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12화 인터넷 평론 소동

  • 리얼리티 생방송 출연이 처음이라 문제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배후에서나 볼 수 있었던 문제들이 갑자기 자신의 눈앞에 펼쳐져서 당황스럽기만 했다. 사람 목숨을 구하는 문제에서 사람들의 의견이 당연히 일치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어떤 사람들의 생각이 사람을 많이 놀라게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 “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우리가 이 아이에게 더 많은 정력을 쏟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
  • 박하은이 무대에 서서 바이올린을 치는 기세로, 한 손으로 허리를 짚고 서서 '강연'을 하려 하자 가볍고 강한 목소리가 텐트 안 구석구석에 흩어졌다.
  • “ 모두의 자원이 한정돼 있는데 지금처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우리가 다음 목적지까지 가야 하는 상황에 이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것은 다른 분의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더군다나 유아린씨가 방금 아이를 구했으니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많이 한 셈이 아닌가요? 차라리 카메라 감독님 한 명에게 아이를 맡기고 구조대를 기다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나머지 모든 분은 다시 출발하여 촬영을 준비합시다. ”
  • 이 말을 들은 유아린은 얼굴이 순식간에 망가져서 다리의 상처를 무릅쓰고 일어나 똑같이 허리를 쫙 펴고 말했다.
  • “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지금 아이를 버리고 떠나자는 말이에요? ”
  • 박하은은 말문이 막혔다는 듯이 말했다.
  • “ 그런 뜻이 아닌데요, 아린 씨가 그렇게 이해해도 어쩔 수 없어요. 전 현재 우리든 아이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말했을 뿐이에요. ”
  • “ 그럼 아이가 안전하다고 생각해요? 구조대가 이틀 뒤에 도착하는데 아무런 야외 생존지식을 모르는 카메라 감독님과 함께 바람도 불고 비도 오고 번개도 치는 이런 곳에서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안전하겠어요? ”
  • 유아린은 의심하는 말투로 물었다.
  • 그러자 강인이 일어서서 말했다.
  • “ 하은 씨 말대로 해요. 원래 우리 팀의 물자가 많지 않은데 아이들을 구하느라 또 그렇게 많이 썼고... 이렇게 끌고 가는 건 정말 방법이 아니라고 봐요. ”
  • 강호도 일어서서 박하은의 말에 찬성하면서 말했다.
  • “ 맞아요, 스태프 몇 명 더 이곳에 머무르게 하고 더는 이변이 없을 것 같아요. ”
  • 유아린은 분노했다. 이 사람들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람 목숨으로 장난을 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아이를 구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온통 촬영 생각뿐이니.
  • 마음속의 노여움을 억누르고 눈가에 엷은 안개로 물든 뒤 이를 악물며 말했다.
  • “ 그래, 너희가 데리고 가기 싫으면 내가 데리고 갈게. ”
  • 박하은이 관심을 보이면서 말했다.
  • “ 유아린 씨, 무리하지 마세요. ”
  • 유아린은 아무 말 없이 텐트 밖으로 나와 자신의 물건을 집어 들고 방 안에 있는 사람과 카메라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 텐트 안은 몇 초 동안 침묵에 잠겨 있었고, 모두 서로 보면서 말문이 막혀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 그러던 중 전혀 말이 없던 최시혁이 입을 열었다.
  • “ 다음 보급소에 도착할 때까지 두 팀이 물자를 공유할 것을 제안합니다. ”
  • 강강조합은 눈이 휘둥그레졌고 스태프들도 서로 쳐다봤다.
  • 박하은이 첫 번째로 반응해서 말을 했다.
  • “ 하지만, 혁아, 규칙은 함부로 고칠 수 없잖아. ”
  • 최시혁은 턱을 만지작거렸더니 눈빛이 어두워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 “ 감독님, 룰에 물자공유가 금지돼 있나요? ”
  • 최시혁은 감독에게 물었다.
  • “ 괜찮아요. 서로 돕는 것도 우리 프로그램이 홍보해야 할 정신이니 생각대로 해요. ”
  • 감독은 잠시 고민하더니 답했다.
  • 박하은이 무언가를 계속 말하려 했으나 흥분한 강호의 말에 끊겼다.
  • “ 시혁형, 너무 좋아요, 정말 고마워요! ”
  • 최시혁은 예의 있게 대답했다.
  • “ 별거 아니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모두 잠시 휴식하고 다시 출발 준비합시다. 저 먼저 나가볼게요. ”
  • 말이 끝나자 큰 걸음으로 텐트 밖을 나갔다.
  • “ 감독님, 생방송 프로그램 내용이 바뀌면 시청자의 여론 통제가 안 되는 것 아세요? ”
  • 박하은은 두, 세 걸음 걸어서 감독 앞에 다가가 서슴없이 말했다. 그러더니 생방송 중인 컴퓨터 모니터를 힐끗 보더니 아주 기뻐했다. 시청자까지 자신을 도와줄 줄이야.
  • 강인과 강호는 박하은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텐트를 뛰쳐나와 짐을 싸고 있는 유아린에게로 향했다.
  • 강호가 다급하게 말했다.
  • “ 누나, 좋은 소식 하나 알려줄게요. 시혁이형이 우리 팀과 물자를 공유하기로 했어요! 우리 이제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어요! ”
  • 유아린은 정리중이던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의아한 말투로 물었다.
  • “ 박하은 씨는 뭐라고 했어? ”
  • 강인은 잠깐 회상을 하면서 답했다.
  • “ 하은 씨는 별로 달갑지 않은 것 같았어요. 방금 우리가 나왔을 때 아직 감독님과 뭘 상의 중인 것 같던데요.... ”
  • 이 여자가 이렇게 호의적인 사람이 아닐 줄 알았어, 한 아이의 생명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팀 사람들이 물자가 없는 게 불쌍하다고 생각을 해.
  • 유아린은 아무렇지 않게 계속 짐을 정리하며 조금은 하찮은 말투로 말했다.
  • “ 조금 있다가 우리가 먼저 출발하자. 노선은 이미 계획해 놓았으니 다음 보급점을 찾으러 가면 돼. ”
  • 강호가 물었다.
  • “ 시혁이형 팀 안 기다려요? 나중에 그 팀과 협력해야 되는데요. ”
  • 유아린이 답했다.
  • “ 기다리지 않고 나 혼자 애를 데리고 갈 거야. 고개 숙이고 그 팀 찾아가면 관객들이 무시할 거야. ”
  • 강호는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 “ 하지만 우리 물품이 부족하면 어떡해요... ”
  • 유아린이 고개를 들자 살구 같은 눈에는 자신감과 결연한 눈빛으로 가득했다.
  • “ 물의 위치를 이미 추산해냈으니 나를 믿고 따라와. 별일 없을 것이야. ”
  • “ 그런데.... ”
  • “ 그만하고. 이제 같은 팀이니 시청자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으면 내 말을 들어. ”
  • 마지막으로 강호는 중대한 결심을 내린 듯 말했다.
  • “ 그래요, 믿을게요. ”
  • 세 사람은 장비를 치운 뒤, 강인은 안색이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의식을 잃은 아이를 업고 감독에게 갔다.
  • “ 감독님, 저희 먼저 출발하려고 합니다. ”
  • 감독은 잠시 고민 끝에 그들의 선택에 존중하기로 정했다.
  • “ 벌써 가려고요? 최시혁, 하은 팀 안 기다릴 겁니까? ”
  • 강인이 대답했다.
  • “ 일단 물이 있는 곳을 찾아간 뒤 다시 합류하겠습니다. ”
  • 감독은 잠시 생각을 한 뒤, 그들의 선택을 존중했다.
  • “ 알아서 정하세요. 안전에 조심하시고. 다만... 떠나기 전에 유아린씨, 알아야 할 일이 있어요. ”
  • 유아린은 의문에 찬 말투로 물었다.
  • “ 무슨 일인데요? ”
  • 감독은 생방송 컴퓨터 모니터를 가리키며 그녀에게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 유아린은 스크린 앞으로 다가와 허리를 숙인 채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생방송 화면을 바라봤다.
  • 화면에는 방금 많은 사람이 아이들의 거취 문제를 토론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고, 유아린과 박하은이 허리에 손을 꽂고 서로 자신의 이유를 서술하던 중, 관객들의 댓글이 휙휙 지나갔다.
  • 유아린의 손가락이 잠시 멈추자 화면이 그녀가 말을 마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순간, 화면에 가득 올라온 관객들의 가지각색의 댓글이 눈에 띄었다.
  • “ 유아린, 왜 억지를 부려. 스태프에게 아이를 맡겨 돌보면 되잖아! ”
  • “ 하은의 말이 맞는 것 같아. ”
  • “ 물자가 없는데 사람을 구하려 하다니 체면 때문에 사람이 죽게 생겼어. ”
  • “ 유아린, 뜨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나? ”
  • “ 뜨려고 아이를 구하다니, 인간성이 없어. ”
  • ......
  • 하나같이 유아린의 잘난 척을 비판하고 하은의 이성을 찬성하는 평가였다. 격한 말투와 다양한 표현, 유아린에 대한 욕설을 그대로 쏟아내는 시청자도 있다.
  • 유아린은 눈썹을 살짝 치켜들었다. 알고 보니 리얼리티 쇼에서도 이런 문제가 나올 수가. 이 사람들은 모두 아이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현장 녹화 상황도 모르고, 진실을 전혀 모르는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이 하늘을 찌를 듯 별 물자가 다 있는 줄 아나보다.
  • 인터넷 욕설을 듣는 게 좀 심드렁 했지만 유아린은 알 수 없는 키보드맨들에게 화풀이하지 않기로 했다.
  • 그녀는 천천히 몸을 추스르며 한숨을 쉬었다.
  • 강인에게 다가가 곱슬곱슬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눈빛과 지금의 처지에 어떻게 할 수가 없어 힘이 풀린 말투로 말했다.
  • “ 가자, 물 찾으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