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0화 그때 그 사고
- “나랑 인혁이는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면서 정말 같이 안 해 본 짓이 없었어. 누가 늦잠을 자서 그 사람을 차에 대신 태워주고 하는 일이 정상이었던 거야. 우린 서로를 서로한테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형제 그 자체였어. 술에서 깨어났을 때 난 그의 말을 믿고 그냥 그렇구나, 라고 별다른 생각은 안 했어. 인혁이가 말한 국립공원은 나도 들어본 적이 있는 곳이었는데, 거기로 향하던 도중에 갑자기 폭설이 내리기 시작한 거야. 우린 둘 다 강원도 현지인이 아니었던지라 폭설을 뚫고 운전하는 게 그렇게 쉽지 않았어. 네비를 찍고 운전했는데도 우리는 결국 길을 잃고 말았어.”
- “눈이 어찌나 세차게 내리던지 얼마 안 가 도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였었어. 휴대폰은 신호가 잡히지 않아 먹통이 되었던 탓에, 우리는 할 수 없이 네비에 보이는 방향대로 계속 앞으로 운전할 수밖에 없었어. 그렇게 엄청 큰 설산 앞까지 운전해 갔는데, 그때 눈사태가 갑자기 일어났었어. 산꼭대기에 있던 눈덩이가 무서운 기세로 파도처럼 아래로 곤두박질 쳤고, 우리차랑 정통으로 충돌이 일어난 거야. 그 충격에 우리가 탄 차가 옆으로 몇 바퀴나 굴렀던 게 기억이 나.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때 온 세상이 뒤집히던 느낌이 생생해.”
- “그다음 난 기절했었어. 그리고 다시 깨어났을 때 눈에 파묻힌 골짜기에 누워있었어. 차와 인혁이는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지. 아까도 말했다시피 휴대폰에 신호가 잡히지 않아 인혁이한테 전화를 할 수가 없었어. 어찌어찌 일어나 인혁이를 찾으려고 걸음을 옮겼는데, 그게 하필 반대방향으로 걸은 거야. 그렇게 마지막에는 우리 집에서 파견한 구출팀과 만나게 되었고, 이게 사고가 난 날에 있었던 일의 전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