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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독약

  •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 머리는 너무 오래 감지 않은 데다가 자꾸 긁었던 탓으로 뒤죽박죽으로 엉켜있었다.
  • 그리고 얼굴은….
  • 붓기가 빠져 얼굴이 주먹만 해졌지만 때가 묻은 것처럼 검은 점이 가득했다.
  • 얼마 전, 실험으로 방출된 독소 탓으로 하시연의 얼굴은 돼지머리처럼 부었었다.
  • 붓기가 빠지면서 자연스럽게 독소도 배출되었고 그 독소들은 응고되어 검은 점으로 얼굴에 남았다.
  • 그동안 프로젝트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었던 그녀가 언제 그걸 처리할 새가 있었겠는가?
  • 지금의 그 얼굴은 하수구만큼이나 역겨웠다.
  • 하시연은 그제서야 조금 전 도우미의 눈빛이 납득이 갔다.
  • 그 도우미뿐만 아니라 그녀 스스로도 이 얼굴이 징그러웠다!
  • 하시연은 빠른 속도로 샤워를 끝냈다.
  • 머리는 깔끔해졌고 얼굴에 있던 검은 점들도 깨끗이 씻겼다.
  • 하시연은 완벽하게 회복된 얼굴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 “이러고 만나서는 안 되지.”
  • 그녀는 한편에 있던 화장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엔 팩이 한가득했다.
  • 하시연은 해초 마스크 팩을 한 장 꺼내 얼굴에 붙이고 화장실에서 걸어 나왔다.
  • 옷을 채 갈아입지도 못했는데 다급한 노크 소리와 함께 누군가 외쳤다.
  • “시연아, 아버지다. 나 왔어.”
  • 하시연은 하홍빈이 방까지 찾아올 거라 상상도 못했다.
  • 그녀는 문을 열었다.
  • 문이 열리고, 하홍빈은 시커먼 마스크 팩을 하고 있는 하시연을 보았다. 너무 놀란 나머지 그는 뒷걸음질을 쳤다.
  • “누, 누구?”
  • 하시연은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 “아버지, 저 시연이에요!”
  • “너 꼴이 그게 뭐야?”
  • 하시연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 “피부 관리 좀 하려고 그랬죠. 근데 왜 올라오셨어요?”
  • 하홍빈은 정신이 들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친한 척을 하며 말했다.
  • “우리 임서방 괜찮나 싶어서.”
  • 말하면서 하홍빈은 방으로 걸어들어왔다. 그런데 침대 위에 누워있는 임준에게는 눈길 한 번 안 주고 주의력은 온통 문어귀 쪽에 향해있었다.
  • 아무도 찾아오지 않자 하홍빈은 품 안에서 약주머니 하나를 꺼내 하시연에게 건넸다.
  • 하시연은 어리둥절해서 하홍빈을 쳐다보고 있었다.
  • 하홍빈은 바로 설명했다.
  • “내가 요 며칠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임 씨 가문의 도련님이 아무리 산송장이고 살날이 한두 달밖에 안 남았다 해도 아버지로서 네가 이곳에서 고생하는 걸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구나! 차라리 우리가 편하게 보내주자. 그게 임준한테도, 너한테도 최선이야!”
  • 그는 하시연이 들고 있는 약주머니를 가리켰다.
  • “이거 만성 독약이야. 이거 먹이면 임준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거고, 아무도 널 의심 못 해. 그저 자연 사망으로 인정받을 거야.”
  • 하시연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하홍빈을 쳐다보았다.
  • 하홍빈은 하시연의 팔을 툭툭 두드리며 자상하게 말했다.
  • “아버지는 널 위해서 그러는 거야. 네 자유를 되찾아주려고!”
  • 그때, 문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 하홍빈은 즉시 주제를 바꿨다.
  • “시연아, 잘 있어라. 임준이 잘 챙겨주고. 너희 이제 부부잖아, 잘 살아야지!”
  •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 집사가 방으로 들어왔다.
  • 손 집사는 정색했다.
  • “하홍빈 씨, 저희 도련님께선 낯선 사람이 함부로 방에 드나드는 걸 굉장히 싫어하십니다.”
  • 손 집사는 하홍빈이 그새 위층으로 올라와 도련님 방까지 들어올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
  • 도련님은 침대에 누워계시지만 손 집사는 도련님의 영역을 철저히 지켜야 했다.
  • 손 집사는 예의 없이 멋대로 남의 방에 들어온 하홍빈이 굉장히 거슬렸다.
  • 하홍빈은 그 말에 불쾌했다.
  • “나 임준 장인어른이야. 내가 왜 낯선 사람이야? 어디 하인 주제에 감히 주인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