니, 도시 전체를 통틀어도 이런 경우는 그녀가 처음일 터였다.
- “뭐? 신랑을 바꾼다고? 신지은, 너 미쳤구나!”
- 아니나 다를까, 신랑을 바꾼다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계모인 조성희는 목청을 높여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 신지은은 고개를 숙인 채 그녀의 고함이 끝이 난 뒤에야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 “안시훈이 바람을 피웠어요. 전 그런 남자랑 결혼할 수 없어요.”
- “쳇, 시훈 오빠가 언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난 진즉 알고 있었어. 역시나 내 짐작이 맞았네.”
- 그녀의 배다른 여동생인 신아영은 고소해하고 있었다.
- “혼수로 받은 돈은 돌려줘야 하는 거니? 새 남자는 뭐 하는 사람인데? 혼수는 준대?”
- 조성희가 다급히 물었다. 하지만 신지은은 그 문제들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 그럼에도 안시훈이 줬던 돈은 결국 돌려줘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강재욱이 혼수로 돈을 줄지에 대해서는… 그녀는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 “돈은 내 손에 있어. 그리고 난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돈은 돌려주지 않을 거야. 만약 시훈이가 돈을 돌려달라고 하면 네가 알아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든지 해.”
- 조성희는 그야말로 막무가내였다. 신지은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비록 그녀가 그 돈을 내놓지 않을 것이라는 것쯤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화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 그러던 그때, 신영호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 “그런 쓸데없는 얘기 하지 말고 밥이나 먹자고. 다 식겠어.”
- “천천히 드세요. 전 할머니 병원에 가봐야겠어요.”
- 그러자 신영호가 호통쳤다.
- “내일이 결혼식인데 병원은 무슨! 재수 없게!”
- “내버려둬요. 효성 깊은 손녀라잖아요. 그렇게 효도가 하고 싶다는데, 그냥 하게 두세요.”
- 조성희가 비꼬듯 말했다. 신지은은 얼른 그곳을 벗어났다. 그리고 문을 나선 순간 순식간에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 그녀는 헛된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집안에는 할머니 말고는 그녀를 아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 하지만 그것도 어찌 보면 잘된 일이었다. 괜히 쓸데없이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으니 말이다.
- “지은 씨, 내일이 결혼식 아니에요? 그런데도 할머니 병문안 오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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