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끝내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 하지만 곧이어 몸을 살짝 기울여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에 신지은의 얼굴에 겁먹은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녀는 이번에야말로 정말 겁을 먹은 것이었다.
그녀의 새하얀 두 볼이 발그레하게 물들더니, 그녀가 놀란 듯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반응을 본 그는 놀랍게도 입꼬리를 말아 올려 미소 짓는 것이었다.
“뭡니까. 저랑 스킨십을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못 한 겁니까?”
“강재욱 씨, 우리… 가짜 결혼 아닌가요?”
“누가 가짜랍니까? 내가 그렇게 한가한 것 같아요?”
강재욱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그의 말투에는 약간의 불쾌함이 섞여 있었다. 그 순간 신지은은 문득 안시훈과 그 여자가 뒹굴던 모습이 떠 올랐다.
‘이 남자도 분명 자기 여자 친구를 엄청 사랑했겠지?’
그녀는 그렇기에 안시훈이 그 여자와 잤다는 것에 그가 이렇게 화가 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과 결혼을 한 것뿐만 아니라 자신과 밤을 보내야만 마음이 편해질 만큼이나 말이다.
“사실, 저랑 안시훈은… 걘 저를 딱히 좋아하지도 않아요.”
신지은은 조심스레 설명을 시작했다.
“그런 게 아니었다면 아들을 낳은 뒤에야 혼인신고를 하라던 걔네 엄마의 말을 듣지도 않았을 것이고, 우리 할머니를 결혼식에 오지 못하게 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그가 물었다. 이에 신지은은 생각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당신이 아무리 여자 친구를 빼앗은 안시훈을 증오한다고 한들 나와 밤을 보내는 것으로는 복수가 안 될 거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안시훈은 애초에 저를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도 않고, 그것 때문에 슬퍼할 일을 더더욱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녀는 이런 말들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난 씻을 테니까 이곳 환경에 적응하고 있어요.”
몸을 돌려 자신의 드레스룸으로 들어간 강재욱은 잠옷을 챙겨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에서 들려오는 쏴아아 하는 물소리에 신지은은 더더욱 긴장되었다.
도망가고 싶어도 어디로 도망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그녀더러 이곳 환경에 적응하고 있으라고 했지만, 그녀는 어떤 것에 적응해야 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봤자 침실이었고, 딱히 적응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말한 드레스룸은 딱히 적응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강재욱이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까지도 그녀는 여전히 문 앞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이에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돌려 그녀의 드레스룸으로 들어간 그는 이내 잠옷을 한 벌 챙겨 나와 그녀에게 건넸다.
“씻으세요.”
“저는…”
“얼른!”
남자의 말투는 거절 따위는 용납하지는 않겠다는 듯 단호했다. 짜증이 살짝 섞여 있는 것도 같았다.
이에 조금 겁을 먹은 신지은은 얼른 손을 뻗어 잠옷을 받아 들고는 쏜살같이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순식간에 뛰어가 버린 그녀의 모습에 순간 깜짝 놀란 듯한 반응을 보이던 남자는 이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야말로 한 마리의 겁먹은 꼬마 토끼가 따로 없군!’
그리고 그 겁먹은 꼬마 토끼가 욕실에서 느릿느릿 오랫동안 시간을 끌다 나올 것으로 생각한 그는 앉은자리에서 반쯤은 읽게 될 것을 각오하고 책 한 권을 집어 들어 천천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고작 열 페이지쯤 읽었을까, 그녀가 욕실에서 나왔다.
“강… 강재욱 씨, 전 어디에서 자요?”
꼬마 토끼가 침대 옆에 서서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반짝이며 쭈뼛쭈뼛 물었다.
그러자 강재욱은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신지은은 굉장히 예뻤다. 그녀의 얼굴은 수려하면서도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한 유형이었다. 코는 귀여우면서도 오똑하게 솟아 있었고, 입술은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상태임에도 붉었다. 트렌디한 것 같으면서도 수묵화 같은 고전적인 느낌도 있었다.
두 가지의 전혀 다른 미감이 섞이면 위화감이 들기 마련이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오히려 그 두 가지 느낌이 무척이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녀의 피부는 희고 여리면서도 탄력이 눈으로도 느껴졌고, 예쁜 쌍꺼풀과 길고 풍성한 속눈썹은 그녀의 눈매를 더 깊이 있어 보이게 했다.
마치 봉황의 몸에서 떨어져 내린 검은색의 깃털처럼 부서질 것 같은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그녀의 눈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떨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녀의 얼굴은 보고 있으면 마음속의 소란함이 진정이 되는 그런 얼굴이었다.
“이리로 오세요.”
그가 자신의 옆자리를 두드리며 그녀를 침대로 초대했다. 그러자 신지은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새빨개진 얼굴을 한 채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이리로 오세요.”
그가 다시 한번 그녀를 불렀다. 이번에는 약간의 강경함이 담긴 말투였다. 신지은은 입술을 삐죽였다. 비록 그다지 내키지도 않았고, 무척이나 긴장도 되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일단 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런 다음 그에게 확실하게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미처 입을 떼기도 전에, 그의 몸이 그녀를 덮쳐왔다.
“강재욱 씨, 이… 이러지… 당신이 이런다고 해도 안시훈은 슬퍼하지 않을 거예요.”
신지은은 잔뜩 겁을 먹고는 두 손으로 그의 가슴을 밀어내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다급히 말을 내뱉었다.
“지금 왜 그 남자 얘기를 꺼내는 겁니까?”
강재욱은 굉장히 기분이 나쁘다는 듯 말하고는 그녀의 두 손을 잡아 머리 위로 올린 뒤 단단히 눌렀다.
신지은은 당황스러움에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의 그런 강압적인 행동은 그녀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쉬이… 무서워하지 마세요.”
그의 말투는 갑자기 한없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가에 입을 맞추며 다정한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