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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어쩜 여기서 만나네요!

  • 강천호를 본 모여정은 지난 생이 떠올라 마음속의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눈빛으로 드러냈다.
  • 그녀는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강천호의 목을 조르고 따지고 싶었다.
  • “날 사랑하지도 않았으면서 왜 나와 결혼한 거야? 그날 밤 나와 잠자리를 가진 건 당신이 아니면서도 왜 날 속이고 내 딸을 죽인 거야!”
  • “여정 씨.”
  • 강천호는 다가와 모여정의 앞에 섰다. 그는 모여정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예전에 모여정은 그를 보면 반짝이는 눈빛으로 인사를 하기 일쑤였던 것이다.
  • “여정 씨, 왜 여기 있어? 혼자 온 거야?”
  • 강천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 모여정은 온갖 힘을 써서야 분노를 억누를 수 있었다.
  • 강천호가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본 모여정은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 ‘모여희를 찾고 있나 보지.’
  • 그녀는 강천호를 호되게 비웃고 싶었다.
  • ‘모여희를 그렇게 사랑하면서 날 좋아하는 척 연기하더니. 힘들어서 어떻게 살았나 몰라. 전생에 난 정말 눈이 멀었나 봐. 이런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말이야.’
  • “옷 사러 왔어.”
  • 모여정이 담담하게 말했다.
  • 말을 마친 그녀는 강천호의 옆으로 지나갔다.
  • “여정 씨.”
  • 강천호는 돌아서서 모여정의 손을 잡았다.
  • 모여정은 그의 손을 뿌리치며 날카롭게 소리 질렀다.
  • “아파!”
  • 그가 잡은 자리가 그녀가 다친 곳이었던 것이다. 며칠 지났다고는 하지만 꾹 누르면 아직도 아팠다.
  • 강천호는 당황한 얼굴로 멍하니 있다가 그제야 모여정 손목의 흉터를 확인했다. 그리고 뿌리치는 모여정을 무시하고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며 걱정하는 얼굴로 물었다.
  • “여정 씨, 이거 왜 이래? 누가 이랬어?”
  • 모여정은 피식 비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 “천호 씨, 날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 내가 다친 것도 몰라? 시간이 지나도록 우리 집에 날 보러 오지도 않고 말이야.”
  • 강천호는 눈동자가 흔들렸지만 바로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거짓말했다.
  • “요즘 너무 바빠서 보러 가지 못 했어. 그런데 어쩌다 다친 거야? 상처를 보니 칼에 베인 것 같은데.”
  • “다 봤으니 이만 손 놓지 그래?”
  • 강천호는 미간을 찌푸리고 모여정을 바라보았다. 모여희에게서 모여정이 변했다는 말을 듣기는 했다. 모여정이 예전과 다르게 부모에게 애교도 부리고 그녀에게 골탕도 먹인다는 말을 강천호는 믿지 않았다. 모여정 같은 시골뜨기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하겠냐면서 말이다.
  • 하지만 지금은 모여정이 변했다는 모여희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 지금의 그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전화번호를 달라고 박력 있게 말하던 모여정과 지금의 모여정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 “칼에 베인 상처 맞아.”
  • 모여정은 손을 빼며 담담하게 말했다.
  • “모여희가 준 칼에 다쳤어.”
  • 그녀가 모씨 가문에 돌아왔을 때, 모여희는 만남의 선물로 그녀에게 호신용 단도를 주었었다.
  • 지금 생각해 보면 모여희는 그때부터 그녀를 조금씩 함정으로 이끌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모든 것을 잃고 길거리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 “여희가 호신용으로 준 칼로 왜 자신을 베고 그래? 딱지 앉은 걸 보니 곧 낫겠네.”
  • 모여희의 이름이 나오자 강천호의 눈빛은 한결 부드러워졌다. 말투도 덩달아 나긋해졌다.
  • 아까의 걱정하던 기색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 강천호를 볼수록 모여정은 지난 생 자신의 어리석음을 원망하게 되었다.
  • 강천호는 고개를 돌려 자신이 나온 브랜드 매장을 바라보며 모여정에게 물었다.
  • “여정 씨, 옷 사러 왔다고 했는데 여기 남자 옷 파는 데야. 아버님 선물 고르고 있었어?”
  • “누구를 사주든 그게 그쪽과 무슨 상관인데? 그쪽 사줄 것도 아닌데.”
  • 강천호: “…”
  • 그가 이 브랜드의 옷을 좋아해서 모여정은 종종 그에게 선물로 주었다. 매번 이 브랜드 매장에서 고른 옷은 모두 강천호에게 선물하기 위해서였다.
  • 그런데 모여정은 지금 그에게 주는 게 아니라고 했다!
  • ‘그럼 누구에게 주려는 거지?’
  • 강천호는 궁금한 마음이 드는 한편, 기분이 이상했다.
  • 모여정에게 떠받들리는 데 익숙해진 그는 모여정을 대하는 게 너무 쉬웠다.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모여정이 알아서 척척 선물하고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기 때문이었다.
  • 갑작스럽게 달라진 모여정의 태도에 강천호는 조금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 “내가 이 브랜드에 대해 잘 아니까 같이 쇼핑할까?”
  • 강천호는 모여정을 끌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 모여정은 그의 손을 피해 우아한 걸음으로 매장에 들어갔다.
  • “차 세워.”
  • 전강현의 갑작스런 지시에 기사는 다급히 급정거를 밟았다.
  • 차가 빠른 속도로 옆에 섰다.
  • 전강현은 차창을 내리고 어두운 눈길로 앞쪽 매장에 들어가는 모여정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뒤를 따르는 사람은 강천호였다.
  • “차를 길가에 대.”
  • 전강현이 싸늘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 기사는 그의 말대로 차를 세웠다.
  • 몇 분 뒤, 전강현의 차가 런지 가로수길 길가에 세워졌다.
  • “쇼핑해야겠어!”
  • 그의 나지막한 말에 보디가드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몇 사람은 내려서 주변에 의심이 갈 만한 인물이 없나 둘러보았고 어떤 사람은 전강현이 평소 사용하는 휠체어를 차에서 내렸으며 또 어떤 사람은 조심스럽게 전강현을 부축했다.
  • 그들의 행동은 효율적이고 신속했다.
  • 눈 깜짝할 사이 전강현은 한 보디가드와 함께 가로수길에 들어섰다.
  • ‘전강현 대표님이 오셨어!’
  • 런지 가로수길의 매장 주인들은 모두 눈치 빠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전강현을 실물로 본 적이 없지만 신문이나 뉴스로 접해본 적이 있어서 알아보았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렇게 엄청난 기세로 쇼핑에 나선 사람은 전강현밖에 없을 것이기에 알아보는 게 어렵지 않았다.
  • “대표님.”
  • “전 대표님.”
  • 소식을 들은 점주들은 모두 부랴부랴 밖으로 나와 웃는 얼굴로 그들을 맞이했다. 전강현이 그들을 알아보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저마다의 존경심과 경외심만 보여주면 되는 것이기에.
  • 모여정은 전강현이 런지 가로수길에 온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 그녀는 매장에 들어가서 전강현에게 선물할 옷을 고르고 있었다.
  • 강천호는 그녀의 옆에 바짝 붙어서 계속 말을 걸고 있었다.
  • 전강현이 들어왔을 때, 모여정은 셔츠 하나를 들고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자 강천호가 바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 이를 본 전강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 그와 모여정은 감정 없이 한 결혼이라고 하지만 자신과 결혼한 이상, 기본적인 도덕을 지키길 바랐던 것이다.
  • ‘저렇게 다른 남자랑 다정하게 있으면 안 되지. 그것도 다른 남자에게 옷을 사주려 하다니!’
  • 다행히 모여정은 강천호더러 자신이 고를 옷을 입게 하지 않았다.
  • “전 대표님.”
  • 가게 안의 사람이 전강현을 알아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 강천호와 모여정은 반응이 가장 느린 사람이었다.
  • “전 대표님.”
  • 강천호는 이곳에서 전강현을 만나게 될 거라고 상상도 못한 지라 조금 당황한 얼굴이었다. 전강현이 비록 휠체어에 앉은 채로 살아야 하지만 여전히 서울 상업계에서 신이라 불리는 사람이었다. 그의 기침소리 한 번이면 주가가 오르내린다는 말도 있었다.
  • 강천호도 다른 사람들처럼 전강현을 존경하면서도 무서워했다.
  • 그러니 전강현을 만난 지금, 잘 보여야 했다.
  • 강천호는 다급히 모여정을 끌고 그곳으로 걸어갔다.
  • 열심히 셔츠를 고르던 모여정은 강천호의 손에 이끌려 전강현의 앞까지 갔다. 그녀는 전강현의 커다란 눈과 마주친 순간, 뜨끔한 기분이 들었다.
  • ‘아니지, 내가 찔릴 게 뭐가 있어?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말이야.’
  • 이렇게 생각한 그녀는 허리를 곧게 펴고 고개를 쳐들고는 활짝 웃었다.
  • “대표님, 어쩜 여기서 만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