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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하시연의 진짜 얼굴

  • 손 집사는 무표정으로 말했다.
  • “나가주세요! 도련님 휴식하셔야 합니다!”
  • 하홍빈은 쫓기는 기분에 더 화가 났다.
  • “고작 하인 따위가 감히 주인한테! 너 지금 이거 주제넘은 짓이야!”
  • 금방이라도 싸울 것 같은 분위기에 하시연은 낮은 목소리로 하홍빈에게 말했다.
  • “아버지, 그만하세요.”
  • 하홍빈은 손 집사의 태도가 굉장히 불쾌했다.
  • 쥐뿔도 모르는 집사가 이렇게 설치다니.
  • 하지만 조금 전 하시연에게 독약을 건넸던 그는 불안한 마음에 감히 떠들지 못했다.
  • 그러자 하홍빈은 대인배행세를 했다.
  • “당신 우리 딸한테 고맙게 생각해. 이번엔 그냥 넘어가 주지!”
  •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하시연에게 당부했다.
  • “너 처신 잘해야 돼. 아랫사람들 잘 가르치고. 너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언제 뒤통수 맞을지 모른다…. 오늘은, 이만 가볼게. 다음에 또 너 보러 오마.”
  • 하홍빈은 얘기를 끝내고 바로 자리를 떴다.
  • 방안엔 또 그녀와 임준 둘뿐이었다.
  • 하시연은 침대 가까이로 다가가 하홍빈이 건넨 독약을 꺼냈다.
  • 그녀는 냄새를 맡았다. 가루 형태로 추출된 독약이었고 굉장히 좋은 냄새가 났다.
  • 냄새가 좋을수록 위험한 법이었다.
  • 하시연은 침대 머리에 기대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지금 이 꼴인데…. 왜 아직도 네가 하루라도 빨리 죽길 바라는 사람이 있는 거야!”
  • 저번에는 누가 음식에 독을 타더니, 이번에는 하홍빈이 독을 타라고 시키고….
  • 치명적인 독들은 아니었지만 일정한 양을 복용하고 나면 임준은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 요즘 일어났던 일들은 하나둘씩 하시연의 머릿속을 스쳤고 기분은 다시금 울적해졌다.
  • 그녀는 쓸쓸하게 침대 옆에 앉아있었다. 외롭고 슬픈 눈빛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 “보육원에 있었을 때, 부모님을 다시 만난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어.”
  • “다행히도 이번 해에 우리 친아빠가 나 찾아오셨거든.”
  • “그래서 아, 이제 나한테도 가족이 생겼구나. 나도 이제 혼자가 아니구나 싶었는데.”
  • “그랬는데…. 다 헛된 망상이었어.”
  • “회사가 파산 위기라고, 나더러 임 씨 가문에 액막이 신부가 되어달라고 부탁하네?”
  • “난 그래도 진짜 어쩔 수 없었던 거라고 포장했거든. 그래도 하시연이라는 애를 딸이라고 생각해 줄줄 알았어.”
  • “근데 지금 이게 뭐냐.”
  • “액막이 신부로도 모자라, 사람을 죽이라니….”
  • 그러니까….
  • 처음부터 하홍빈은 딸이 보고 싶어서 찾아왔던 게 아니었다.
  • 따로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 하홍빈에게 하시연이란 이익을 얻는 도구에 불과했다.
  • 쓸모가 없어지면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 지금 하시연의 기분은 최악이었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앉아있다 보니 어느새 밤이 되었다. 손 집사가 임준에게 저녁을 먹이는 것도 그녀는 전혀 몰랐다.
  • 손 집사도 하시연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 다만 늦은 밤에 시커먼 마스크 팩은 정말 너무 끔찍했다! 도련님께서 늘 눈을 감고 있어서 다행이지, 아니면 진짜 놀라서 죽을지도 모른다.
  • ….
  • 밤이 깊어지고 나서야 하시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방안 한쪽에 있던 찬장이 그녀의 눈길을 끌었고 그 찬장 안에는 와인 몇 병이 놓여있었다.
  • 하시연은 다가가 와인 한 병을 꺼내 쉽게 뚜껑을 열었다.
  • 그러고는 몇 잔을 연속으로 들이켰다.
  •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얼마나 마셨는지도 그녀는 몰랐다. 하시연은 잔뜩 취해서 침대 쪽으로 걸어가 임준을 콕콕 찔렀다.
  • “그래도 너랑 한두 달을 잘 지내보려고 했는데. 너 죽으면, 나 그냥 떠날 거야. 부모의 은혜도 이걸로 다 갚은 거고.”
  • “근데 지금 봐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루빨리 이곳을 떠나야겠어.”
  • “나 미워하지 마. 나 벌써 두 번이나 막아줬잖아. 이제 죽든 살든 네 운명이야.”
  • 하시연은 달콤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임준의 몸 위에 쓰러졌다.
  • 하루 종일 달고 있었던 시커먼 마스크 팩은 드디어 벗겨졌다.
  • 완벽하다고 해야 하나, 부족한 곳이라곤 하나 없는 청순한 과즙상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 몽롱한 달빛은 그녀를 밝게 비췄다. 실수로 인간 세상에 내려온 요정같이 아름다웠고 그 얼굴은 사람을 홀렸다….
  • 하시연은 또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 의식은 흐릿했지만 누군가에게 억지로 품에 안기고 또 그 누군가가 그녀의 몸 위에 올라타는 느낌이 들었다.
  • 하시연은 상대의 얼굴을 보려고 아등바등 애썼다.
  • 지난번 꿈에 나타났던 그 굶주린 늑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