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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전 남편

  • 그녀의 폭탄 같은 한 마디가 그 자리에서 터졌다.
  • 화가 난 최민주의 엄마는 낯빛이 검게 변했고 유아연은 멍한 표정에, 옆에서 울며불며 난리를 치던 최민주 역시 울음을 그치고는 콧물을 쓱 닦으며 놀란 얼굴로 물었다.
  • “ 뭐... 뭐라고? ”
  • “ 그러니까. ”
  • 유아연은 상쾌한 표정으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 “ 나랑 최시혁씨랑 이혼했다고. ”
  • “ 미쳤어! 미쳤구나! ”
  • 최민주의 엄마는 화가 나 씩씩거리면서 전화를 꺼내 들려 했다.
  • “ 우리 시혁이 말을 들어봐야겠다. ”
  • “ 어머니! ”
  • 얼어붙을 듯이 차가운 목소리가 문가에서 들려오자 최민주의 엄마는 멈칫했다. 모두 고개를 돌려 문가에 꼿꼿이 서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최시혁이 걸어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책상 위에 올려놓자 유아린은 신이 났다.
  • 최시혁 일 처리하는 속도는 진짜 칭찬해. 이렇게 빨리 신청됐다고?
  • “ 시... 시혁아, 이 여자가 지금 너랑 이혼했다고 하던데. ”
  • 최민주의 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유아린을 짚으며 말했다. 유아린은 오히려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한 태연한 얼굴이었다. 최시혁의 미간이 좁혀졌다. 차가운 얼굴로 유아린을 쳐다본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 네. 이게 이혼 수속 서류고요. ”
  • 최민주는 책상 위의 서류를 한번 보고 또 담담한 표정의 유아린을 한번 보더니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 “ 오빠, 왜 이제 왔어. 저 여자가 나 때렸단 말이야! 엄마한테도 막 대들고! ”
  • 최민주는 최시혁에게 쪼르르 달려가서는 그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울면서 고자질을 했다.
  • “ 이혼해서 다행이야. 완전 경우 없는 사람이잖아. ”
  • 최시혁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굳게 다문 입매에 결벽증으로 인한 혐오가 드러났고 최시혁은 자신의 팔을 빼내며 말했다.
  • “ 저 사람이 왜 널 때린 건데? ”
  • “ 어? ”
  • 최민주는 울음을 뚝 그치고는 훌쩍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 “ 내, 내가... ”
  • “ 나한테 디저트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는데 내가 안 사 왔거든. ”
  • 유아린이 미소 띤 얼굴로 대신 말했다.
  • “ 나도 생각해주느라 그런 건데. 지금 얼마나 뚱뚱한지 봐. ”
  • 유아린은 의미심장한 눈길로 최민주를 가리켰다. 사실 그건 비꼬느라 그런 거지 최민주는 통통한 편이었다. 그녀는 최시혁이 집안의 사소한 일들에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었지만 적어도 인성은 나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 역시나, 최시혁은 진지한 표정에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 “ 넌 손이 없어, 발이 없어? ”
  • “ 난, 난 그냥 대신 사달라고 한 것뿐이라고! ”
  • 최민주는 제 생각대로 안 됐는지 억울한 표정으로 변명을 했다.
  • “ 그, 그리고 나를 계단으로 밀어서 굴러떨어지게 했단 말이야, 내 얼굴 좀 봐... ”
  • “ 그건 네가 먼저 내 캐리어를 차 버려서 그런 거고. ”
  • 유아린은 그녀의 말 허리를 끊으며 조소 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 “ 나는 도와주려고 그런 거지. 여자면서 어떻게 허구한 날 주먹질에 발길질인지, 부끄럽지도 않아? ”
  • “ 너...! ”
  • 최민주는 변명할 여지가 없었기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최시혁이 아무런 반응도 없이 가만히 서 있는 모습에 최민주는 엄마한테 가서 울분을 토해냈다.
  • “ 엄마, 다들 나만 괴롭혀! ”
  • “ 최시혁, 네 와이프 진짜 버르장머리도 없지. ”
  • 최민주의 엄마는 자신의 딸을 감싸기 급급한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 “ 어른들을 공경하는 법도 모르고, 그리고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저렇게 화려하게 꾸미고 다닌대? 유부녀란 자각은 있기나 한 건지. ”
  • 화려하다고? 이게?
  • 유아린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일부러 비꼬는 어조로 말했다.
  • “ 네네네, 이제 저랑 최시혁씨도 아무 사이 아니니까 앞으로 며느리 찾으실 거면 중동 쪽에서 찾으세요. ”
  • 유아린은 자신의 팔을 짚으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 거기서는 팔을 드러내는 것도 죄악이라니까요. ”
  • “ 저것 좀 봐! ”
  • 최민주의 엄마는 얼마나 화가 난 건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질책했다.
  • “ 저게 네가 데려온 네 아내야. 저 오만방자한 것 좀 봐! ”
  • “ 이젠 아니에요. ”
  • 최시혁은 유아린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잠시 그녀에게 멈췄다. 항상 묶고 다니던 머리는 풀어헤쳐 있었다. 큰 웨이브가 들어간 옅은 갈색의 부드러운 머릿결이 등 뒤로 흘러내렸고 흰 피부와 상반되는 새빨간 원피스는 그녀의 길게 뻗은 두 다리를 더 돋보이게 했다. 최시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유아린은 오늘 화장 외에도 평소와 달리 무언갈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그때 당시 유아린과 결혼할 때에는 결혼식도 없이 결혼 증명 하나로 끝마쳤다. 그녀의 첫 경험을 가져갔으니 책임지겠다는 마음과 자신의 다른 바람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박하은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미련 없이 그 먼 곳으로 훈련을 떠났었고 2달 전에 금방 돌아왔었다. 결혼해서부터 지금까지 최시혁은 한 번도 그녀를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 “ 맞는 말이죠. 이젠 아니에요. ”
  • 유아린은 그의 말에 맞장구를 치면서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 “ 그럼 올라가서 짐 정리마저 하고 바로 떠날게요! ”
  • 유아린은 신난 얼굴로 계단을 올라갔고 그와 반대로 최시혁은 어두운 낯빛으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 자신의 뒤편에서 계속 뭐라 떠들어대는 어머니와 동생을 두고.
  • 왜 나랑 이혼하는데 저렇게 기뻐하는 거지? 왜 나는 기분이 나쁜 거고?
  • 최시혁이 방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유아린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바닥에 떨어진 옷가지들을 줍고 있었다. 옷장은 누가 들쑤셔 놓기라도 한 듯 엉망이었고 바닥도 아수라장이었다. 그러나 유아린은 그것들을 정리하면서도 무척이나 기쁜 얼굴이었다.
  • “ 잠깐. ”
  • 최시혁의 얼굴은 서리가 내려앉은 듯 차가웠다.
  • 응?
  • 유아린은 몸을 돌려 화려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뭐 할 말이라도 있어, 전남편? ”
  • 전 남편이라니? 이혼 서류에 사인한 지 두 시간도 안 됐는데?
  • 최시혁의 눈동자에 짜증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 “ 그렇게 신나? ”
  • 유아린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 “ 그럼 넌 안 기뻐? ”
  • 최시혁은 잠깐 멈칫했다.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감정을 차가운 표정 아래로 숨기며 낮은 목소리로 화제를 돌렸다.
  • “ 그 치마 입는 거 본 적이 없는데. ”
  • “ 예쁘지? ”
  • 유아린은 몸을 돌려 회전하면서 화려하게 피어난 꽃망울처럼 활짝 웃으며 비꼬듯 말했다.
  • “ 앞으로 못 보게 돼서 아쉽겠네. 지금 많이 봐 두지 그래? ”
  • 최시혁은 주먹을 꽉 쥐면서 어두운 얼굴로 짓씹듯 말을 내뱉었다.
  • “ 다른 거 입어. ”
  • "내가 왜!"
  • 유아린은 기분이 나쁜 듯 불만을 토했다.
  • “ 너랑 결혼하고 나서는 발목까지 오는 치마들만 입었단 말이야. 그게 여자가 입는 거냐고? 여름에는 등도 내놓고 다니지 말라고 하고. 이혼한 마당에 뭔 상관이야? ”
  • 최시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 등까지 내놓고 다니면 다른 데는?
  • “ 안 된다면 안 되는 거야. ”
  • 최시혁이 진지한 얼굴로 명령했다.
  • “ 당장 갈아입어. ”
  •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강경한 태도였다. 유아린은 이를 꽉 깨물며 몰래 이를 갈면서 내뱉을 뻔한 욕을 다시 삼키고는 억지로 웃어 보였다.
  • “ 그래... 알겠어. ”
  • 진짜 짜증 나!
  • 유아린은 옷장 안에서 회색빛의 긴 원피스를 꺼내 들고는 불만 어린 표정으로 그것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 “ 이거면 되지? ”
  • 최시혁은 차갑게 훑어봤을 뿐 말이 없었다.
  • “ 대답 안 하면 그냥 이걸로 한다. ”
  • 유아린은 우물쭈물하면서 치마의 지퍼를 내렸다. 혹시라도 이혼 안 한다고 할까 봐 무서워 그런 게 아니면 그의 얼굴에 대고 욕을 내뱉었을 그녀였다.
  •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저러는 거지?
  • 유아린은 불만을 삼키면서 옷을 벗으려 했다. 고개를 돌려 봤을 때 최시혁은 나가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 뭘 봐? ”
  • 유아린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 “ 나 옷 갈아입는 거 보고 있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