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티 생방송 출연이 처음이라 문제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배후에서나 볼 수 있었던 문제들이 갑자기 자신의 눈앞에 펼쳐져서 당황스럽기만 했다. 사람 목숨을 구하는 문제에서 사람들의 의견이 당연히 일치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어떤 사람들의 생각이 사람을 많이 놀라게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우리가 이 아이에게 더 많은 정력을 쏟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
박하은이 무대에 서서 바이올린을 치는 기세로, 한 손으로 허리를 짚고 서서 '강연'을 하려 하자 가볍고 강한 목소리가 텐트 안 구석구석에 흩어졌다.
“ 모두의 자원이 한정돼 있는데 지금처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우리가 다음 목적지까지 가야 하는 상황에 이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것은 다른 분의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더군다나 유아린씨가 방금 아이를 구했으니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많이 한 셈이 아닌가요? 차라리 카메라 감독님 한 명에게 아이를 맡기고 구조대를 기다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나머지 모든 분은 다시 출발하여 촬영을 준비합시다. ”
이 말을 들은 유아린은 얼굴이 순식간에 망가져서 다리의 상처를 무릅쓰고 일어나 똑같이 허리를 쫙 펴고 말했다.
“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지금 아이를 버리고 떠나자는 말이에요? ”
박하은은 말문이 막혔다는 듯이 말했다.
“ 그런 뜻이 아닌데요, 아린 씨가 그렇게 이해해도 어쩔 수 없어요. 전 현재 우리든 아이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말했을 뿐이에요. ”
“ 그럼 아이가 안전하다고 생각해요? 구조대가 이틀 뒤에 도착하는데 아무런 야외 생존지식을 모르는 카메라 감독님과 함께 바람도 불고 비도 오고 번개도 치는 이런 곳에서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안전하겠어요? ”
유아린은 의심하는 말투로 물었다.
그러자 강인이 일어서서 말했다.
“ 하은 씨 말대로 해요. 원래 우리 팀의 물자가 많지 않은데 아이들을 구하느라 또 그렇게 많이 썼고... 이렇게 끌고 가는 건 정말 방법이 아니라고 봐요. ”
강호도 일어서서 박하은의 말에 찬성하면서 말했다.
“ 맞아요, 스태프 몇 명 더 이곳에 머무르게 하고 더는 이변이 없을 것 같아요. ”
유아린은 분노했다. 이 사람들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람 목숨으로 장난을 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아이를 구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온통 촬영 생각뿐이니.
마음속의 노여움을 억누르고 눈가에 엷은 안개로 물든 뒤 이를 악물며 말했다.
“ 그래, 너희가 데리고 가기 싫으면 내가 데리고 갈게. ”
박하은이 관심을 보이면서 말했다.
“ 유아린 씨, 무리하지 마세요. ”
유아린은 아무 말 없이 텐트 밖으로 나와 자신의 물건을 집어 들고 방 안에 있는 사람과 카메라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텐트 안은 몇 초 동안 침묵에 잠겨 있었고, 모두 서로 보면서 말문이 막혀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전혀 말이 없던 최시혁이 입을 열었다.
“ 다음 보급소에 도착할 때까지 두 팀이 물자를 공유할 것을 제안합니다. ”
강강조합은 눈이 휘둥그레졌고 스태프들도 서로 쳐다봤다.
박하은이 첫 번째로 반응해서 말을 했다.
“ 하지만, 혁아, 규칙은 함부로 고칠 수 없잖아. ”
최시혁은 턱을 만지작거렸더니 눈빛이 어두워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 감독님, 룰에 물자공유가 금지돼 있나요? ”
최시혁은 감독에게 물었다.
“ 괜찮아요. 서로 돕는 것도 우리 프로그램이 홍보해야 할 정신이니 생각대로 해요. ”
감독은 잠시 고민하더니 답했다.
박하은이 무언가를 계속 말하려 했으나 흥분한 강호의 말에 끊겼다.
“ 시혁형, 너무 좋아요, 정말 고마워요! ”
최시혁은 예의 있게 대답했다.
“ 별거 아니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모두 잠시 휴식하고 다시 출발 준비합시다. 저 먼저 나가볼게요. ”
말이 끝나자 큰 걸음으로 텐트 밖을 나갔다.
“ 감독님, 생방송 프로그램 내용이 바뀌면 시청자의 여론 통제가 안 되는 것 아세요? ”
박하은은 두, 세 걸음 걸어서 감독 앞에 다가가 서슴없이 말했다. 그러더니 생방송 중인 컴퓨터 모니터를 힐끗 보더니 아주 기뻐했다. 시청자까지 자신을 도와줄 줄이야.
강인과 강호는 박하은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텐트를 뛰쳐나와 짐을 싸고 있는 유아린에게로 향했다.
강호가 다급하게 말했다.
“ 누나, 좋은 소식 하나 알려줄게요. 시혁이형이 우리 팀과 물자를 공유하기로 했어요! 우리 이제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어요! ”
유아린은 정리중이던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의아한 말투로 물었다.
“ 박하은 씨는 뭐라고 했어? ”
강인은 잠깐 회상을 하면서 답했다.
“ 하은 씨는 별로 달갑지 않은 것 같았어요. 방금 우리가 나왔을 때 아직 감독님과 뭘 상의 중인 것 같던데요.... ”
이 여자가 이렇게 호의적인 사람이 아닐 줄 알았어, 한 아이의 생명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팀 사람들이 물자가 없는 게 불쌍하다고 생각을 해.
유아린은 아무렇지 않게 계속 짐을 정리하며 조금은 하찮은 말투로 말했다.
“ 조금 있다가 우리가 먼저 출발하자. 노선은 이미 계획해 놓았으니 다음 보급점을 찾으러 가면 돼. ”
강호가 물었다.
“ 시혁이형 팀 안 기다려요? 나중에 그 팀과 협력해야 되는데요. ”
유아린이 답했다.
“ 기다리지 않고 나 혼자 애를 데리고 갈 거야. 고개 숙이고 그 팀 찾아가면 관객들이 무시할 거야. ”
강호는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 하지만 우리 물품이 부족하면 어떡해요... ”
유아린이 고개를 들자 살구 같은 눈에는 자신감과 결연한 눈빛으로 가득했다.
“ 물의 위치를 이미 추산해냈으니 나를 믿고 따라와. 별일 없을 것이야. ”
“ 그런데.... ”
“ 그만하고. 이제 같은 팀이니 시청자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으면 내 말을 들어. ”
마지막으로 강호는 중대한 결심을 내린 듯 말했다.
“ 그래요, 믿을게요. ”
세 사람은 장비를 치운 뒤, 강인은 안색이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의식을 잃은 아이를 업고 감독에게 갔다.
“ 감독님, 저희 먼저 출발하려고 합니다. ”
감독은 잠시 고민 끝에 그들의 선택에 존중하기로 정했다.
“ 벌써 가려고요? 최시혁, 하은 팀 안 기다릴 겁니까? ”
강인이 대답했다.
“ 일단 물이 있는 곳을 찾아간 뒤 다시 합류하겠습니다. ”
감독은 잠시 생각을 한 뒤, 그들의 선택을 존중했다.
“ 알아서 정하세요. 안전에 조심하시고. 다만... 떠나기 전에 유아린씨, 알아야 할 일이 있어요. ”
유아린은 의문에 찬 말투로 물었다.
“ 무슨 일인데요? ”
감독은 생방송 컴퓨터 모니터를 가리키며 그녀에게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유아린은 스크린 앞으로 다가와 허리를 숙인 채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생방송 화면을 바라봤다.
화면에는 방금 많은 사람이 아이들의 거취 문제를 토론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고, 유아린과 박하은이 허리에 손을 꽂고 서로 자신의 이유를 서술하던 중, 관객들의 댓글이 휙휙 지나갔다.
유아린의 손가락이 잠시 멈추자 화면이 그녀가 말을 마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순간, 화면에 가득 올라온 관객들의 가지각색의 댓글이 눈에 띄었다.
“ 유아린, 왜 억지를 부려. 스태프에게 아이를 맡겨 돌보면 되잖아! ”
“ 하은의 말이 맞는 것 같아. ”
“ 물자가 없는데 사람을 구하려 하다니 체면 때문에 사람이 죽게 생겼어. ”
“ 유아린, 뜨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나? ”
“ 뜨려고 아이를 구하다니, 인간성이 없어. ”
......
하나같이 유아린의 잘난 척을 비판하고 하은의 이성을 찬성하는 평가였다. 격한 말투와 다양한 표현, 유아린에 대한 욕설을 그대로 쏟아내는 시청자도 있다.
유아린은 눈썹을 살짝 치켜들었다. 알고 보니 리얼리티 쇼에서도 이런 문제가 나올 수가. 이 사람들은 모두 아이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현장 녹화 상황도 모르고, 진실을 전혀 모르는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이 하늘을 찌를 듯 별 물자가 다 있는 줄 아나보다.
인터넷 욕설을 듣는 게 좀 심드렁 했지만 유아린은 알 수 없는 키보드맨들에게 화풀이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추스르며 한숨을 쉬었다.
강인에게 다가가 곱슬곱슬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눈빛과 지금의 처지에 어떻게 할 수가 없어 힘이 풀린 말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