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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굶주린 늑대의 불만

  • 하시연은 그렇게 한참 동안 넋을 놓고 있었다.
  • 침대에 누워있는 저 남자, 허상 아닐까?
  • 툭 건드리면, 거품처럼 사라지는 건 아닐까?
  • 하시연은 침대를 향해 몇 걸음 더 다가갔다. 그러고는 몸을 낮춰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내밀어 남자의 얼굴을 콕 찔렀다.
  • 진짜 사람이다!
  • 하시연은 어리둥절했다.
  • “사고로 얼굴이 망가져서 엉망이라 했잖아?”
  • 임준, 임 씨 가문의 장손. 5년 전, 임 씨 그룹의 황제 자리에 오른 그는 사람들에게 상계를 뒤흔드는 거물이라고 불리웠다.
  • 그러다 반년 전, 심각한 사고로 안타깝게도 식물인간이 되어버렸다.
  • 임준의 몸 상태는 나날이 안 좋아졌다. 살 날이 얼마 남지도 않았다는 말에 마음이 급해서 신부를 찾아 결혼식을 올렸던 것이다.
  • 그리고 공교롭게도 하시연이 목숨을 구하기 위한 부적이 될 신부로 당첨되었다.
  • 준수한 얼굴로 가만히 누워있는 남편을 보더니, 하시연은 뭔가 깨달았다.
  • 물론 예전엔 대단한 사람이었겠지만, 지금은 재벌가 싸움의 루저에 불과하다는 것을.
  • 루저에게 사람들은 더더욱 무자비했다. 그들은 멋대로 이 사람을 깎아내렸고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버전의 근거 없는 소문이 떠돌아다니곤 했다.
  • “삶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눈 감고 당하는 수밖에 없겠네.”
  • 그녀는 달콤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그러고는 침대 위에 누워있는 남자를 보면서 자기소개를 했다.
  • “하시연이라고 해. 네가 죽기 전까지만 네 와이프로 살게.”
  • 자기소개를 끝내고 그녀는 뭉친 근육을 주물렀다.
  • 꼭두새벽부터 지금까지 쉴 새가 없었던 그녀는 당장 웨딩드레스를 벗어던지고 푹 자고 싶었다.
  • 하시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샤워실로 향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샤워실로부터 물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침대에 누워있던 남자의 감겨진 눈꺼풀은 살짝 움찔했다.
  • 하….
  • 죽기 전? 와이프?
  • ….
  • 하시연은 샤워가운을 두르고 화장실에서 걸어 나와 한쪽 면에 있던 옷장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 옷장 안엔 남자 옷들로 가득했고 죄다 짙은 색 계열의 옷이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우울해났다.
  • 하시연은 짙은 색 잠옷을 꺼내 몸에 걸쳤다.
  • 아담한 키는 아니었지만 몰래 어른 옷을 훔쳐 입은 것처럼 박시했다.
  • 잠옷을 제대로 입은 후, 하시연은 책상 위에 놓인 이쁜 디저트를 보았다.
  • 그녀는 곧장 걸어가더니 소파에 앉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디저트를 먹기 시작했다.
  • 접시 위의 디저트를 싹쓸이하고 나니 요동쳤던 배도 어느새 잠잠해졌다.
  • 배부른 그녀는 나른하게 소파에 기대앉았다.
  • 딱딱했던 원목 소파는 편하기는커녕 오래 기대앉다 보니 허리까지 쑤셨다.
  • 하루 종일 피곤했던 하시연은 푹신푹신한 침대에 누워 휴식하는 게 가장 큰 소원이었다.
  • 그렇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멀지 않은 곳의 킹사이즈 침대가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 한참 망설이더니 하시연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를 향했다.
  • 어차피 아무것도 모를 텐데, 뭐 어때.
  • 하시연은 달콤한 목소리로 그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 “나 침대에서 잘게. 불만 있으면 얘기해.”
  • “….”
  • “얘기 안 하면, 허락한 걸로 알고 있을게!”
  • 식물인간인 임준이 대답할 리가 있나?
  • 하시연은 마치 한 마리의 고양이처럼 냉큼 침대로 기어가 편히 누웠다.
  • 그녀는 돌아누워 임준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그의 잘생긴 얼굴을 콕 찔렀다.
  • “오늘 우리 신혼 첫 날밤이야. 이걸로 우린 같이 잔 거다?”
  • 혼잣말로 한참 중얼거리다가 하시연은 슬며시 두 눈을 감았고 그 뒤로 금방 잠들었다.
  • ….
  • 단잠에 빠져있었던 하시연은 악몽에 시달렸다.
  • 꿈속에서 굶주린 늑대 한 마리가 사나운 눈빛으로 그녀를 째려보면서 거칠게 그녀를 누르며 그녀의 목을 졸랐다. 그러다 그 늑대는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했다.
  • “불만,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