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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전강현은 좋은 사람이 아니야

  • “대표님, 절 조사하셨으면 제가 매운 걸 못 먹는다는 걸 아실 거예요. 제가 왜 매운 걸 안 먹는지 알아요? 매운 음식을 조금이라도 먹으면 바로 화장실로 뛰어가야 하거든요.”
  • 말을 마친 모여정은 또 화장실로 뛰어갔다.
  • ‘… 내가 좀 너무했나 보군.’
  • 2분간의 정적이 흐른 뒤, 전강현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 “전 의사를 불러.”
  • “네.”
  • 보디가드는 휴대폰을 들고 전씨 가문의 주치의에게 전화를 걸었다.
  • 전 의사가 왔을 때, 모여정은 맥없이 축 처진 상태였다.
  • 전 의사는 그녀에게 약을 떼주었다. 그 약을 먹고 난 뒤에도 모여정은 화장실에 두 번 더 가서야 가까스로 설사가 멈춘 것을 느꼈다.
  • 정자 테이블 위에 차려진 음식은 깨끗이 치워진 상태였고 그 대신 신선한 제철과일이 놓여 있었다.
  • 전강현은 테이블에 엎드린 채,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모여정을 보며 물었다.
  • “내가 들고 나가줄까?”
  • 모여정은 고개를 들고 전강현을 바라보며 뭐라고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목소리가 너무 작아 전강현은 듣지 못했다.
  • “날 의자 위로 옮겨라.”
  • 전강현이 지시했다.
  • 그러자 두 명의 보디가드가 그를 양 옆에서 부축해 조심스럽게 의자 위에 앉혔다.
  • “내 휠체어에 태워서 이 여자를 내보내.”
  • 두 보디가드는 그의 지시에 따랐다.
  • 전씨 가문에서 쫓겨난 모여희는 대문 앞에 서서 두 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날이 어두워져서야 보디가드가 휠체어를 밀고 나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 휠체어에 앉은 사람이 다름 아닌 모여정일 줄이야.
  • 내쫓긴 자신과 달리 안에서 두 시간 넘게 있은 모여정이 아주 못마땅했던 모여희는 지금 고소해 죽을 지경이었다.
  • ‘모여정의 처지가 나보다 더 최악이네. 전강현은 정말 악마야. 여자를 아낄 줄 전혀 모르잖아.’
  • “여정아.”
  • 모여희는 고소한 속마음과 달리 걱정스러운 얼굴로 뛰어갔다.
  • “여정아, 너 왜 이래?”
  • 두 보디가드는 모여정을 밀고 나온 뒤, 모여희더러 모여정을 부축하게 했다. 그리고 그들은 휠체어를 끌고 말없이 그대로 가버렸다.
  • 전씨 가문의 대문도 곧이어 닫혔다.
  • 모여희는 모여정이 안색이 창백하고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것을 보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 “여정아, 대표님이 너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 “매워.”
  • 모여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소문이 틀린 거 하나 없었다.
  • ‘전강현은 절대 좋은 사람이 아니야!’
  • “대표님은 우리가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그런데 네가 간 크게도 허락 없이 제멋대로 정자에 들어간 거잖아. 식사도 밖에서 하시고, 보디가드를 제외하고 사람을 가까이에 두지도 않잖아. 성격도 안 좋고 변덕도 심해서 그 집 고용인들도 다 무서워한다 그러더라고. 가족들도 피한다니까.”
  • 모여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사실 그녀는 전강현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았다. 그저 전생에 그녀에게 베푼 약간의 선의 때문에 고마워 이번 생에 자신으로 그 은혜를 갚으려고 생각했던 것이다.
  • 이미 결혼한 몸이니 그녀는 이번 생에 그의 옆을 지킬 생각이었다.
  • “나 피곤하니까 이만 돌아가자.”
  • 모여정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침대에 누워 푹 자고 싶었다.
  • 모여희는 모여정이 전강현에게 호되게 시달린 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차까지 부축했다.
  • 모여정은 연속 며칠 쉰 다음에야 원기를 회복할 수 있었다.
  • 그녀가 집에서 쉬는 동안에 전강현에게서는 연락 한 번 없었다.
  • “참 독하고 매정해. 그래도 내가 신부인데 어떻게 전화 한 통 안 하지.”
  • 모여정은 몇 번이나 부재중 전화나 문자가 없나 휴대폰을 들었지만 그때마다 투덜거리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 똑똑.
  •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 “여정아, 엄마야. 들어가도 돼?”
  • 모여정은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 “엄마, 문 안 잠갔어요. 들어오세요.”
  • 장혜민이 들어왔다.
  • 그녀는 모여정을 향해 걸어오며 말했다.
  • “여정아, 오늘 날씨도 덥지 않고 딱 좋은데 여희가 비서를 보낼 테니 같이 쇼핑하러 가자고 그러네? 이번주 토요일 파티에 입고 갈 드레스도 고를 겸 말이야.”
  • “무슨 파티요?”
  • 모여정이 물었다.
  • “조씨 가문 아가씨의 생일파티 말이야. 지난번에 말했잖아.”
  • 그제야 모여정은 기억이 떠올랐다.
  • 지난 생에도 있었던 일이었다.
  • 조씨 가문은 서울에서 전씨 가문 다음으로 유명한 가문이었다. 조수아는 조씨 가문의 유일한 딸이라서 가문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그래서 매년 그녀의 생일파티를 아주 성대하게 열어주었다. 서울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을 모두 초대하고 말이다.
  • 모여희의 친구인 조수아는 모씨 가문의 친자 모여정을 무시하고 그녀가 시골 출신이라는 것을 비웃었다.
  • 지난 생에 모여정은 모여희와 함께 조씨 가문의 파티에 참석하러 갔다가 실수라는 조수아에게 와인세례를 당하고 말았다. 그날 입은 하얀색 드레스도 볼품없이 더럽혀지고 망신도 크게 당했다.
  • 모여정은 눈을 반짝였다. 지난 생에는 미처 반격하지 못했지만 이번 생에는 이자까지 더해서 제대로 복수할 생각이었다.
  • “엄마, 드레스가 있으니 더 살 필요가 없잖아요.”
  • 고희패션의 드레스는 우아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했으나 너무 비쌌다.
  • 부자 아가씨로 된 모여정도 고희패션의 드레스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으니 말이다.
  • “다 입어봤던 거잖아.”
  • 장혜민이 딸을 달랬다.
  • “엄마 말 들어. 기 비서랑 같이 쇼핑하다가 마음에 드는 것 있으면 사. 고희패션에 가면 드레스도 사고.”
  • 고희패션의 모든 드레스는 같은 디자인이 한 벌밖에 없었다. 귀한 손님들끼리 같은 옷을 입고 마주치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 모여정은 거절하려다가 전강현의 셔츠를 망가뜨린 게 생각나 그에게 한 벌 사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녀는 바로 생각을 바꾸고 달콤하게 웃었다.
  • “엄마 말씀 들을게요.”
  • 장혜민은 모여정의 긴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
  • “엄마 딸 예쁘게 꾸미고 파티에 가.”
  • 모여정이 애교를 부렸다.
  • “엄마, 제가 꾸미지 않으면 안 예뻐요?”
  • “예쁘지. 우리 딸은 생얼도 제일 예쁘지.”
  • “그건 엄마 아빠 유전자가 좋아서 그래요. 저 두 분 쏙 빼닮았잖아요.”
  • 장혜민은 그녀의 이마를 콩 쥐어박은 뒤, 말했다.
  • “말도 참 예쁘게 하네.”
  • 모여정이 혀를 홀랑 내밀자 장혜민은 더욱 활짝 웃었다.
  • 그녀는 카드 한 장을 꺼내 모여정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 “이건 엄마가 주는 용돈이니까 사고 싶은 거 보면 마음대로 사. 엄마 돈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기 비서 오래 기다리지 않게 얼른 나가.”
  • 장혜민의 재촉에 모여정은 옷을 갈아입고 힐을 신은 뒤, 엄마가 준 헤르메스 가방을 들고 기 비서와 함께 문을 나섰다.
  • 서울에서 돈 많은 사람들은 런지 가로수길에 가서 쇼핑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곳의 가게는 아무 데나 골라도 명품매장이었다.
  • 기 비서는 차를 가로수길의 입구에 댄 뒤, 모여정에게 말했다.
  • “둘째 아가씨, 먼저 들어가 계세요. 저는 주차 마치고 찾으러 갈게요.”
  • 모여정은 알았다고 하며 차에서 내렸다.
  • 그녀는 모씨 가문으로 돌아온 뒤, 이 가로수길에 여러 번 왔었다. 그래서 남성복 매장이 어디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 차에서 내린 모여정은 남성복 브랜드 쪽으로 걸어갔다.
  • 가게 입구까지 갔을 때, 그녀는 안에서 나오는 강천호와 마주쳤다.
  • 둘은 서로를 바라보느라 발걸음을 멈춘 것도 모르고 있었다.