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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그녀는 어른을 공경하지만 아이는 사랑하지 않는다

  • 이혼 합의서를 손에 든 유아린은 날듯이 기뻤다. 기분이 무척 좋았던 그녀는 폴짝폴짝 뛰면서 손 키스를 날리며 아주 빠른 발걸음으로 군사 구역에서 빠져나왔다.
  • 3년이었다. 3년 동안 기다린 끝에 결국 자유를 되찾은 그녀였다.
  • 유아린은 길가에서 택시를 잡으려 했다. 공기마저 전에 없이 상쾌한 기분, 이게 바로 자유를 만끽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향기인 건가! 하지만 유아린은 그 기분을 얼마 만끽하지도 못하고 큰 장갑차가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가는 바람에 치마가 바람에 나부끼고 입안으로 먼지가 가득 들어가 연신 기침을 해댔다.
  • “ 최시혁! 우리 아직 이혼 증명서 안 뗐잖아! ”
  • 유아린은 화 난 얼굴로 먼지를 가득 일으키고 지나가는 차를 향해 주먹을 들어 보였다. 지금의 그들처럼 이혼하는 것에 이토록 기뻐하는 이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오늘 꼭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박하은은 최시혁의 제일 큰 약점이었으니 단숨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유아린의 기분을 어지럽힐 수 없었다.
  • 최시혁의 집에 도착한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 누군가 방문을 뻥 차고 들어왔고 유아린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 “ 유아린! ”
  • 거만하고 횡포한 목소리는 20대 초반의 소녀의 것이라 보기엔 어려웠다. 최민주는 허리에 손을 올려놓고 기세등등하게 문 앞에서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 “ 내 디저트는? ”
  • 디저트?
  • “ 무슨 디저트? ”
  • 이제 자유를 되찾은 유아린은 더는 덜떨어진 시누이의 성질머리를 받아주지 않아도 되었다. 유아린은 고개도 들지 않고 자신의 옷을 개며 말했다.
  • “ 먹고 싶으면 알아서 사 먹어. 줄 서서 기다리는 거 시간 안 드는 줄 알아? ”
  • “ 너! ”
  • 최민주의 인형 같은 얼굴은 화를 낼 때는 멍청해 보였다. 그녀는 유아린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방으로 들어와서는 그녀의 캐리어를 발로 차 던지며 거만하게 말했다.
  • “ 감히 나한테 그런 식으로 얘기해? ”
  • 깨끗하게 정리정돈 되어있던 옷들이 흐트러지자 유아린의 좋았던 기분은 바늘에 찔린 풍선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 “ 금방 개어놓은 거야. 나 결벽증 있는 거 몰라? ”
  • 유아린은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 “ 그게 나랑 뭔 상관인데? ”
  • 최민주는 여전히 사리 분별하지 않고 소리를 내질렀다.
  • 우리 최씨 집안에 기어들어 온 주제에 감히 나한테 대들어?
  • “ 뭘 하러 갔길래 내 디저트도 안 사 온 거야? ”
  • 유아린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최씨 집안에는 최시혁의 할아버지와 최우석을 제외하고는 정상인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최민주는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였다.
  • 갓 스물을 넘긴 나이에 학교도 가지 않고 일도 하지 않고 매일 여기저기 다니면서 부모님 등골이나 빼먹는데도 그녀의 엄마는 그런 그녀를 애지중지했다. 그 바람에 지금 같은 성질머리가 나온 걸 거다.
  • “ 그렇게 뚱뚱한데 디저트를 먹는다고? ”
  • 유아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 “ 그 허리 좀 봐. 정원에 있는 반얀나무랑 비슷한 것 같은데, 왜 그 나무 따라서 가지 뻗고 뿌리 내리게? ”
  • “ 너, 너 감히 날 보고 뚱뚱하다고 해? ”
  • 최민주는 화가 나 동그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그녀를 쏘아보며 말했다.
  • “ 다시 한번 말해 봐! ”
  • “ 뚱뚱하다는 게 왜? 내가 뭐 틀린 말이라도 했나? ”
  • 유아린 역시 짜증이 나서 바닥에 널브러진 옷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 “ 이거 다 똑바로 개어놔. ”
  • “ 감히 나한테 명령을 해? ”
  • 최민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치맛자락을 움켜쥐더니 캐리어 안의 물건들을 전부 털어내고는 발로 그것들을 짓밟았다.
  • “ 네가 해! 누가 그렇게 건방지게 굴래? ”
  • 최민주는 화가 나서 이리저리 날뛰고 설쳐대느라 점점 더 어두워지는 유아린의 얼굴을 발견하지 못했다.
  • 이혼하기 전에 유아린은 수도 없이 성질을 죽이며 참아냈었지만, 눈앞에서 날뛰고 있는 덜떨어진 사람을 보고 있자니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 “ 너! ”
  • 유아린은 최민주를 짚으면서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
  • “ 지금 당장 멈추고 나한테 사과해. 마지막 기회야. ”
  • 최민주는 잠깐 멈칫하더니 곧 웃음을 터뜨리며 바닥에 있던 슬리퍼를 냅다 걷어차고는 쏜살같이 계단으로 달려갔다.
  • “ 사과하라고? 꿈 깨시지! 아아아아! ”
  • 유아린은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발을 들어 최민주를 계단 아래로 차버렸다.
  • 쿵쿵쿵쿵--탁!
  • 최민주의 동그란 몸은 핑크색 원피스를 입은 완자처럼 통통 튀면서 계단에서 굴렀다. 그렇게 몇 번이나 굴러서야 자기 엄마의 발끝에 가서 멈췄다.
  • “ 악! 너 미쳤어? 흑흑흑... ”
  • 최민주는 큰 목청으로 울기 시작했고 그녀의 뒤에 서 있던 최민주의 엄마는 두 눈을 크게 뜨고서는 얼른 자신의 딸을 일으켜 세웠고 그녀의 얼굴에 난 생채기를 보았다.
  • 최민주의 엄마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 “ 유아린! 당장 내려와. 이게 뭐 하는 짓이야? ”
  • “ 민주야? 민주야, 괜찮아? ”
  • 최민주 엄마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최민주의 몸 곳곳을 살폈다. 유아린은 팔짱을 낀 채로 열심히 꾸민 티가 나는 유아연이 최민주의 몸을 구석구석 살피는 모습을 보고서는 저도 모르게 냉소를 흘렸다.
  • 그래, 잘 왔네!
  • 유아연은 유아린의 이복동생으로 나쁜 쪽으로 눈치가 엄청 빠른 이였다. 3년이란 시간 동안 최민주와 그녀의 엄마를 얼마나 구워삶았는지 오늘은 절대 쉽게 끝나지 않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유아린은 차갑게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우아한 발걸음으로 계단에서 내려왔다.
  • 두려운 건 없었다. 자유도 되찾은 마당에 찾아오는 이들은 전부 때려눕히면 그만이었다.
  • “ 진짜 미쳤구나. 지금 네 옷차림을 봐봐, 유부녀가 바람직하지 못하게 이게 뭐냐? ”
  • 최민주의 엄마는 그녀의 콧대를 짚으며 욕지거리를 해댔다.
  • “ 진짜 말도 안 되지. 우리 최씨 집안에 왜 너처럼 방탕한 여자가 며느리로 들어온 건지. 오늘은 민주까지 때려? ”
  • “ 네, 때렸어요. 앞으로 제 앞에서 설쳐대면 설쳐댄 만큼 때릴 거예요. ”
  • 유아린의 기세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 “ 사모님, 제가 미리 경고하는데 저 건드리지 마세요. 먼저 자기 딸이 어떤 짓을 했는지나 알아보고 말씀하시죠. ”
  • “ 너... 너! ”
  • 최민주의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태껏 고분고분 하라면 하라는 대로, 아무리 괴롭혀도 불평 하나 없던 며느리가 아니었다.
  • “ 이젠 아주 막 나가는구나. 어머님이라고 부르지도 않아? ”
  • 유아린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 “ 오늘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안 부를 건데요. ”
  • “ 이 낯짝 두꺼운 년! ”
  • 최민주는 화가 얼마나 난 건지 얼굴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녀가 욕을 내뱉으면서 손을 높게 들어 올렸을 때, 유아린의 낯빛이 급격히 어두워지면서 그녀는 빠른 속도로 최민주의 팔을 낚아채고는 다른 손으로 짝 소리 나게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 최민주의 뺨 위로 선명한 손바닥 자국이 나고 최민주는 얼이 빠져있다가 곧 울음을 터뜨렸다.
  • “ 언니, 미친 거야? ”
  • 유아연은 처음 보는 광경에 깜짝 놀라 얼른 태세를 전환해 불난 집에 부채질해댔다.
  • “ 뭐 하는 거야? 지금 언니는 유씨 집안에 먹칠하고 있는 거야. 세상에 언니 같은 형수가 어디 있어? ”
  • “ 이... 이런 폭력적인! ”
  • 최민주의 엄마는 얼굴이 희게 질려서 유아린의 콧대를 짚으면서 한참을 말을 하지 못했다.
  • “ 어디 나도 한번 때려봐! ”
  • “ 저는 노인은 안 때리거든요. 혹시라도 엄살이라도 부리면 어떡해요. 어른은 공경해도 아이는 사랑하지 말자는 주의라서요. ”
  • 유아린은 평온한 표정이었다. 3년 동안 이렇게 숨이 트인 적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듯한 태도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 “ 이참에 정식으로 통보하죠. 저랑 최시혁씨 이미 이혼 서류에 사인도 마쳤으니까 오늘부터 최씨 집안은 저랑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