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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생사가 걸린 결정

  • 3일 내내 최시혁과 유아린의 보살핌 아래 라이브 방송은 제대로 진행되었다.
  • 야외 생활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적어도 이 프로그램에서는 말이다. 감독들은 게스트들의 몸 상태를 살피기 위해 여러 차례 고찰을 거쳐 수원이 풍부하고 위험지수가 낮은 “원시 삼림”을 선택했다. 이것이 만약 진짜 서바이벌이었다면 유아린은 물론이고 경험이 풍부한 최시혁이라 할지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니 제작진은 모두 친절한 편이었다.
  • 다만 유아린이 생각지 못한 것은 담수를 찾아 나섰던 일로 시청자들의 그녀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는 것이었다. 시청자들은 예상 밖으로 노련한 최시혁을 제외한 다른 게스트들과 비교했을 때 그녀의 실력이 출중하다고 느꼈다.
  • “ 유아린씨, 생각보다 능력이 더 좋으신데요? ”
  • 감독은 오늘 라이브 방송의 데이터를 가리키면서 무척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 “ 이것 좀 보세요, 엄청 많은 사람들이 유아린씨를 주목하기 시작했어요. 그중에 당신 독자들도 있고요, 아마 책도 엄청나게 잘 팔릴 거예요. ”
  • 그는 유아린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 “ 돈 벌게 되면 저한테 고마워하세요. ”
  • 유아린은 어쩔 수 없이 웃어 보이고는 비꼬듯 말했다.
  • “ 당연하죠. 그런데 제일 큰 수혜자가 저는 아니죠. ”
  • 재능이란 대단했다. 누가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재능을 발휘할 거라 예상했을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급한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 “ 큰일이에요. 긴급상황이에요! ”
  • 강호가 풀숲을 헤치고 촬영팀의 텐트 쪽으로 달려왔다.
  • “ 누나, 빨리 와보세요. 시혁이 형 팀 쪽이 무슨 일 때문인지 길이 막혀서 늦을 것 같아요. ”
  • 감독의 낯빛이 돌변했고 유아린은 그의 어깨를 누르며 말했다.
  • “ 감독님, 제가 가볼게요. 촬영팀은 저 따라오세요. ”
  • 그녀는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몸을 돌려 강호를 따라 숲의 깊숙한 곳에 다다랐다. 강호는 유아린을 데리고 임시 캠프로부터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도착했다. 관목 수풀 사이로 멀리 떨어진 곳에 박하은이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있고 그보다 더 작은 몸이 바닥에 누운 채로 경련하고 있는 게 보였다.
  • “ 어떻게 된 일이에요? ”
  • 유아린은 곧바로 그쪽으로 다가가 상황을 파악했다. 바닥에 누운 아이는 이제 여섯, 일곱 살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아이는 눈을 감고 있었고 파랗게 질린 입술에 온몸은 경련으로 인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 “ 저도 모르겠어요. 저도 소리가 들려서 와본 거예요. ”
  • 박하은은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지 두 손을 남자아이의 몸 위쪽에 두고는 그를 안아 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 모습이었다. 박하은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 “ 누가 이런 곳에 아이가 있을 줄 상상이나 했겠어요. ”
  • “ 어때요? ”
  • 강호 역시 바닥에 무릎을 굽히며 말했다.
  • “ 옷부터 풀어헤쳐 봐. ”
  • 유아린은 아이의 옆에 자리를 잡고서는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 “ 일단은 몸에 상처가 있는지 없는지부터 확인해야 해요. ”
  • 두 청년은 옆에서 허둥지둥 그녀를 도왔다. 아이의 발목 부근에서 선명한 컬러의 벌레를 발견한 유아린이 그것을 나무 막대기로 떼어냈고 벌레는 피를 적지 않게 빨았는지 배가 통통해 풀숲 쪽으로 굴러 들어갔다.
  • “ 이게 뭐예요? ”
  • 강인은 놀랐는지 큰 목소리로 물었다.
  • “ 이거 독이 있는 건가요? ”
  • “ 이젠 진짜 무슨 시도든 해봐야겠네. ”
  • 유아린은 경각심을 늦추지 않고 아이의 다른 곳을 꼼꼼히 확인하며 물었다.
  • “ 최시혁은요? ”
  • “ 사냥하러 갔어요. ”
  • 박하은이 바로 대답했다.
  • “ 그에게까지 알릴 시간이 없었어요. 아이가 위험하니 일단은 응급처치부터 하고 촬영팀 쪽으로 옮기죠. ”
  • 유아린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말했다.
  • “ 강호야, 우리 식용수는? ”
  • “ 잠깐만요! ”
  • 박하은이 놀란 얼굴로 그녀의 말 허리를 끊었다.
  • “ 식용수를 쓰려고요? 우리 약품은 전부 정량인 데다가 얼마 남지도 않았어요. 심지어 당신은 아이가 어떤 독벌레에 물린 건지도 모르잖아요? 그렇게 섣부르게 행동했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책임지실 거예요? ”
  • “ 열대우림에서 자주 보는 독벌레는 고작 몇 종류에요. 뭐가 됐든 지금 바로 응급처치를 해야 해요. ”
  • 유아린은 망설임이라곤 없이 차가운 목소리로 분부했다.
  • “ 사람 목숨부터 구하죠. 물 가져와! ”
  • 강호는 얼른 가방에서 물 반병과 구급함을 꺼냈다. 박하은은 그들이 상처를 씻고 소독하는 것을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뒤로 몇 걸음 물러나면서 자신의 보급품이 담긴 가방을 꼭 끌어안았다.
  • “ 저... 저는 연출팀에게 알리고 올게요! ”
  • 박하은은 더듬거리며 입을 열더니 뒤로 두 발짝 물러나면서 몸을 돌려 숲 쪽으로 달려갔다. 유아린은 그 말을 들었음에도 대꾸도 하기 귀찮았는지 눈꺼풀도 들지 않았다. 유아린은 손을 뻗어 말했다.
  • “ 약 좀. 소독수에 소염제. 그리고 주사기도. ”
  • 강인도 도움을 주려 구급상자를 뒤졌다. 그의 손이 얼마 남지 않은 소독수에 닿았을 때 그가 잠깐 멈칫하며 말했다.
  • “ 누나, 소독수도 얼마 안 남았어요. ”
  • 유아린은 미간을 좁히며 옆을 흘긋 쳐다보고선 잠깐 고민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 임시 캠프의 물품들은 이제 거의 바닥났고 보급은 아직 하루는 더 기다려야 될 거야. 만약 순조롭게 다음 캠프에서 물건들을 공급받는다면 문제가 되진 않겠지만 오늘 담수와 소독수가 없다면 위험할 수도 있어. ”
  • 두 청년은 침묵했고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들 역시 이렇게 악렬한 상황에서 그 물건들이 부족하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고 있었다.
  • “ 우린 이미 마실 물을 반병 정도 써버렸어. 모두 반대한다면 구급대원들이 오기를 기다려야 해. ”
  • 유아린은 냉정하게 장단점을 파악하면서 최대한 팀원들의 의견을 들어주려 했다.
  • “ 어떻게 생각해? ”
  • “ 구급대원들은 얼마나 기다려야 되죠? ”
  • 강인이 물었다.
  • “ 지금 상황을 봐서는 적어도 이틀은 걸릴 것 같네. ”
  • 강호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그는 이를 갈며 말했다.
  • “ 사람부터 구하죠.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평생 양심에 가책을 느낄 것 같네요. ”
  • “ 고맙다는 말 내가 먼저 대신할게. ”
  • 유아린은 감격해 말했다. 강인은 더는 망설이지 않고 소독수를 건넸고 마지막 남은 물품들은 전부 아이에게 쓰게 됐다. 유아린은 그 응급처치들이 효과가 있을지 장담하지 못했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박하은과 최시혁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 날이 어두워지고 세 사람은 아이를 임시 캠프 쪽으로 데려와 불을 붙이고 텐트의 입구를 번갈아 가며 번을 지켰다. 우림의 밤은 날씨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갑자기 내린 소나기는 촬영 시작 후의 첫 번째 난관이었다. 깊은 밤 갑자기 쏟아지는 빗줄기와 거센 바닷바람, 고막을 찢을 듯한 천둥소리, 그리고 번뜩이는 번개가 까맣게 물든 삼림을 찢을 듯이 번쩍이고 있었다.
  • 미친 듯이 불어대는 바람에 두 사람이 팔뚝으로 둘러쌀 정도로 거대한 나무도 그 폭풍을 견디지 못하고 뿌리까지 뽑힐 기세로 이리저리 흔들렸다. 캠프는 나무가 적은 공터에 있었지만, 번개가 나무 위로 내리 꽂히자 큰 나무는 투둑 하는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몇 번을 휘청이다 캠프 쪽을 향해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때 유아린은 막 두 청년을 한 쪽으로 끌어다 놓은 상태였다. 이제 곧 나무가 쓰러질 기미가 보이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남자아이를 품 안에 감쌌다.
  • 쿵. 소리가 들리고 유아린은 남자아이를 꼭 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것보다 더욱더 단단한 가슴이 그녀를 품 안에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