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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사양하지 않고 기꺼이 받겠다

  • 유아린은 용모가 수려하고 생기가 넘치는 각양각색의 사람을 보았음에도, 눈앞의 사람의 풍격이 남다르다는 걸 바로 느꼈다. 군부대에서 자란 최시혁의 강한 이미지와는 달리 부드럽고 깔끔한 풍격이 더해진 것 같다. 신분이 범상치 않은 인물이든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 “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유아린입니다. ”
  • 송재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 “ 정말 고마웠어요. 당신이 아니였었면 우주가 어디서 굶어 있고 추위에 벌벌 떨고 있을지도 몰랐을 텐데... ”
  • 상대가 어린 남자아이의 가족임을 확인한 유아린은 마침내 마음의 큰 짐을 내려놓았다.
  • 강인과 강호가 돌아와서 자신을 찾지 못하면 또 걱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는 서둘러 일어섰다.
  • “ 의사가 있으니 걱정 없이 일어나 보겠습니다. 동료가 기다리고 있어서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
  • 송재하는 어리둥절해 나면서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이 여인이 일어서려고 하는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그녀에 대해 탄복했다.
  • “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찍고 있으니 물품이 많이 부족하시죠? 방금 로 의사가 저에게 말해 주었어요. 사전에 우주의 상처까지 청소해 주셨다고, 도와주신 보답으로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데요. ”
  • 유아린은 손을 들어 거절하려 했지만, 감독과 강강커플의 바닥이 난 체력을 생각해보니 설레기도 했다.
  • 어린 남자아이를 구한 것은 팀이 함께 결정한 것이라고 하지만 자신을 따라서 억울함과 고난을 겪게 만들어서 조금은 미안한 마음에 유아린은 몸을 돌려 송재하를 향해 감격의 미소를 지었다.
  • “ 그렇다면 사양하지 않고 기꺼이 받겠습니다. ”
  • 밖에 있던 감독이 이분들이 바로 어린 남자아이의 가족이라는 소식을 듣자마자 생선 비린내를 맡은 고양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흥분해 했다.
  • 대본도 이렇게 쓸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일단 인터넷에 올려놓으면 더 많은 관객들의 관심을 끌수록 있는건 사실이었다.
  • 오랫동안 야외에서 바람을 쐬고 햇볕을 쫓던 두 아이는 마치 처음으로 세상을 구경하곤 갓난아이처럼 무엇을 봐도 새롭게 느껴졌다.
  • 송재하가 다가와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저녁 준비를 마쳤으니 일단 식사부터 하실까요? ”
  • 일행이 식탁에 오르자, 말로 표현할수록 없을 정도의 설레고 긴장한 감정이 맴돌았다.
  • 테이블 위에는 꿈에서나 나올법한 별의별 요리들이 나란히 차려져 있었고 유아린은 침을 삼키는 그들의 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지으며 웃었다.
  • 그녀는 손을 들어 이들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카메라를 가르켰다.
  • “ 귀요미들, 아이돌 체면을 좀 차려줄래? 지금 생방송이거든. ”
  • 한참 허겁지겁 휩쓴 끝에 모든 사람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강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의자에 기대어 배를 움켜쥐고 입꼬리는 이미 귀에 걸려 있었다.
  • “ 역시 누나를 따라다녀야 고기 먹을 일이 생기네요. 옛사람들의 말이 틀린 적이 없어요. ”
  • “ 누나, 봐봐요. 시청자들이 칭찬해 주고 있어요. 역시 착한 사람에겐 좋은 보답이 있을 거라고요. ”
  • 강호가 웃으며 유아린은 끌어당겨 스크린의 댓글을 보게 했다. 하지만 유아린은 여태껏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아 했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을 했다. 시청자의 여론은 통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었다. 1초 전 까지만 해도 그녀에게 욕설을 퍼붓다가 지금은 또 자신을 꽃처럼 치켜세우고는 그들의 행동에 전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 “ 유아린 언니는 정말 예쁘고 마음도 착하네요. 언니가 아니었다면 남자아이가 위험했겠어요. ”
  • “ 맞아요. 오늘부터 유아린 언니의 골수팬이 되겠어요. ”
  • “ 콜록, 2년 된 팬이 보도합니다. 우리 유아린 여신님은 얼굴도 예쁘고 글재주도 좋으니 여신님의 작품에 주목해주세요. ”
  • “ 저만 저녁을 대접해주신 오라버니가 멋져 보이는가요? ”
  • “ 이에 비해 그 무슨 하은이라는 사람은 정말로 독하네요.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을 버려도 되는 겁니까? ”
  • “ 정말 그녀의 말을 들어서 남자아이의 목숨이라도 잃었더라면 배상할 것인가? ”
  • “ 점잖게 생겼는데, 알고 보니 팜므파탈에 불과했어. 속이 메스껍다. ”
  • ......
  • 박하은은 화면에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댓글들은 보고 자신도 모르게 양손을 움켜쥐고 눈살을 찌푸렸다. 좋은 것은 모두 유아린에게, 악플과 더러운 욕설은 전부 자신을 향해 쏟아졌다.
  • “ 하은아, 왜 그래? ”
  • 최시혁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녀는 1초 내에 바로 부드러운 웃음으로 바뀌었다.
  • “ 아, 남자아이가 구조되었다는 평을 보고, 정말 잘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
  • 기뻐했다고 보다는 고집이 센 그녀의 가녀린 몸이 더 많이 생각났다.
  • 그렇다면 그녀도 안전하다는 말이겠지?
  • 이 갑작스러운 우연의 일치 때문에 감독은 임시로 두 팀을 합류 시켜 해피엔딩으로 1회 생존 촬영을 마쳤다.
  • “ 건배!! ”
  • 힘겹고 고통스러운 야외 생존 촬영은 오늘로 끝을 맺었고, 촬영장만 승리호텔에서 회식 자리를 마련하여 환영회를 열어주었다.
  • “ 하하, 강호 봐봐, 전보다 많이 까무잡잡해졌어. 앞으로는 검정 강이라고 불러야겠다. ”
  • 강인은 전, 후 대조 사진을 강호에게 보여주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 됐어. 걔가 검정강이면 넌 얼룩말이야,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잖아. ”
  • 유아린은 눈앞의 새까맣게 탄 두 소년을 보면서 기분이 갑자기 좋아졌다.
  • 이번에 급하게 결정해서 방송 출연을 하게 되면서 가장 큰 수확이 바로 이 두 보물을 알게 된 것이다.
  • “ 찰칵. ”
  • 대문짝에서 소리가 나자, 사람들이 시선을 돌려 그쪽으로 향했다. 이때 최시혁과 박하은이 동반하여 나타났다.
  • 비록 간단한 축하연에 지나지 않았지만 최시혁의 뼛 속까지 엄숙하고 단정하게 분위기에 맞는 옷차림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마치 군인의 가장 좋은 본보기가 된 듯 마냥. 박하은은 흰색의 드레스에 긴 생머리를 하고는 그의 옆에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차분한 분위기를 한층 더 자아냈다.
  • 두 사람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은 마치 커플과도 같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오늘 모두 흰색 계열을 입었기 때문이다. 옷이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일부러 맞춰 입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 “ 둘만 기다렸어. 어서 와! ”
  • 박하은과 최시혁은 비록 말이 없었지만, 둘이 썸 타는 사이라는 건 이번 야외 생존에서 하나의 홍보 포인트 효과뿐만 아니라 팀 내에서도 인정하는 커플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의 자리는 붙어 있었다.
  • 유아린은 고개를 달자마자 박하은의 음흉한 시선과 마주쳐 어이가 없어 했다.
  • 겉으로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얼굴로 착하고 순진한 척 혼자 다 하면서 사실은 여우 같은 여자라는 것을 유아린은 직감으로 느껴졌다.
  • 하지만 이 전형적인 직설남 최시혁과 박하은이라는 불여우의 조합이라. 생각만 해도 이 보기드문 조합은 충분히 그녀를 웃기게 했다.
  • 놀던 것도 그냥 노는 것에 불과하고, 어쨌든 간에 난 이제 자유의 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