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7개월이 되어 이제 막 앉을 수 있게 되었다. 하얗고 포동포동한 것이 얼마나 인형 같고 귀여운지, 웃을 때마다 보조개가 옴폭 패어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는데. 그런 아기가 그들의 ‘부주의’라는 이유로 바닥에 떨어져 죽었다.
“모여정, 천호는 내 거야. 내 아들이야말로 천호의 진짜 핏줄이지. 네 딸은 사생아나 마찬가지야. 너 몰랐지? 천호는 너한테 손댄 적도 없어. 그날 밤의 남자는 천호가 아니거든. 네 딸의 친아빠가 누구야? 하하하, 네 딸은 아비가 누군지도 모르는 잡종 아니야? 모여정, 네 어미아비는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 내가 죽인 거야. 모씨 가문의 모든 재산을 너에게 물려주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거야. 아니, 평소에는 나더러 딸이라고 하면서 정작 이득 앞에서는 친딸인 너만 생각해 주잖아. 모여정, 네 사생아 딸이랑 같이 죽어버려!”
“응애…”
모여정의 귓가에 모여희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딸이 바닥에 떨어지며 퍼붓는 울음소리에 모여정의 마음은 칼로 찌르는 것 같았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점차 작아지자 당황한 그녀는 무릎을 꿇고 제발 딸을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빌었다. 모씨 가문의 재산이고, 강천호고 다 필요없으니 제발 딸만 살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딸을 구하지 못했다.
모여정은 아기의 조그마한 시신을 안고 병원에서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밖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겨울철에 내리는 비는 세상을 스산함에 휩싸이게 했다.
모여정은 텅 빈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눈가에서는 눈물이 마를 줄 모르고 한 방울, 또 한 방울 흘러내렸다.
비가 그녀의 몸에 내려앉아 조금씩 그녀의 머리카락과 옷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절망감에 휩싸인 그녀는 추운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후회스럽기만 할 뿐이었다.
그녀는 모씨 가문에서 잃어버린 친 딸이었다. 그녀의 부모님은4년 전에 그녀를 되찾아서 모씨 가문으로 데려갔던 것이다. 딸인 줄로 알고 키웠던 첫째는 모씨 가문에서 20년 넘게 산 탓에 부모님과 깊은 정을 쌓은 뒤였다.
모여정의 부모는 양녀를 내보내기 아쉬워서 그렇게 두 아이 모두 한 집에서 살았다.
모여정이 모씨 가문으로 돌아갔을 때 25살이었다. 친부모는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에 그녀를 상류사회에 발을 들이게 하고 좋은 혼사 자리를 알아봐 주었다.
그때 서울의 재벌가들은 모두 모씨 가문과 사돈을 맺고 싶어했다.
서울의 최고 재벌인 전씨 가문에서도 다녀갔었다. 전씨 가문은 모씨 가문의 진짜 아가씨 모여정을 염두에 두었다.
하지만 전씨 가문의 장자는 교통사고로 두 다리가 불구로 되었다. 사고 뒤로 워낙 성격이 차갑기로 소문난 그의 성격이 더더욱 까칠해졌다. 예전에 그와 결혼하려고 줄을 서던 아가씨들은 지금 하나같이 피하기 어려웠다.
모여정의 부모는 전씨 가문의 미움을 사는 게 두려워 모여정더러 스스로 결정하라고 했다.
그때 모여정은 멍청하게도 강천호를 사랑하게 되어 전강현을 거절했다.
부모는 그녀가 전씨 가문에 시집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강씨 가문에 들어가는 것도 반대했다. 하지만 그녀가 기어코 강천호를 고집하는 바람에 결국 부모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의 길에 잘못 들어선 뒤, 그녀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모여정은 소원대로 강천호와 결혼한 뒤에야 강천호와 모여희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둘은 겉으로 티를 내지 않고 모여정이 자신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기를 기다렸다.
단순한 그녀가 그들의 음모를 눈치채지 못하고 그 함정에 빠진 것이다.
부모님이 잇달아 사고로 세상을 뜬 후, 그녀를 대하는 강천호의 태도가 점점 차가워졌다. 심지어 나중에는 아무렇지 않게 모여희를 집으로 끌어들여 애정행각을 했다. 모여정은 결혼생활을 지키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그녀는 모여희의 상대가 아니었다.
강씨 가문에서 그녀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
모여정은 멍한 얼굴로 도로에 뛰어들었다.
끼익!
차가 급정거하는 소리가 귀를 찔렀다.
퍼엉!
모여정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또 빠른 속도로 길에 떨어졌다.
새빨간 피가 마구 뿜어나왔다.
모여정은 온몸이 아팠지만 힘들게 아기가 있는 쪽으로 기어갔다. 차가 그녀를 칠 때의 충격으로 그녀의 품에 안겨 있던 아기가 멀리 날아났던 것이다.
“아가야…”
모여정은 힘들게 앞으로 기어갔다. 아기와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지만 그녀의 손끝에는 아기가 닿지 않았다.
“아가야…”
검은색 구두 한 쌍이 흐릿해져가는 그녀의 시선에 나타났다. 그 사람은 허리를 숙이고 아기의 시신을 든 뒤, 그녀의 품에 안겨주었다.
“아가.”
모여정은 아기를 안고 기쁜 표정을 지었다. 입가에서 흘러내린 피가 아기의 몸을 적셨다.
상처가 심각했던 그녀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의식을 놓았다. 어둠이 그녀를 삼키기 전에 그녀는 최선을 다해 그녀를 도와준 남자를 보려고 했다. 그 남자는 검은색 옷을 입고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는 귀티가 흘렀다.
그녀는 어제 강천호와 모여희에 의해 중상을 입은 아기를 안고 미친 듯이 길가로 뛰어나가 아무 차나 가로막고 병원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 차에서 휠체어에 앉은 남자가 그녀더러 차를 타라고 한 뒤, 기사더러 병원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아기의 목숨을 구하지 못했지만 모여정은 그에게 감격하고 있었다.
둘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모여정은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다음 생이 있다면… 난 저 남자와 결혼할 거야. 전강현.’
…
“언제 깨어난대?”
차가운 목소리가 모여정의 귀를 후벼팠다.
“도련님, 의사가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라고 합니다. 피가 멈춰었으니 곧 깨어날 것입니다.”
‘그냥 과다출혈일 뿐이야? 나는 죽는 줄 알았는데. 아가! 우리 아가!’
모여정은 눈을 번쩍 떴다. 하지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병원의 하얀색 천장이 아닌 새까맣고 싸늘한 눈이었다. 그 눈의 주인은 잘생긴 남자였으나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 탓에 어딘가 정이 없어 보였다.
그녀가 기억하는 얼굴이었다.
전강현.
그녀가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유일하게 그녀에게 선의를 베풀어준 사람이었다.
“대표님…”
모여정은 기쁜 얼굴로 전강현을 불렀다.
서울에서 모두 전강현을 ‘대표님’이라고 불렀다.
그는 다리를 사용할 수 없는 장애인이지만 여전히 서울의 상업계를 쥐고 흔드는 신이었다.
모여정을 바라보는 전강현의 눈은 온기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는 휠체어를 밀면서 싸늘한 목소리로 보디가드에게 지시했다.
“깨어났으니 집으로 돌려보내서 모경서에게 말해. 나 전강현은 불구가 되었지만 그댁 딸을 억지로 맞이하지 않을 거라고. 그러니까 딸이 내 앞에서 자살소동을 부리지 않게 잘 감시하라고. 피 때문에 눈만 더럽혀졌네.”
‘자살?’
이 광경은 아주 익숙했다.
그때 전씨 가문에서 혼사 얘기를 하러 모씨 가문에 왔을 때, 친딸인 모여정을 콕 찍어 얘기했었다.
그녀는 불구가 된 전강현이 자신과 결혼하고 싶어한다는 말에 몰래 전씨 가문의 저택으로 가서 팔을 그으면서까지 절대 그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난동을 부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