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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모녀

  • “여정아, 언니가 음식 가져왔어. 천호 때문에 단식 같은 거 하지 마. 엄마 말 들어. 피 많이 흘려서 계속 단식하면 위험할 수 있어.”
  • 장혜민은 모여정의 창백한 얼굴을 안쓰러운 표정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 모여정은 모여희를 증오하는 마음을 잘 숨기고 있었다. 그녀가 지금 모여희의 가면을 벗기기에는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 하지만 모여정이 살아있는 한 모여희의 가면을 벗기는 건 시간문제였다.
  • 장혜민의 말에 그녀는 죄책감이 들었다.
  • 전생에 그녀는 강천호와 결혼하기 위해서 단식으로 부모의 허락을 받으려고 했었다. 단식 1일 차에 전씨 가문의 결혼 요구 때문에 강천호와의 결혼을 반대한다고 생각한 그녀는 부모가 방심한 틈을 타 전씨 가문에 가서 팔목을 그은 것이다.
  • 전씨 가문에서 그녀를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이고 그 예상은 정확했다.
  • 후에 전씨 가문에서는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녀가 팔목을 긋고 단식해 결국 그녀의 부모는 강천호와의 결혼을 허락한 것이다.
  • “여희야, 들어와.”
  • 장혜민은 모여희의 말에 답했다.
  • 모여희는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생김새는 모여정과 완전히 달랐다. 모여정은 부모의 장점만 골라 닮았기에 태어나서부터 미인이었다. 자라온 환경이 열악해도 타고난 우아함은 숨겨지지 않았다.
  • 모여정의 양부모는 그녀가 예술 쪽에 관심을 보이자, 힘든 가정형편에도 학원을 보낼 정도로 그녀를 아꼈다. 그것으로 그녀의 우아함은 한층 더 올라갔다.
  • “여정아, 죽 끓였어. 반찬도 네가 좋아하는 걸로 준비했어. 뜨거울 때 얼른 먹어.”
  • 모여희는 달콤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녀는 모씨 가문에서 모여정과는 완전히 다른 교육을 받았다. 그녀는 기품도 우아했으며 직장 경험도 있어 성숙되어 보였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항상 모여정에 악의를 품고 있었다.
  • 전생에 모여정은 이미 그녀에게 한 번 놀아났다.
  • 모여정은 모여희가 가져온 음식을 보고 나서 장혜민의 팔을 끌어안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 “엄마, 엄마가 직접 만들어 주신 음식 먹고 싶어요. 언니가 끓인 죽 말고요.”
  • 모여희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모여정이 그녀가 끓여온 죽을 거부하는 것에도 개의치 않았다.
  • 사실 두 사람은 같은 날에 출생했다. 다만 모여정보다 모여희가 반나절 더 빨리 태어나, 언니가 된 것이다.
  • 장혜민이 모여희를 바라보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 “엄마. 여정이가 엄마 만들어 준 음식 먹고 싶대요. 만들어 줘요. 여정이가 먹겠다면 뭐든 좋죠.”
  • 모여희가 기분 나빠하지 않은 것을 보고 장혜민은 모여정의 이마를 살짝 누르며 말했다.
  • “너 때문에 여희가 일도 안 하고 달려와서 끓인 건데 먹지도 않고.”
  • “전 그저 엄마가 해준 걸 먹고 싶어서 그러죠. 엄마 손맛을 느끼고 싶어서요.”
  • “그래, 그래. 기다리고 있어.”
  • 모여정이 자신이 만든 음식을 먹고 싶다고 하니 얼른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 모여정은 모여희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 혹시라도 자신이 참지 못 하고 그녀를 목 졸라 죽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 ‘그냥 죽이기엔 내가 손해지. 전생에 내가 겪었던 느낌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줄 거야. 너의 음모도 다 밝혀내서 모든 사람에게 너의 진짜 모습을 똑똑히 보여줄 거야. 이 뻔뻔한 내연녀야!’
  • “여정아.”
  • 모여희는 모여정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는 것을 보고 불러 세우려 했지만,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 “나 배고파. 내려가서 뭐 좀 먹으려고.”
  • 모여희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모여희는 시선을 돌려 자신이 들고 온 죽과 반찬을 보며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예전의 모여정은 자라온 생활 습관 때문에 죽을 좋아했었다.
  • 그런데 현재, 모여정이 죽을 거부했다…
  • 모여희는 모여정이 어딘가 달라진 것 같았다. 죽도 싫다고 하는데다 장혜민에게 애교까지 부리다니 말이다!
  • 모여희는 잠깐 멈춰 서있다가 들고 왔던 음식을 다시 들고 내려갔다. 내려가는 계단에서 그녀는 모여정과 장혜민의 목소리를 들었다. 모여정은 애교 섞인 달달한 목소리로 장혜민과 대화하고 있었다.
  • 모여희는 식판을 들고 주방으로 들어가자, 모여정이 장혜민에게 과자를 먹여주고 있었다. 장혜민은 달달한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모여정이 입에 넣어주자,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즐거워했다.
  • “여정아, 엄마 달달한 거 안 좋아해.”
  • 모여희는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 “이제 함께 산 지도 일 년이나 다 돼가는데, 아직도 엄마가 뭘 좋아하시는지 몰라?”
  • 모여정은 억울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며 장혜민을 바라보았다.
  • “엄마, 달달한 음식 싫어해요?”
  • 전생의 기억으로 장혜민은 달달한 걸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몸매 관리를 위해 적게 먹는다고 했었다.
  • 사실, 장혜민은 매번 단 음식을 먹을 때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했다.
  • 불쌍한 표정으로 묻는 모여정의 모습에 장혜민은 얼른 모여희에게 해명했다.
  • “여희야, 사실 나 이런 거 좋아해. 몸매 유지 때문에 안 먹었었는데, 이제 나이도 들었고 살 좀 쪄도 괜찮지, 뭐.”
  • 장혜민은 또다시 미소를 지으며 모여정에게 말했다.
  • “이 과자 맛있어. 하나 더 줘.”
  • 모여희는 이내 과자를 장혜민의 입에 넣어주었고 장혜민은 다시 한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칭찬했다.
  • “맛있네.”
  • 장혜민의 모습에 모여정은 더 바짝 다가가며 말했다.
  • “엄마, 저 손 다 나으면 쿠키 만들어 줄게요.”
  • 전생의 모여정은 각종 쿠키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항상 강씨 가문에게 잘 보이려고 만들어줬을 뿐 장혜민에게는 해준 적이 없었다.
  • 부모 곁에 돌아와 효도하기도 전에 모여희에 의해 죽은 것이다. 그녀는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미안했다.
  • ‘아이는… 아마 다시는 나한테 오지 않겠지.’
  • 장혜민은 모여정의 말에 웃으며 말했다.
  • “그래, 그럼, 네가 직접 만든 쿠키 기대해 볼게.”
  • 모여희는 모녀의 대화에 줄곧 미소를 잃지 않았지만, 눈에는 질투가 가득 서려 있었다. 팔목에 붕대를 감고 있는 모여정을 보며 모여희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 “여정아, 이제 바보 같은 짓 하지 마. 우리도 가슴 아파. 전씨 가문에서 너 데려올 때 엄마 놀라서 쓰러질 뻔했어.”
  • 모여정은 자신의 팔목을 바라보며 단호한 눈빛으로 말했다.
  • “다시는 안 그래.”
  • 모여희는 모여정과 서로 시선을 주고받으면서 그녀는 모여정이 달라졌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 ‘같은 사람이긴 한데, 착각이겠지?’
  • 모여희는 모여정의 긴 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그녀의 머리결은 검고 부드러웠다.
  • “다시 안 그런다면 시름 놨어. 전강현이 난폭해서 결혼하기를 꺼리는 거라면… 근데… 걱정하지 마. 전강현이 다시는 못 찾아오게 언니가 해결할게.”
  • 장혜민은 모여희의 태도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 친딸을 데려오면서 제일 걱정되었던 것이 그들 관계였는데 다행히도 사이가 좋았다. 모여희는 좋은 언니였으며 동생을 잘 챙겨주었다.
  • 장혜민이 입을 열려는 순간, 모여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 “나 대신해서 대표님에게 사과라도 하려고? 아니면 나 대신 결혼하려고?”
  • 그녀의 머리를 만지고 있던 모여희의 손은 그대로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