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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스토킹? 우연한 만남?

  • 모여정은 싸늘한 눈길로 기 비서를 훑어본 뒤, 안으로 들어갔다.
  • 고희패션은 세 층으로 되어 있는데 일이 층은 모두 드레스 전시구역이고 삼 층은 사무구역이었다.
  • 기 비서는 모여정이 들어간 뒤, 침을 뱉았다.
  • “시골뜨기가 하루 아침에 부잣집 아가씨가 되더니 눈에 뵈는 게 없네. 칵 퉤!”
  • 그러나 결국 일인지라 기 비서는 표정을 숨기고 고희패션에 들어갔다.
  • 고희패션의 직원들은 모여정이 들어온 것을 보고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 막 들어와 모여정의 신분을 모르는 신입만이 웃는 얼굴로 그녀를 맞이했다.
  • 모여정은 고희패션에 처음 온 게 아니었지만 예전에는 모두 엄마랑 같이 왔기에 그들의 열정적인 대응을 누렸었다.
  • 하지만 혼자 온 지금 이들은 그녀를 상대조차 해주지 않았다.
  • ‘어이없군!’
  • “기 비서님!”
  • 모여정이 들어왔을 때는 못 본 척하던 직원이 기 비서를 보자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
  • 일부러 모여정에게 무안을 주려는 것이었다.
  • 한 직원이 웃는 얼굴로 기 비서를 바라보았다.
  • “기 비서님, 모 부대표님이 지난번에 드레스 몇 벌을 주문하셨는데 다 완성이 되었어요. 드레스 가지러 오셨어요?”
  • 모여희의 드레스는 모두 고희패션에서 주문제작한 것이었다. 급할 때는 그녀가 직접 와서 고르기도 했다.
  • 고희패션의 드레스는 디자인 당 한 벌밖에 없으니 다른 사람과 같은 것을 살 염려도 없었다.
  • 기 비서는 모여정을 대한 직원들의 태도를 보고 기분이 좋았다. 모여희가 모씨 가문의 진짜 후계자는 아니지만 모경서의 총애를 받고 있기에 부대표의 자리를 단단히 지키고 있었다.
  • ‘모여정 같은 것은 절대 넘볼 수 없는 위치지.’
  •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 “부대표님께서 직접 오셔서 가져가실 거예요. 저는 둘째 아가씨가 입을 드레스를 고르러 온 거예요. 둘째 아가씨께서 이번 주말에 저희 부대표님과 함께 조씨 가문의 파티에 참석할 거라서요.”
  • 그러자 기 비서와 대화를 나누던 직원들은 키득키득 웃었다. 그중 한 명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 “기 비서님 참 고생이 많네요.”
  • 기 비서는 그들의 말을 듣고 웃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 모여정은 일 층에서 둘러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 그녀는 직원에게 말했다.
  • “이 층에 한 번 가보죠.”
  • 직원이 그녀를 데리고 이 층으로 올라가려 하자 몇몇 직원이 비아냥거렸다.
  • “촌닭이 백조 노릇을 해보려고.”
  •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 모여정은 태연한 얼굴로 휴대폰을 들어 그들이 비꼬는 소리를 녹음했다.
  • 기 비서는 직원들이 모여정을 비꼬는 것을 들으며 깨고소한 표정을 지었다.
  • 직원들의 말을 녹음한 모여정은 점장 앞으로 걸어가 책상을 두드렸다.
  • 일하고 있던 점장은 화들짝 눌렀다. 고개를 들고 모여정을 본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으나 그래도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 “모여정 씨, 무슨 일이시죠?”
  • 모여정이 싸늘한 얼굴로 물었다.
  • “제가 들어온 뒤, 이 매장 직원들이 가만히 있는 거로도 부족해 온갖 말로 사람을 비웃더군요. 그런데 점장인 당신의 눈에는 안 들리나 봐요? 고희패션 드레스는 아름다운데 직원들의 수준이 참… 창피하지도 않나요?”
  • “저들이 뭐라고 했는데요?”
  • 점장이 오히려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 “상대하는 직원이 있는데 모여정 씨는 몇 명이나 따라붙기를 바라시는데요? 그리고 사실을 얘기했는데 비아냥거린다고 하면서 제 책상을 치는 모여정 씨의 수준도 참…”
  • 모여정은 점장을 빤히 쳐다보았다. 점장도 직원들과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안 그녀는 더 이상 점장과 말을 섞지 않기로 했다.
  • “당신네 대표를 만나야겠어요.”
  • 고희패션의 대표는 고희로 패션 디자이너였다. 그녀는 주로 드레스를 디자인했다.
  • 점장은 한결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 “모여정 씨, 하실 말씀이 있으면 저한테 하시면 됩니다. 저희 대표님은 아무나 만날 정도로 한가한 분이 아니세요.”
  • 고희패션이 서울 상류사회에 자리를 단단히 잡은 데다가 고희도 재벌 출신이었다. 또 고희패션을 설립하며 명성이 대단한 사람들을 친구로 두었기에 모여정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 모여정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 “모여정 씨, 일 층의 드레스도 다 괜찮은 거예요. 아무거나 몇 개 골라서 입으세요. 다 그쪽과 어울릴 거예요. 이 층의 드레스는 비싸서 모여정 씨가 그 옷들을 소화할 수 있겠는지 모르겠어요.”
  • 이 층의 드레스는 고희패션 중의 최상품으로 몸매와 분위기가 따라가야 소화할 수 있는 옷들이었다.
  • 그래서 모여정 같은 시골뜨기가 이 층의 옷을 소화할 수 없다고 비웃은 것이다.
  • “전 대표님!”
  • 이때, 경악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 모여정이 고개를 돌리자 전강현이 휠체어에 앉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고희에 들어오는 게 보였다.
  • 모여정은 눈을 깜박였다.
  • ‘날 스토킹하나?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여기서 또 만나겠어?’
  • 전강현의 출현에 점장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달음에 달려가서 환하게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 “전 대표님, 저희 대표님 만나시러 오신 거죠? 대표님께서 전 대표님이 오시면 바로 펜트하우스로 모시라고 하셨어요. 대표님이 펜트하우스의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계실 거예요.”
  • 전강현과 고희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여서 점장은 전강현이 고희 만나러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 전강현은 아무 말 없이 손을 들어 보디가드더러 휠체어를 밀지 말라고 지시했다.
  • “어떻게 된 일이지?”
  • 전강현이 모여정을 힐끗 보며 물었다. 모여정은 애써 화를 삭이고 있었지만 전강현은 한눈에 그녀가 더없이 화가 난 것을 알아보았다.
  • 점장이 물어보기 전에 전강현이 물었다.
  • “저 여자는 왜 저기 있는데?”
  • 점장이 급히 대답했다.
  • “대표님, 신경 쓰지 마세요. 저분은 모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인데 그저 보러 오셨대요.”
  • 모여정도 서울에서 꽤 유명한 편이었는데 부정적으로 유명한 것이었다.
  • “고희는 아무나 막 들어오는 데인가 봐?”
  • 비아냥이 섞인 전강현의 말에 점장은 그가 모여정을 두고 하는 말인 줄 알고 있었다.
  • 점장이 바로 말했다.
  • “저분이 여기 있는 게 눈에 거슬리면 당장 나가라고 할게요.”
  • 모여정: “…”
  • ‘남들이 날 무시한다고 해도 남편이라는 사람까지 날 감싸주는 게 아니라 여기서 날 내쫓으려는 거야?’
  • 기 비서는 재빨리 모여정의 옆으로 가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아가씨, 우리 지금 떠나죠. 전 대표님 기분 거슬리게 하지 말고요.”
  • 말을 마친 기 비서는 모여정을 잡아끌며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고희의 사람들에게 내쫓기는 것보다 이것이 보기 덜 흉할 테니 말이다.
  • 그녀는 망신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 모여정은 기 비서의 손을 뿌리치고 전강현을 노려본 뒤, 홱 돌아서서 걸어갔다.
  • 그러나 그녀가 향하는 방향은 대문이 아니라 이 층이었다.
  • 그녀는 떠나기 싫었다!
  • “이봐요!”
  • 점장이 모여정을 불러 세우고 말했다.
  • “모여정 씨, 지금 모여정 씨를 접대할 수 없으니 이만 떠나주세요.”
  • 모여정은 이미 위층으로 올라가던 중이었다. 그녀는 계단 위에서 돌아서서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깔깔 웃기 시작했다.
  • “당신네는 장사를 하는 사람 아니에요? 이 대문에 들어선 사람이면 고객이고 고객이면 하늘인데 이런 태도로 장사를 어떻게 한다는 거예요? 고희패션 제대로 폐업하고 인사조동을 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