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적지 군사보호 구역까지 길 안내를 시작합니다. 녹숲대로 방면 오른쪽 차선을 유지하세요. ”
내비게이션에서는 무뚝뚝한 여성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유아린은 차에 시동을 걸어 지하주차장을 벗어난 후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 네, 할아버지. 오랜만이네요... ”
빨간 입술이 음험한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유아린은 안부를 물었다.
“ 제가 보러 갈까요? ”
최시혁. 두고 보자.
......
군사보호 구역은 시내 중심가 쪽의 노른자 땅에 있었다. 사합원 구조의 건물의 바깥벽은 새로 페인트칠을 했고 안쪽 구조는 여전히 옛적의 모습처럼 깔끔하고 고상했다.
화라락.
마작 소리가 시원스레 들려왔고 담배 연기 가득한 곳에 노인들이 둘러싸여 있었다. 그중 정중앙에 앉은 노인은 새하얀 백발에 입에 담배를 물고 가늘게 눈을 뜨고 테이블 위의 패를 보고 있었다.
유아린은 곁눈질로 옆에 앉아있는 최시혁의 할아버지를 보고서는 마치 짠 듯이 패를 냈다.
“ 발 패. ”
“ 깡쯔! ”
최시혁의 할아버지는 기분이 무척이나 좋은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패를 집어 들었다.
“ 쯔모 화료. ”
그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패를 밀었다. 무척 기뻤는지 두 눈은 얇게 휘어져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고개를 저으며 주머니 안에서 돈을 꺼냈다.
“ 고맙네! ”
차시혁의 할아버지는 신난 얼굴로 그 돈들을 자신의 작은 케이스 안에 넣으며 옆에 앉아있던 유아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 우리 손주며느리가 여기엔 웬일이냐? ”
“ 오랫동안 안 했더니 손이 근질근질해서요. ”
유아린 역시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할아버지의 케이스 안에 넣었고 할아버지는 케이스를 슬쩍 들어보더니 만족스러운 듯한 미소를 지었다.
“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우리 손주며느리가 와서 말이야. 자네들끼리 놀고 있어. ”
최시혁의 할아버지는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고는 지팡이를 짚으며 유아린을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최씨 집안은 자손 3대 모두 권력자였다. 차시혁의 할아버지에서부터 차시혁까지, 모두 상교가 아니면 장군이었다. 아직 서른도 채 되지 않은 최시혁까지 상교이니.
최시혁의 아버지는 일 때문에 자주 출장을 다니셨고 집에는 최시혁의 어머니와 최민주만 있었다. 그리고 여든 넘은 최시혁의 할아버지는 매일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마작을 하거나 기르는 새를 돌보거나 하면서 말이다.
“ 오랫동안 안 와놓고 오늘 어쩌다 온 건데 왜 시혁이랑 같이 오지 않았느냐? ”
최시혁의 할아버지는 새들에게 먹이를 주며 물었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유아린은 작게 혀를 찼다. 혹시 둘이 이혼한 걸 알기라도 하는 날에 최시혁의 할아버지는 아마 당장이라도 최시혁을 찾아가 그를 혼쭐을 낼 게 분명했다.
“ 그 사람은 일하느라 바빠서요. ”
유아린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 할아버지. 저 사실은 할아버지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어요. 시혁씨는 항상 바쁘고 저랑 만날 시간도 없고요. 사실 저도 그 사람 보고 싶은데. ”
유아린은 말을 잘했다. 최씨 집안 전체를 아울러, 최시혁의 아버지도 포함해서 최시혁의 할아버지는 유아린을 가장 좋아했다. 듣기 좋은 말만 골라 하고 눈치도 빠른 유아린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 이 망할 자식이. 이제 급 좀 올랐다고 집안일은 내팽개치고! ”
할아버지는 손에 들고 있던 먹이 그릇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누가 봐도 유아린의 편을 들어주고 있었다.
“ 내가 전화해서 혼쭐을 내주마. ”
“ 그러지 마세요, 할아버지. ”
유아린은 기분이 무척 좋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현모양처 흉내를 내며 말했다.
“ 제가 지금 좋은 기회를 잡았거든요. 결혼하고 나서 계속 엔터테인먼트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요즘 저희가 라이브로 생중계되는, 야외에서 생존하는 리얼리티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기획했는데 제가 총책임자거든요. 아무래도 시혁씨가 이런 방면으로는 가장 경험이 풍부하다 보니까 출현시키고 싶은데. 할아버지께서 그이 좀 설득해주셨으면 해서요. ”
“ 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네. ”
유아린의 말에 최시혁의 할아버지는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 네 마음은 알겠다만 시혁이처럼 고집이 센 아이는 드물어, 아마 설득하기 어려울 거야. ”
“ 할아버지. ”
유아린은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 생각해보세요. 시혁씨는 얼굴도 잘생겼지, 유명한 데다 경험도 풍부하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징병 모집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게다가 저희 3년 동안 같이 있은 시간보다 떨어져 있은 시간이 더 오랜데, 제 사심도 살짝 있고요. ”
유아린은 쑥스러운 척을 해 보이며 몸을 배배 꼬았다.
“ 그리고 다들 애가 있으면 마음도 다잡는다고 하잖아요. ”
티 나는 그녀의 말에 할아버지는 최씨 집안의 핏줄이 이어질 것을 생각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맞는 말이다. 그렇게 하마. ”
“ 그런데... 혹시 시혁씨가 동의하지 않으면 어쩌죠? ”
유아린은 걱정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자. 할아버지는 코웃음을 치며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