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자기가 저지른 일에 책임질 줄도 알아야 하는 거야. 네가 전 대표에게 잘못을 저질렀으니 네가 직접 사과해야지. 전씨 가문에서 너를 결혼 상대로 찍어서 말했기에 내가 널 대신해서 전 대표와 결혼하고 싶어도 그럴 기회가 없게 되었어.”
모여정은 코웃음을 치고 홱 돌아섰다.
모여희: “…”
그녀는 다급히 장혜민을 보며 말했다.
“엄마, 제가 여정이를 도와 대표님께 사과하기 싫은 게 아니라 전 대표님의 성격을 엄마가 모르시는 것도 아니고… 여정이가 한 잘못을 제가 사과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잖아요.”
“여정이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니? 전씨 가문이 사람을 괴롭히는 거지. 그 집 장자는 다리가 그렇게 되었음에도 여정이를 데려가고 싶다니… 우리 여정이가 시골에서 자랐다고 무시하는 거야.”
장혜민은 다른 사람이 모여정을 뭐라고 나무라는 게 싫었다.
그녀는 모두 전씨 가문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서울의 재벌 아가씨들 중에서 전씨 가문은 이름을 콕 찍어 모여정을 선택했다. 그게 다 모여정이 시골에서 자라 만만하게 보는 게 아니고 무엇인가?
“엄마가 여정이 먹을 음식을 해야 하니까 여희 넌 여기서 이러지 말고 나가.”
모여희는 전강현이 모여정을 괴롭히지 못하게 할 거라고 말했지만 정작 모여희더러 모여정 대신 전강현에게 사과하라고 하니 모여희는 거절했다. 그것으로 부족해 가르치듯 모여정을 훈계했다.
그래서 장혜민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친딸은 여태까지 시골에서 살다가 상경한 지 이제 일 년 정도 되었다. 그러다 보니 상류사회에 인맥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모여희는 어렸을 때부터 상류사회에 있어서 모여정보다 뛰어났다.
그러나 전강현에게 사과하는 것 같은 작은 일도 모여희는 도우려고 하지 않았다.
장혜민은 문득 양녀가 친딸에게 그다지 잘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혜민이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모여희도 말없이 주방에서 나갔다.
주방에 나가서 보니 모여정이 가위를 들고 그녀가 아끼는 화분을 정리하고 있었다.
“여정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모여희가 소리를 꽥 질렀다.
그 화분들은 강천호가 그녀에게 준 것으로, 평소 그녀가 아주 애지중지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꽃이 잘 자라자 그녀는 일부러 눈에 띄는 곳에 두어 부모님에게 자랑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모여정이 커다란 가위를 들고 설쳐? 내 꽃들을 다 죽이려는 거야?’
“이런 잔가지들은 잘라줘야 해. 그래야 더 잘 자라지.”
모여정이 고개를 돌리고 생긋 웃으며 말했다.
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또 가위질을 했다.
‘참 속시원해!’
“여정아.”
모여희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모여정의 손에서 가위를 빼앗은 뒤, 다시 화분을 돌아보았다. 꽃나무는 모여정의 가위질에 볼품없이 변해버렸다.
모여희는 화가 나 속이 부글거렸다.
그녀는 가위로 모여정을 찌르고 싶은 마음이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장혜민은 모여희의 비명을 듣고 다급히 주방에서 뛰어나왔다.
그러자 모여정이 눈시울을 붉히는 게 아닌가?
“엄마, 이 꽃나무 잎들이 너무 무성하게 자란 것 같아 잘 자라라고 조금 손본 건데 언니가 막 뭐라고 하잖아요.”
“여정아, 내가 이 화분에 얼마나 정성을 쏟은지 너 몰라? 요즘 꽃이 필 때라 화방에서 일부러 여기까지 가져와 부모님이 감상하시라고 한 건데 네가 이렇게 잘라놨잖아.”
모여희는 아주 화가 났다.
왠지 모르게 시골에서 온 여동생이 하룻사이에 변해버린 것만 같았다. 그녀가 특별히 한 죽도 먹지 않고 엄마에게 애교를 부리는가 하면 그녀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지금은 강천호가 그녀에게 선물한 화분까지 망가뜨리고 있었다…
“엄마, 전, 전 그냥 언니 돕고 싶어서… 제가 괜한 짓을 했나 봐요.”
모여희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장혜민은 딸을 위로하며 말했다.
“아니야, 화분이 죽지만 않으면 꽃을 피울 수 있어.”
그녀는 또 모여희에게 말했다.
“여희야, 여정이가 널 돕느라고 한 거잖아. 너처럼 화분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니 너무 탓하지 마.”
모여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더 잘 자라라고 손질한 것일 뿐, 일부러 죽일 생각은 없었어.”
장혜민은 휴지를 뽑아 모여정에게 건넸다.
“괜찮아, 여희가 너에게 뭐라고 하지 않을 거야. 몸도 안 좋은 애가 울지 마. 엄마가 너에게 몸에 좋은 탕을 끓였으니 많이 먹어.”
“고마워요, 엄마.”
모여정은 눈물을 닦았지만 휴지가 젖지 않았다. 그녀는 장혜민이 말을 걸 때 일부러 눈물을 짜낸 것이다.
부모가 모여희의 진짜 모습을 알게 해야 지난 생의 비극이 재연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는 모여희가 아끼는 모든 것을 망가뜨릴 생각이었다. 그게 화분 하나라고 해도 절대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 분이 강천호가 모여희에게 준 것임을 모르지만 환생한 모여정은 알고 있었다.
지난 생에 모여희는 승리자처럼 그녀의 앞에 서서 모든 것을 그녀에게 말해줬던 것이다.
“엄마!”
모여희가 그녀를 불렀다.
“이 꽃들 제가 정말 열심히 가꾼 거란 말이에요.”
“네 동생이 화분 몇 개보다 못하다는 거야? 여정이가 도와주려고 그랬다잖아. 얘는 너처럼 내 옆에서 좋은 교육 받고 자라지 못해서 뭐든 다 알지 못해. 꽃들이 죽은 것도 아닌데 왜 동생한테 그래? 일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애가 배고픈 것도 참고 네 화분을 정리해줬는데 고맙다고 말하지는 못할망정…”
장혜민의 어두워진 얼굴에 모여희는 하려던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내일 내가 화분을 몇 개를 사줄까?”
모여정이 미안한 얼굴로 물었다.
모여희는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밖에서 사온 화분으로 어찌 대체가 가능하겠는가? 이건 강천호가 그녀에게 사온 것이었다.
“아니야, 하지만 앞으로 뭔가를 하기 전에는 미리 물어볼래? 오늘 같은 일 일어나지 않게 말이야.”
모여희는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지만 속으로 화를 삭일 수밖에 없었다.
화분 몇 통 때문에 모여정과 싸운다면 부모님이 그녀가 모여정을 괴롭힌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지금 장혜민의 친딸이 아니지 않은가? 지금도 모씨 가문에서 아가씨 신분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20년 넘게 키운 정을 봐줬기 때문이었다.
“됐어, 그만해. 여정아, 너 화분정리하는 게 좋으면 엄마 화분 한 트럭 사오라고 할 테니 마음껏 꽃가지 가꿔 봐.”
모여정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엄마. 엄마 사랑해요.”
장혜민은 모여정의 달콤한 미소와 ‘사랑해요’라는 말에 기분이 너무나 좋아졌다.
“바보 같긴. 난 네 엄만데 고마울 게 뭐가 있어? 어머나, 내 음식!”
장혜민은 소리를 지르더니 주방으로 뛰어갔다.
모경서는 집으로 들어오다 아내가 급히 주방으로 뛰어가는 모습을 보고는 외투를 벗으며 물었다.
“네 엄마 왜 저런다냐?”
“아빠, 오셨어요?”
모여희는 가위를 내려놓고 아버지에게 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보다 모여정이 더 빨리 모경서의 앞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