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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전남편

안녕, 전남편

도담도담

Last update: 2021-12-24

제1화 드디어 이혼하다

  • C 군사 구역, 화국 T시의 가장 큰 군사기지.
  • 새빨간 원피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자는 마치 황막한 대지에 피어난 한 송이의 피안화 같았다. 그녀는 높은 힐을 밟으면서 시선을 이끌며 군사 구역의 문 앞에 도착했다.
  • “ 잠시만요. 등기가 필요합니다. ”
  • 문 앞에서 보초를 서던 이가 그녀를 붙잡았다. 유아린의 붉은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아름답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필요 없습니다. 저는 그쪽 상교의 아내거든요. ”
  • 놀랄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에 보초를 서던 병사들은 넋이 나간 듯 서 있다 얼른 그녀를 향해 인사했다.
  • “ 사모님, 죄송하지만 먼저 상교님에게 사모님께서 오셨다고 보고 올리겠습니다. ”
  • “ 네, 그럼 얘기하는 김에 이 말도 전해주세요. 저 그 사람이랑 이혼할 거라고. ”
  • 십여 분 후, 유아린은 고양이처럼 요염한 걸음으로 전투기 앞에 멈춰 섰다. 최시혁은 지금 회의를 하는 중이라는 보고를 들은 차였다.
  • “ 회의요? 회의가 저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던가요? ”
  • 유아린의 긴 속눈썹이 살짝 떨리는 듯했다. 그녀는 눈앞의 이를 밀어내고는 팔과 다리를 사용해 사다리에 올랐다. 그녀를 지키고 있던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맞추며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그들은 그녀를 차마 말리지는 못했다. 그녀는 다름 아닌 상교님의 부인이었으니.
  • 기지에는 새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군인들이 있었다. 아리따운 여인이 짧은 치마를 입고서 사다리를 올라타는데, 불어오는 바람에 치맛자락이 흩날리는 모습은 마릴린먼로를 연상케 했고 적지 않은 이들이 눈을 부릅뜨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감시실에 있던 남자는 그 광경에 가늘게 뜬 눈이 급격히 어두워지더니 이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 “ 다들 정신 똑바로 안 차려? 10kg 매달고 20km 달린다, 실시! ”
  • “ 최시혁씨, 그건 좀 너무한 거 아니야? ”
  • 유아린은 손을 털며 문가를 비집고 들어왔다. 그녀의 장난기 섞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큰 손이 그녀를 우악스레 코앞까지 잡아당겼다.
  • “ 부대의 규율을 어기다니, 간덩이가 부었나? ”
  • 유아린은 매혹적인 미소를 띠었다. 오늘 최시혁은 어두운 녹색의 군복에 모자를 쓰고 있었다. 구김살 하나 없이 꼿꼿하게 서 있는 그의 모습은 강직하고 곧은 그의 성품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준수한 얼굴은 차갑게 굳어있었고 바늘을 숨긴 듯한 긴 눈매는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 “ 회의하고 있는 걸 몰랐나? ”
  • “ 알지. ”
  • 유아린은 담담히 입을 열면서 짙은 미소를 띤 얼굴로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 “ 그래서 내가 보러 왔잖아? ”
  • 그들의 주위에 있던, 아직 자리를 뜨지 않은 군인들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너무 제멋대로인 사람 아닌가? 다른 곳도 아니고 군사 구역에서.
  • 여전히 차갑게 굳어있는 최시혁은 입가의 근육을 움직여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 “ 회의 끝났다. 나가 봐. ”
  • “ 네! ”
  • 대답을 한 군인은 나가는 와중에도 문을 닫는 걸 잊지 않았다. 그에 유아린은 혀를 차며 생각했다. 이 사람 전도가 유망하네.
  • 최시혁은 차가운 얼굴로 그녀의 팔을 뿌리치며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
  • “ 무슨 짓이야? ”
  • “ 아까 보고할 때 제대로 얘기 전했을 텐데? ”
  • 유아린이 나른히 웃어 보였다.
  • “ 이혼하자고. ”
  • 이혼?
  • 최시혁은 냉소를 흘리며 눈썹 한쪽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 “ 군혼이 당신이 이혼하고 싶다면 할 수 있는 건 줄 알아? ”
  • 군혼. 그래, 군혼이었다.
  • 유아린은 미소를 거두었다. 그때 유아연이 최시혁과 당장이라도 결혼하고 싶은 마음에 그에게 약을 쓰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지금처럼 이 군혼에 발이 묶여있을 이유도 없었다.
  • 세상일은 언제나 그렇듯 막장 드라마 같았다. 유아린의 이복동생인 유아연이 최시혁에게 약을 썼는데 그가 하필이면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같이 하룻밤을 보내는 바람에 그녀는 눈앞의 이 남자와 부득불 결혼하게 된 것이다.
  • “ 군혼이라도 그에 따른 이혼 방법이 있겠지. ”
  • 그녀는 미소로 자신의 눈동자에 담긴 감정을 숨기며 태연한 모습으로 책상 위에 서류를 올려놓았다.
  • “ 너만 동의하면 이혼할 수 있어. ”
  • 최시혁의 잘생긴 얼굴이 무섭게 가라앉았고 입꼬리에는 비웃음 섞인 미소가 걸렸다.
  • “ 꿈 깨. ”
  • “ 진짜 꿈에서라도 너랑 이혼하고 싶네. ”
  • 유아린은 그의 반응따윈 전혀 안중에도 없었다. 그녀는 그의 어깨에 몸을 기댔다.
  • “ 3년 내내 독수공방하면서 살았는데 제가 안 외롭겠어? ”
  • 최시혁의 태양혈 쪽의 핏줄이 튀어나왔다. 최시혁은 눈앞의 사람이 이 정도로 수치를 모르는 이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 “ 내가 당신이랑 잔 건 사실이니 나도 책임을 져야지. ”
  • 최시혁은 냉담한 말을 내뱉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 “ 최씨 집안에 시집오는 게 당신들이 진짜 바라는 게 아니었나? ”
  • 그는 그녀의 여린 손목을 덥석 붙잡으며 그녀를 자신에게서 떼어놓고는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의 손을 내팽개쳤다.
  • “ 이딴 수작질은 그만하지. 진짜로 화내기 전에 얼른 가는 게 좋을 거야. ”
  • “ 난 안 갈 건데. ”
  • 유아린은 그의 손을 붙잡아 자신의 가슴께 위로 들어 올리며 교태를 부리듯 말했다.
  • “ 내가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보상은 없어? ”
  • 미간을 좁힌 최시혁의 긴 눈매에 싸늘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자신의 분노와 경멸을 애써 억누르며 말했다.
  • “ 꺼져. ”
  • 싫은데.
  • 유아린은 남자가 그녀를 파리 쫓듯 싫어할수록 더욱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고 최시혁이 운전석에 앉으려 할 때는 더욱더 뻔뻔하게 그의 다리 위에 앉았다.
  • “ 최시혁. 제대로 된 설명이 없으면 나도 안 갈 거야. ”
  • 유아린의 하얀 손가락 위로 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다. 그녀는 남자의 목에 손을 올리며 입술을 가까이했다.
  • “ 두 번은 안 말해. ”
  • 최시혁은 그녀의 공세를 비껴가며 노기가 담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 “ 유아린! 여기가 어딘지 자각은 있어? ”
  • “ 군사 구역에 있는 전투기 안이지. ”
  • 유아린은 생긋 웃는 얼굴로 애교를 부리듯 그의 가슴팍에 고개를 기댔다.
  • “ 친애하는 최시혁씨. 나랑 이혼할 생각 없는 거면 나랑 여기서 할래? ”
  • 말도 안 되는 소리.
  •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 최시혁의 태양혈 위에 파란 핏줄이 당장이라도 터질 듯 팽팽히 부풀어 올랐다. 여자를 때리지 않는 그였지만 최시혁은 주꾸미처럼 그에게 달라붙은 여자를 당장이라도 뜯어내고 싶었다. 그녀는 일부러 그를 자극하기 위해 그의 다리 위에서 자신의 가는 허리를 꿈틀댔다. 유아린의 흰 허벅지가 바깥쪽으로 향하게 되고 그녀의 통통한 엉덩이는 그곳 바로 위에 내려앉았다.
  • 최시혁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그도 평범한 남자로 3년 동안 금욕을 해왔었다. 그의 목젖이 위아래로 움직였고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더욱더 날카로워졌다. 유아린은 그가 이런 반응일 줄 예상했다는 듯이 싱긋 웃어 보이더니 자신의 섬섬옥수로 그의 가슴 위를 건반을 두드리듯 건드리다 단추를 풀러 했으나 그 행동은 큰 손에 의해 단단히 잡혔다.
  • “ 왜? 싫어? ”
  • 유아린은 고개를 들어 일렁이는 아름다운 눈동자로 유혹하듯 그를 바라보았다.
  • “ 아니면 아직 그 사람 못 잊어서 그래? ”
  • 그 사람. 박하은은 그의 첫사랑이었고 그가 잊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 최시혁은 얼굴을 무섭게 굳히며 거친 몸짓으로 자기 몸 위에 앉아있던 유아린을 밀어냈고 그 바람에 유아린은 비틀거렸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뒤에서부터 남자의 널따란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의 귓가에 입술을 대고 작게 속삭였다.
  • “ 얘기 들어보니 박하은씨 오늘 귀국한다던데. ”
  • 그 한 마디가 최시혁의 귓가에 천둥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박하은이... 돌아왔다고?
  • 최시혁은 몸을 일으켜 세우면서 그녀에게서 벗어났다. 차갑게 굳은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 “ 이혼 합의서는? ”
  • 유아린은 바닥에 내팽개쳐졌지만 화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책상 위의 서류를 들어 건넸고 최시혁은 그녀의 손에서 서류를 빼앗아가더니 아주 빠른 속도로 사인을 마쳤다.
  • “ 오늘부터 우린 정식으로 이혼한 거야. ”
  • 최시혁은 한 글자, 한 글자 씹듯이 말을 내뱉고는 서류를 내던지고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