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여정은 고희패션에서 나온 뒤, 또 다른 가게에 가서 부모님께 드릴 새 옷을 산 뒤에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해 보니 모여희의 차가 노천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게 보였다.
고용인이 걸어왔다.
모여정이 차에서 내리자 고용인이 그녀의 손에서 봉투를 받아 들었다.
“엄마 집에 없어요?”
“사모님은 친구들 만나러 나가셨어요. 식사 밖에서 하시고 들어온대요.”
모여정은 고개를 끄덕이고 집으로 들어가며 물었다.
“언니는요?”
지금은 근무시간이기에 모여희는 회사에 있어야 했다.
모여희는 회사일에 진심이기에 야근하는 경우도 잦았다. 그래서 모경서는 그녀를 아주 만족스러워하고 있었다. 모여정은 부모님이 모여희를 후계자로 키운 것을 알고 있었다. 그만큼 모여희는 아주 뛰어났다.
모여정이 환생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훌륭한 모여희가 그렇게 지독한 마음을 품고 있는 줄 몰랐을 것이다.
지난 생에 부모님이 갑자기 세상을 뜬 후, 회사일을 맡을 능력이 없는 모여정 대신 모여희가 모안그룹을 맡았다.
모여희는 부모님이 예전에 그녀를 후계자로 세운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했다.
모여정은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강씨 가문으로 시집간 뒤, 그녀는 강씨 가문의 규칙이라는 이유로 집에만 틀어박혀 지낸지라 모여희의 말이 사실인지 조사할 능력이 없었다. 강천호의 허락이 없이는 외부와 연락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생의 일들이 떠오르자 모여정은 모여희와 강천호가 증오스러웠고 순진하고 무능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내게 조금만 더 힘이 있었다면 딸아이랑 같이 죽는 일은 없었을 텐데.’
“잘 모르겠어요. 큰아가씨가 집에 오셨을 때 표정이 좋지 않아서 저희도 물어보지 못했어요.”
고용인이 대답했다.
모여정이 모씨 가문의 친딸이라고는 하나 고용인들은 그래도 모여희를 가장 무서워했다. 모여희는 친절한 겉모습과 달리 상대하기 쉬운 사람이 아니었다.
모여정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기 비서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모여정의 뒤를 따랐다.
소파에 앉아 있던 모여희는 모여정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모여정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걸어가 소파에 앉았다.
“왜 여기 있어?”
“여정아.”
모여희는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의 표정을 보니 화를 억지로 참고 있는 듯했다.
모여정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방금 전의 한기가 사라진 뒤였다.
“고희패션에 옷 사러 갔었어?”
모여정은 고용인의 손에서 봉투를 받아 들고 고용인에게 고맙다고 눈웃음 지었다. 모여희의 말을 들은 그녀는 모여희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안 돼?”
“전 대표를 만났어?”
모여희는 모여정의 말을 듣지 못한 사람처럼 자기 할 말만 했다.
“너 이미 전 대표에게 미움을 샀잖아. 우리 모씨 그룹이 너 때문에 망했으면 좋겠어? 전 대표가 널 싫어하는 거 몰라? 멀리 도망치지는 못할망정 왜 그렇게 앞에서 알짱거려? 죽고 싶으면 모씨 가문까지 끌어들이지 말고 너 혼자 죽든가!”
기 비서의 고자질 전화를 받고 모여정이 전강현에게 또 미움을 샀다는 것과 고희패션의 사람들에게 밉보였다는 것을 알게 된 모여희는 화가 나 죽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하던 일도 내팽개치고 집으로 와서 모여정을 혼내려고 하는 것이다.
“지난번에 나랑 같이 전씨 저택에 사과하러 갔을 때도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혼나고 왔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거야? 너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전 대표는 네가 쉽게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그 사람에게 잘못 보인 사람은 앞으로 사는 게 힘들어진다고!”
모여희는 모여정 때문에 전씨 가문의 보디가드들에게 개처럼 끌려 전씨 저택을 나온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소문이 안 났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힘들게 쌓아올린 이미지가 아주 망가졌을 것이다.
상업계 거물이 넘쳐나는 서울에서 모여희는 자신의 지위가 높다고 할 수 없지만 모안그룹에서만큼은 그녀는 많은 사람들에게 떠받들리는 공주였다. 다들 그녀가 모안그룹의 후계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런 모멸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이 모여정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모여정은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먼저 고희패션에 간 건데 전강현이 갑자기 나타난 거야. 그런데 어떻게 내가 그의 앞에서 알짱거린다고 말할 수 있어?”
“전 대표가 널 싫어하는 걸 모르겠어? 점장이 나가라고 하면 나갈 것이지 왜 버티고 있었어? 아무리 시골에서 자랐다고 하지만 서울에 온 지 일 년도 넘었는데 그렇게 상황 파악이 안 돼? 너 바보야?”
“모여희!”
모여정은 화가 나서 쇼핑백을 모여희에게 던졌다. 물론, 쇼핑백에 맞았다고 아프지는 않았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날 훈계해? 나와 전강현의 사이는 내 일이지, 네 일이 아니야. 나 때문에 삶이 힘들어지는 게 싫으면 이 집에서 나가!”
모여희는 모여정이 갑자기 그녀에게 화를 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쇼핑백에 맞은 그녀는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모여희, 난 네 언니야. 그런데 이렇게 나한테 물건을 던지고 내쫓으라는 거야! 네가 부모님 친딸이면 날 내쫓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넌 그럴 자격 없어!”
“내가 전강현과 우연히 만난 거로 나에게 욕을 퍼부어? 그런데 내가 왜 너에게 언니대접 해줘야 해? 내가 바보야? 욕을 먹고도 너에게 알랑거리게? 모여희, 넌 네가 뭐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모여정은 모여희 때문에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모여희를 내쫓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그녀는 모여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되찾은 뒤에 승리자의 자세로 내쫓을 생각이었다.
모여정의 반격에 모여희는 더더욱 화가 났다. 예전에 모여정은 그녀에게 잘 보이기에 바빴던 것이다. 모여정은 부모님 곁에서 25년이나 산 그녀가 모씨 그룹에서 자리를 단단히 잡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여정은 전씨 가문에 갔다가 돌아온 뒤로 전혀 그녀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 않고 그녀를 존중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좋은 마음에 일부러 죽을 끓여 모여정에게 주었지만 모여정은 먹지도 않고 그녀가 아끼는 꽃나무를 잘라버렸다.
테이블 위에 아직 마시지 않은 우유를 본 모여희는 김이 나는 우유잔을 들고 모여정에게 뿌렸다.
모여정은 피했지만 우유를 뒤집어쓰고 말았다.
옷에 묻은 우유 자국을 본 모여정은 화가 나 모여희에게 따귀를 날렸다.
짝!
따귀가 모여희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얼굴이 화끈거리게 아픈 것을 느낀 모여희는 믿을 수 없는 눈길로 모여정을 바라보았다.
집에 들어오지 않고 현관에 서 있던 기 비서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녀는 평소 대단하던 모여희가 시골뜨기 모여정에게 맞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모여정, 감히 날 때려!”
모여희는 비명을 꽥 지르고 모여정에게 따귀를 날리려고 했다. 하지만 모여정이 쏙 피하자 그녀는 더더욱 화가 나 미친 사람처럼 모여정에게 덮쳤다. 그러나 모여정의 발길에 차여 소파에 넘어지고 말았다.
모여정은 모여희를 걷어찬 다리를 움직이며 말했다.
“오랫동안 몸을 풀지 않았더니 힘이 좀 빠진 것 같은데.”
모여희: “…”
‘촌뜨기 같으니 감히 내 배를 걷어차? 아이고, 아파 죽겠네!’
모여정은 다리를 내리고 모여희를 보며 비아냥거렸다.
“나 시골에서 학원을 운영한 거 알지? 강사들이 바쁠 때 원장인 내가 태권도나 격투기를 직접 가르쳤거든. 그것 말고도 다른 것도 다 할 줄 알지. 그것도 아주 잘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