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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어젯밤 너무 피곤했나 보다

  • 이튿날, 아침.
  • 푹 잠들어있던 하시연은 쉴 새 없이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짜증이 났다.
  • 그녀는 옆에 있던 푹신한 “쿠션”에 머리를 묻고 잡음을 차단하려 했다.
  • 그러다 한참 후, 노크 소리는 멈췄지만 방안은 더 시끄러워졌다.
  • 어쩔 수없이 잠에서 깬 하시연은 성질을 부렸다.
  • “나 휴가 중이라고! 일 안 한다고!”
  • 실컷 짜증을 내고서야 그녀는 간신히 두 눈을 떴다. 낯선 사람들은 줄지어 서있었고 그 사람들은 변태보듯 그녀를 보고 있었다.
  • 그리고 앞장서있는 손 집사는 매서운 눈빛으로 그녀를 베어 죽일 것만 같은 기세였다.
  • “….”
  • 뭐가 잘못됐나?
  • 그녀는 어리둥절했다. 그러다 뒤늦게서야 손바닥으로부터 이상한 촉감이 느껴졌다….
  • 고개를 푹 숙이고 손바닥 아래를 확인해보더니 그녀는 저도 모르게 두 눈을 부릅 떴다. 그녀는 지금 남자의 가슴팍 위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 게다가 그 남자는 웃통을 까고 있었다!
  • 하시연은 다급하게 손을 치우고 그 알몸남과 거리를 두었다.
  • “뭐야, 이 사람이 왜?”
  • 손 집사는 헉 소리 날 정도로 못생긴 하시연을 빤히 쳐다보았다.
  • 그는 애써 분노를 삼키며 무표정으로 말했다.
  • “하시연 씨. 저희 도련님 움직임이 불편하시니까 앞으로 이런 경솔한 행동은 삼가주세요. 감기 걸리면 큰일 나니까요.”
  • 하시연은 그 말에 말문이 막혔다.
  • 식물인간인 임준이 스스로 잠옷을 벗어던질 리가?
  • 이 방 안에서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건 그녀뿐이었다.
  • 그러니까, 어젯밤 침대에서 잠들고 난 뒤 욕구를 참지 못하고 식물인간한테 몹쓸 짓을 했다는 건가?
  • 하시연은 그제서야 그 사람들의 표정이 납득이 갔다.
  • 식물인간한테, 그게 사람이 할 짓이냐고!
  • 하시연은 부끄러워서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녀는 바로 침대에서 뛰어내려와 얼굴을 가리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 손 집사의 뒤에 서있던 도우미 한 명은 하시연의 뒷모습을 보며 혐오했다.
  • “그래도 임 씨 가문의 장손이신데, 도련님더러 저런 여자랑 결혼을 하라뇨…. 이거 도련님 모욕하는 거 아니에요? 정말 너무 해요!”
  • 손 집사도 마찬가지로 불만 가득했다.
  • 예전 같았으면 누가 감히 이딴 식으로 도련님을 모욕했겠는가?
  • 손 집사는 화를 삭이며 굳은 얼굴로 그 도우미를 째려보았다.
  • “시끄러!”
  • 도우미는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닫았다.
  • ….
  • 화장실에 들어간 하시연은 쪽팔려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 언제부터 성욕이 펄펄 끓어넘쳤냐고! 남자 옷이나 벗기고!
  • 하시연은 울적한 마음에 가뜩이나 부은 얼굴을 두드리면서 자신을 위로했다.
  • “어차피 얼굴 부어있으니까, 조금 쪽팔려도 괜찮아.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이 문을 나서는 순간, 모든 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거야!”
  • 스스로를 위로하던 중 그녀는 꽉 묶여진 잠옷 웃옷과 바지를 보게 되었다. 그녀는 의아했다.
  • “내가 어제 묶었었나?”
  • 근데 왜 지금은 이렇게 꽉 묶여있는 거지?
  • 이 방 안에서 매듭을 묶을 수 있는 사람은 하시연뿐이었다. 식물인간이 매듭을 묶었을 리가 없으니까.
  • 하시연은 조금씩 아파지는 목을 주물렀다.
  • “어젯밤 너무 피곤했나 보다. 뭘 했던지 그새 까먹었네.”
  • 결혼, 참 못할 짓이다!
  • 마치 누군가에게 눌렸던 것처럼 몸이 무거웠고 목은 또 누군가에게 조인 것 같이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