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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초야

  • 이날 닥쳐오게 되어있었던 일은 결국에는 닥쳐오게 되어있음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에 그녀는 이미 오래전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였다. 다만 그 상대가 바뀐 것일 뿐이었다.
  • 그보다 그녀는 그가 나중에 후회할까 봐, 나중에 그녀를 원망할까 걱정되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이런 것들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게 되었다.
  • 그의 입술이 그녀의 두 볼 위에 끊임없이 내려앉았다. 그 뜨거운 입맞춤은 마치 피부 위에 불을 지피는 듯한 느낌이었다. 따라서 그녀의 체온 역시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 아팠다. 살과 살이 맞닿고 뒤엉켜 있는 느낌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아팠다.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흐르고, 입술 사이로 흐느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 “쉬이… 곧 괜찮아질 겁니다.”
  • 그는 그녀의 귓불을 입에 머금은 채 계속해서 그녀를 달랬다. 그의 목소리는 나직하면서도 섹시했다.
  • 고통과 섞여 전해져 오는 저릿한 느낌에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녀는 차라리 그의 어깨를 깨물었다. 그렇게 하면 그 이상한 느낌이 조금 덜해지기라도 하는 듯이.
  • 신지은은 다음 날 점심이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방 안은 여전히 칠흑같이 어두웠다.
  • 처음 눈을 떴을 때는 깊은 밤중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이내 이상함을 느끼고는 휴대폰을 집어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놀랍게도 낮 10시가 다 되어있었다.
  • 이에 그녀는 깜짝 놀라 황급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그녀를 감싸고 있던 이불이 흘러내리며 지난밤의 흔적으로 가득한 어깨가 드러났다.
  • 그녀는 순간 얼굴을 붉히며 얼른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감쌌다. 비록 방안에는 그녀 말고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부끄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 ‘어쩌다 이제야 일어난 거지?’
  • 이내 지난밤의 일이 떠오른 그녀는 또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지난밤 자신이 언제 잠에 들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그가 언제 끝을 냈는지는 더더욱 기억하지 못했다.
  • “깨셨네요, 사모님. 저는 김소윤이라고 해요. 앞으로 사모님을 전담해 모시게 되었어요.”
  • 옷이 없었던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어제 입었던 옷을 다시 주워 입고는 밖으로 나갔다.
  • 그리고 문을 열자, 그곳에는 동글동글한 얼굴의 여자아이가 문 앞에 서서 한껏 공손한 모습으로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오고 있었다.
  • “사모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느낌이 이상해요. 그냥 지은이라고 부르시면 돼요.”
  • 신지은은 얼굴을 붉히며 쑥스러운 듯 말했다. 그러자 김소윤은 고개를 저었다.
  • “그건 안 돼요. 사장님께서 들으면 화내실 거예요. 오 집사님도 화내실 거고요. 그보다 사모님, 입고 계신 옷이… 조금 주름져 있는데, 새 옷으로 갈아입으시는 게 좋겠어요. 아침 식사는 이미 준비되어 있느니, 옷을 갈아입고 나오시면 언제든 식사하실 수 있어요.”
  • “하지만 저는… 다른 옷이 없어요.”
  • 신지은의 말에 김소윤은 순간 놀란 듯하더니 얼른 그녀를 향해 말했다.
  • “드레스룸에 다 준비되어 있어요. 아직 들어가 보지 않으셨나 보군요?”
  • 신지은은 오른쪽이 그녀의 드레스룸이라고 강재욱이 말해주었던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녀는 들어가 보지 않았고,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역시 몰랐다.
  • 그런 그녀를 향해 김소윤이 제안했다.
  • “혹시 마음에 드시는 옷이 있을지 저랑 함께 들어가 보시겠어요?”
  • 신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김소윤은 그녀를 드레스룸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기껏해야 보통 옷장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신지은은 드레스룸 안으로 들어서고 나서야 그 방 하나만 해도 그녀가 지내던 기숙사 방보다 두 배는 더 큰 공간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 그곳에는 각양각색의 디자인으로 된 옷들은 물론, 반짝이는 보석들과 가방들, 그리고 액세서리들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 ‘이게 어떻게 드레스룸이야? 이건 아무리 봐도 사치품 진열장이잖아!’
  • 고급 브랜드의 옷들과 액세서리들은 단 하나도 차마 손을 댈 수가 없었던 신지은은 자신이 아는 브랜드의 옷을 한 벌 골라 갈아입은 뒤 얼른 김소윤을 따라 식사하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 배가 고팠던 이유 말고도 그녀는 그곳에 오래 머물러 있다가 만약에라도 무언가 없어지기라고 하면 자신이 오해받을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 “사모님, 이건 주방장이 사장님의 지시대로 준비한 겁니다. 만약 입에 안 맞으시는 게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고치도록 지시하겠습니다.”
  • 오 집사가 걸어오더니 신지은을 향해 공손하게 인사를 건넨 뒤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들을 그녀에게 소개했다.
  • “이미 충분히 좋아요. 전 가리는 거 없어요.”
  • 신지은이 말했다. 게다가 음식들을 한 번 쭉 둘러보니 대부분이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 ‘보아하니 강재욱 씨랑 나랑 입맛이 비슷한 모양이네. 앞으로 함께 지내면서 적어도 음식 취향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겠어.’
  •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천천히 식사하세요. 사장님께선 위층 서재에 계십니다. 식사가 끝나면 올라오라고 하셨습니다.”
  • “……”
  • 신지은은 잠시 머뭇거렸다.
  • “그 사람 집에 있어요?”
  • “그렇습니다.”
  • 오 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까까지만 해도 굉장히 배가 고픈 상태였던 신지은은 순간 입맛이 싹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 ‘이미 출근한 줄 알았더니, 집에 있었던 데다 나더러 찾아오라고? 날 왜 찾는 거지?’
  • 지난밤의 일이 떠오른 그녀는 저로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오늘만큼은 그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씹고 있던 음식들까지도 순간 맛없게 느껴졌다.
  • 그렇게 느릿느릿 식사를 마친 그녀는 김소윤의 안내에 따라 그의 서재 앞에 도착했다.
  • 똑똑똑-
  • “들어오세요.”
  • “찾으셨다고요?”
  • 신지은은 서재 안으로 들어선 뒤에도 그의 책상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위치에서 멈춰 선 채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발끝을 내려다보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